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의 두 사람이 형제로 만났다. 배우 임원희와 이종혁. 닮은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이 어떻게 형제일 수 있냐고? 자자, 더스틴 호프만과 톰 크루즈가 나왔던 영화 ‘레인맨(1989)’을 기억하시는지. 자폐증을 앓는 형 레이몬드와 냉소적인 주식중개인 찰리가 서로를 치유해 가는 과정이 가슴 따뜻하게 그려진 영화로 제 61회 아카데미를 휩쓴 고전이다.
바로 이 ‘레인맨’이 연극 무대에 올려 졌고, 여기서 임원희와 이종혁이 만난 것. 물론 레이몬드는 임원희고 찰리는 이종혁이다. 더스틴 호프만과 톰 크루즈 위로 이들을 오버랩하니 썩 괜찮은 그림이 그려진다. 오랜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임원희와 이종혁이 들려주는‘레인맨’ 이야기.
<6년 만의 연극 무대, 그 떨림.>
- 두 분 다 연극 무대가 6년 만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랜 만에 관객 코앞에서 연기하는 기분이 어떤가요?
(임원희, 이하 임) 역시 무대는 참 어렵다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 굉장히 떨리고요. 옛날보다 더 떨리는 것 같아요. 소극장이라 관객들 표정이나 반응이 다 보이니까 더 그러네요. 완전히 발가벗겨지고 검증받는 느낌이랄까요.
(이종혁, 이하 이) 생각보다 무대와 객석이 더 가까워서 놀랐고 무척 떨렸어요. 옛날엔 내가 이걸 어떻게 했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웃음)
- 임원희 씨는 ‘로미오와 줄리엣(1995)’으로 이종혁 씨는 ‘서푼짜리 오페라(1997)’로 각각 데뷔하셨죠. 지금은 대중에게 영화와 드라마로 친숙한 두 분이지만 데뷔 무대가 연극이었기 때문에 무대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
(임) 저는 무대에 대한 어떤 경건함을 갖고 있어요. 마음의 고향 뭐 이런 게 아니라 항상 두렵고 경건하고 저를 시험에 들게 하는 곳이에요.
(이) 연기 경력의 출발이 무대여서인지 저는 무대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어요. 연기에 대한 열정 하나로 젊음을 바친 곳이기 때문이죠. 저를 항상 자극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 연극 복귀작으로 ‘레인맨’을 택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임) 이 작품의 연출인 임철형 씨한테 한 1년 전부터 출연 제의를 받았어요. 사실 당시에 전 꼭 연극을 해야지 하는 마음은 없었는데 연출과 대화를 나누면서 믿음이 가더라고요. (웃음) 초연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이번에 무대에 안서면 무대를 완전히 등질 것 같다는 불안감도 작용한 것 같아요.
(이) 소극장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지만 스케줄도 여의치 않았고,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레인맨’은 작품도 좋았고, 특히 원희 형이 레이몬드를 한다고 해서 조합이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죠. 제가 얻어갈 게 많은 작품이 될 거란 확신이 들었어요.
- 서울예술대학 동문이시지만 한 작품에 출연하는 것은 처음이시죠? 연기 호흡은 어떤가요? 두 분의 학창 시절 모습도 궁금합니다.
(임) 자화자찬일 수 있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가 좋아요. 학창 시절 저나 종혁이는 그렇게 튀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리 친하지 못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서 서로를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아서 참 좋아요.
(이) 지금 작품을 같이 하고 있는데 ‘호흡 별로에요’ 이럴 순 없잖아요. (웃음) 대학 시절 원희 형의 포스는 대단했죠. 언젠가 형이 연극 ‘시련’에서 존 프록터 역을 연기하는 모습을 봤는데 무대에서의 에너지와 무게감이 대단했어요. ‘존 프록터’ 역할은 언젠가 해보고 싶은 역이기도 해요.

<연극 ‘레인맨’은 도전과 자극>
- 원작이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에, 그러니까 비교 대상이 있기 때문에 자신만의 캐릭터를 다지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 형이 고민이 많았죠. 저는 특별히 힘들었던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임) 영화 속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를 많이 봤고, 큐브나 머큐리 같은 영화도 찾아봤어요. 자폐증에 대한 자료도 구해서 보고요. 그렇지만 그런 것들은 참고 사항일 뿐이고 저만의 레이몬드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일단은 배역에 빠지는 게 가장 중요해요. 가장 힘들었던 건 숫자나 주소 같은 걸 많이 외워야 했다는 거. (웃음)
- 대사가 많아 애를 먹었단 소리는 들었습니다.
(임) 사실 대사는 종혁이가 더 많아요.
(이) 관객 분들은 잘 모르시더라고요. (웃음)
(임) 제 대사에는 원주율이나 주소, 전화번호 같은 숫자가 많아서 대사량이 많은 것처럼 느껴지나 봐요. (웃음) 원주율 같은 경우 소수점 아래로 거의 60자리까지 외웠어요. 리듬을 타면서 외우니까 그나마 수월하더라고요.
- 임원희 씨의 경우 코믹한 이미지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요?
(임)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은 없어요. 저를 보고 웃으신다면 기분 좋은 거죠. 처음 등장했을 때 웃는 분들이 계시지만 극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레이몬드라는 인물에 공감하게 되실 거예요. 그래서 재미있는 장면에선 웃으시고 진지한 장면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시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실 거예요.
