쇼스토퍼(Show stopper). 뮤지컬을 구성할 때 기분전환용으로 유머러스한 노래나 연기를 삽입해 관객에게 환호와 박수를 이끌어내는 것을 바로 쇼스토퍼라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열렬한 갈채를 받는 명연기자를 일컫기도 한다. 지난 달 막을 내린 화제의 뮤지컬 ‘드림걸즈’에서 천방지축 R&B스타 지미 얼리를 연기한 최민철은 최상의 쇼스토퍼였다. 지미가 나왔다 하면 분위기는 방방 뜨고 객석에선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2000년 명성왕후로 데뷔한 이래 한 번도 작품의 전면에 나선 적은 없었지만 묵묵히 한 길을 걸으며 착실하게 커리어를 다져온 34살의 배우는 지미 얼리를 통해 자신의 진가를 알렸다. ‘드림걸즈’가 끝나고 한 달여. 관객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최민철은 지미의 그림자를 걷어내기 바쁘게 짝사랑에 애태우는 수줍은 청년 데니스로 돌아온다.

록스타의 날개 달고 한 단계 도약하다


지금이야 최민철 아닌 지미 얼리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드림걸즈’의 쇼스토퍼 지미 얼리는 최민철의 수많은 고민과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 캐릭터다.

“공연 들어가기 전에는 과연 내가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전혀 불러보지 않은 노래 스타일이라 목 관리도 힘들었고, 생전 안 추던 춤을 춰야 하니까. (웃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지미의 캐릭터를 잡는 것 역시 무척 힘들었죠. 직역해놓은 대사를 제 스타일로 다듬고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하면서 스태프들과 많이 부딪히기도 하고요. 다행히 프리뷰 첫날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됐다 싶었죠. (웃음). 끝내놓고 나니 뭔가 큰 거 하나 해낸 기분이에요.”

지미 얼리는 최민철의 대표 캐릭터가 됐지만 거기에 연연하고 싶지 않단다. 만약 ‘드림걸즈’에 출연할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그 때는 오만석이 연기했던 냉혹한 매니저 커티스에 도전하고 싶다고.

“커티스가 처음에 얇게 봤을 땐 지미보다 별루더라고요. 근데 지나보니 커티스의 매력이 참 많아요. 만석이 형이 참 잘했지만 제가 해도 또 다른 느낌의 커티스가 나올 것 같아요. 만석이 형이랑 역을 바꿔서 해도 재밌을 것 같고. (웃음) 만석이 형도 ‘내가 지민데, 지미 노래가 딱 내 필인데’ 하면서 막 입버릇처럼 얘기했거든요. (웃음) 형이랑은 분장실을 같이 썼는데 저는 커티스 노래로 목을 풀고 형은 지미 노래로 풀고 그랬어요.”

15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한미합작 뉴 프로덕션 ‘드림걸즈’에 초연 멤버로 출연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조연상 수상의 기쁨도 누리고 관객의 사랑도 담뿍 받았으니 ‘드림걸즈’는 최민철에게 참으로 뜻 깊은 작품이 되었다. 미국 스태프들과의 협업을 통해 브로드웨이 시스템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것 또한 ‘드림걸즈’를 통해 얻은 소중한 성과다.

“도대체 브로드웨이는 뭐가 다르길래 그런 어마어마한 작품들이 나오는 걸까 궁금했었는데 창작이 힘든 건 걔네나 우리나 마찬가지더라고요. (웃음)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오는 거지 처음부터 완벽한건 없다는 걸 깨달았죠. 물론 시스템적인 면에선 배울 점이 있어요. 그들은 엉뚱한 짓을 안 해요. 굉장히 분석적이죠. 텍스트부터가 탄탄하고. 그러니까 편안하게 드라마가 형성될 수 있어요. 시행착오는 같지만 근본에 다가가는데 있어서 좀 더 효율적이란 것. 그건 분명 배워야 할 점이에요.”

지미와는 완전히 다른 데니스, 도전은 계속 된다


5개월이 넘는 장기간의 공연을 끝냈으니 잠시 쉴 법도 한데 일 욕심 많은 이 배우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을 엮어 만든 라이선스 주크박스 뮤지컬 ‘올슉업(All shook up)’의 데니스가 그것. '드림걸즈’ 공연과 ‘올슉업’ 연습 기간이 한 달 가량 겹치면서 체력적으로 무척 힘들었지만 데니스는 놓치고 싶지 않은 캐릭터였다.

“지미로 많은 사랑을 받아서 작품 제의가 되게 많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기분 좋게 작품을 고를 수 있었는데, 차기작 선택의 기준은 지미와는 정 반대의 캐릭터를 해보자는 것이었어요. 지미는 정말 독특하고 일상에서 보기 힘든 사람이지만 데니스는 가만히 있으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에요. 그 평범한 인물에서 웃음과 드라마를 뽑아내는 과정은 지미와는 전혀 다를 거고요. 그래서 ‘올슉업’을 선택했죠. 일단은 작품 자체가 너무 재밌으니까.”

‘올슉업’은 2007년 초연 당시 신나는 노래와 음악, 탄탄한 대본과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사랑에 빠져 미치도록 기분이 좋은 상태를 의미하는 ‘올슉업(All shook up)’은 제목 그대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대를 아우르는 로맨스를 사랑스럽게 풀어낸 이 작품 속에서 최민철이 연기할 데니스는 오랜 시간 한 여자만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사랑까지 지켜주려 하는 수줍음 많은 순정남. 초연에는 배우 정성화가 데니스를 연기해 호평 받았다.

“성화 형은 정말 좋아하는 형인데 초연 때 너무 잘했죠. 그게 부담이긴 해요. 근데 ‘형이 참 잘했구나’ 까지만 하고 더 이상 생각 안하려고요. 형의 데니스와 저의 데니스는 많이 다를 거예요. 시놉 상에 데니스는 아주 소심한 사람으로 설명되어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데니스는 감성이 풍부하고 굉장히 열정적인 사람이에요. 다만 표현에 서툴고 소통을 잘 못할 뿐이죠. 트리플A형이라고 해야 하나. 생각이 많고 너무 배려하다가 다 놓치는……. 저도 A형이라 데니스의 성격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요.”

‘드림걸즈’로 한 단계 도약한 최민철은 ‘올슉업’을 통해 관객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 뒤 연말에는 뮤지컬 ‘살인마 잭’으로 또 한 번의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지킬 앤 하이드’ OST를 듣고 성악도에서 뮤지컬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최민철. 어떻게 해서든 결국은 뮤지컬 배우가 됐을 것 같다는 그는 쉼 없는 도전을 통해 진짜 배우가 되어가는 중이다.

“배우는 배우일 뿐이에요.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역만 할 수도 없는 거고, 늘 주목받고 박수만 받으려고 하는 건 자신을 해치는 일이죠. 작품 안에 녹아드는 배우, 템포를 아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배우가 정말 위대한 배우죠. ‘배려’는 제 연기 인생의 철칙입니다.”


* 뮤지컬 ‘올슉업’은?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 24곡을 엮어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채드라는 유쾌한 청년으로 인해 한적한 시골 마을이 음악과 로맨스로 가득해진다는 이야기. 2007년 초연 당시 객석 점유율 93%를 기록하며 폭넓은 연령층에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9월 8일부터 11월 1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 손호영, 윤공주, 김성기, 최민철 등 출연.


조수현 lovestag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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