- 이종혁 씨는 냉철하고 까칠한 캐릭터를 많이 연기해서인지 찰리 역이 그리 낯설지 않은데요. 그래도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요?
(이) 이런 역할을 많이 한 편이긴 하죠. 까칠한 역할을 더 잘하기 위해서 이 역을 한 건 아니고요. (웃음) 저 같은 경우는 찰리가 레이몬드를 만난 후 변해가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연기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극 초반에는 대사를 틀려서 냉철하고 예민한 캐릭터가 망가질까봐 항상 조마조마하고요. 끝에 가선 찰리가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이렇게 처음과 끝이 극적으로 다른 인물이라 그런 것들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죠.
- 영화 ‘레인맨’이나 해외 버전 ‘레인맨’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임) 영화는 로드무비 형식인데 연극은 공간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레이몬드와 찰리가 변해가는 과정에 보다 중점을 뒀어요. 두 사람의 형제애에 흐뭇해지실 수 있도록 말이죠.
(이) 앞서 일본과 영국에서 무대에 올랐는데요. 그 쪽 버전은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들었어요. 저희 공연엔 소소한 웃음 코드가 첨가됐어요. 상대적으로 젊은 관객층에 맞춘 거죠. 두 사람이 축구공을 갖고 노는 장면에서 많이들 웃으시더라고요.
- 두 분은 형제가 어떻게 되세요?
(임) 혼자예요. (이) 저도요.
- 그럼 형제애라는 걸 직접 경험해보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요?
(임) 그러게요. 아이러니하네요.
(이) 근데 형 나랑 같은 피부과 다니더라.
(임)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웃음) 형제애라는 것도 가족애의 범주에 있는 거니까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어요. 반대로 ‘레인맨’을 통해서 ‘형제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고요.
(이) 핏줄이란 건 그 자체만으로 든든하고 의지가 되는 존재죠.

<훈훈한 드라마가 주는 감동, 스타 보는 재미는 덤>
- 얘기를 하다 보니까 두 분 공통점이 꽤 많네요. 그런데 공통점이 하나 더 있어요. 바로 ‘최민식’. 두 분이 예전 인터뷰에서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로 최민식 씨가 했던 역할들을 꼽으셨더라고요. 임원희 씨는 ‘파이란’의 이강재 역, 이종혁 씨는 ‘올드 보이’의 ‘오대수’ 역.
(이) 아 그런가요? 나 ‘파이란’ 같은 것도 해보고 싶은데…….
(임) 두 캐릭터는 저희뿐 아니라 모든 남자 배우들이 해보고 싶은 캐릭터에요. 최민식 선배님이 워낙 연기도 잘하셨고. 배우는 사실 다 하고 싶어요. 못해서 탈이지. (웃음 )극한의 악역이나……. 저라고 멜로 안하고 싶겠어요. (웃음)
(이) 저도 되도록 많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잘한다고 칭찬도 듣고 싶고. 어떤 구체적인 캐릭터에 대한 욕심보다는 어떤 역이든 이종혁 식으로 소화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있죠.
- 앞으로 두 분의 연기 커리어에서 ‘레인맨’이 어떤 의미를 가질 것 같은지요?
(임) 공연이 끝나봐야 알겠지만 생각보다 큰 전환점이 될 것 같아요. 저를 다시 다지게 되는 기회가 된 것 같고. 재충전한 느낌이고, 뭔가 큰 거 하나 해냈다 하는 기분이 듭니다.
(이) 오랜만에 소극장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저에게 큰 자극이 되었어요. 배우로서 기본적인 자질을 재정비하는 느낌이랄까. 딕션이나 몸을 쓰는 법, 오감을 다 사용해서 인물을 표현하는 방법. 한 마디로 몸을 깨우는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고민한 만큼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걸 확실히 느껴요.
임원희와 이종혁. 이들은 서울예대 동문이다, 같은 피부과를 다닌다, 외동아들이다, 최민식이 연기한 캐릭터를 좋아한다, 현재 연극 ‘레인맨’에 함께 출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이들의 공통분모는 연기와 무대에 대한 열정이다.
인터뷰 내내 오랜만에 서는 연극 무대가 주는 떨림과 설렘에 대해 이야기하던 이들은 영화나 드라마로 이름을 알린 배우가 연극 프로그램에 대충 이름이나 올려놓고 물 흐리고 간다는 말이 듣기 싫어 진지하고 겸손하게 작품에 임했다고 입을 모았다.
백문이 불여일견. 작품을 본 후 그들이 얼마나 이 작품에 성실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원작의 탄탄한 드라마에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공연장을 나서는 입가에 미소가 절로 그려진다. 적어도 ‘연극 ’레인맨‘에서만큼은 스타 보는 재미는 ‘덤’일 뿐이다.
* 연극 ‘레인맨’은?
더스틴 호프만, 톰 크루즈가 출연한 동명의 영화를 연극으로 옮긴 작품. 두 사람의 뜨거운 형제애를 통해 가족애, 나아가 인간애를 반추하게 한다. 2006년 일본, 2008년 영국에서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임원희, 이종혁 출연. 임철형 연출. 5월 31일까지. 대학로 SM아트홀.
조수현 lovestage@empal.com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평택아트센터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성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