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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 피플] 뮤지컬 이어 연극 연출에 도전하는 배우 임철형

 

지난해 코믹 호러 뮤지컬 ‘이블 데드’로 성공적인 연출 신고식을 치른 뮤지컬 배우 임철형이 이번에는 현실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메시지를 담은 연극 ‘아일랜드’를 선보인다. ‘아일랜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백 인종 차별 문제를 비판적 시각에서 다룬 연출자 아돌 후가드의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1977년 초연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재기발랄하고 유머러스한 연출 감각이 돋보였던 ‘이블 데드’ 이후 여러 작품의 연출 의뢰를 받았던 임철형이 차기작으로 무게감이 만만치 않은 ‘아일랜드’를 고른 것은 다소 의외의 선택이라 할 만하다. 14일 첫 공연을 앞두고 막판 연습에 한창인 그를 만나 작품과 연출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임철형 프로젝트의 시작 ‘아일랜드’

임철형 연출이 ‘아일랜드’를 준비한지는 2년 정도 되었다. 그는 좋은 원작의 연극을 연극으로 먼저 선보이고 그 제작진과 배우 그대로 다시 뮤지컬로 무대화하려는 일련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는데, ‘아일랜드’는 그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 될 것이다.

“오랜 기간 준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개막이 다가올수록 긴장이 되네요. 배우로서의 저는 연습실, 공연장을 떠나는 순간 일적인 부분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연출로서의 저는 그것이 불가능하더군요.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래서 연출가는 머리가 빨리 하얘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아내 말을 빌리자면 연출은 병든 닭 같다나요. (웃음)”

현재 출연 중인 뮤지컬 ‘카페인’ 공연장과 ‘아일랜드’ 연습실을 오가며 눈 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임 연출은 바쁜 와중에도 팬들과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다. 1월 31일에 있었던 팬 미팅은 ‘아일랜드’에 대한 관객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팬 미팅 후에 더 많은 부담감을 갖게 됐어요. 배우의 팬을 떠나 작품 자체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을 가진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더 관객이 잘 이해하고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지 고민이 큽니다. 저는 제작자, 상업적 마인드가 강한 편이에요. 고민과 분석은 작품의 뿌리지만 밖으로 보여 지는 나무, 즉 작품은 대중과 잘 맞아야 한다고 봐요.”

‘아일랜드’는 77년 국내 초연 이후 여러 차례 무대에 올려 졌지만 원작자의 동의를 얻어 정식으로 공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 연출은 원작의 메시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요즘 관객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5번의 각색 과정을 거쳤다.

“원작 그대로 가기엔 현재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 면이 있거든요. 좀 난해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고민 끝에 작품의 배경도 바꾸고 여러 가지 비주얼적인 아이템도 도입해 봤어요. 작업을 할수록 초연작을 연출하셨던 윤호진 선생님이 존경스럽단 생각이 들어요. 지금 만들어도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당시 유신 정권 하에서 어떻게 그런 당차고 강단 있는 작품을 올리실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에요.”

수차례 각색을 거쳐 탄생한 임철형 연출 버전의 ‘아일랜드’는 언론과 집회의 자유가 박탈된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두 명의 죄수 캐릭터는 동일하지만 그들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지니라는 기계 캐릭터가 등장하며. 지니는 비주얼적인 장치를 통해 표현된다. 임 연출은 이완 맥그리거가 나왔던 영화 아일랜드의 비주얼을 많이 참고했다고. 또 남아공의 인종차별을 다룬 원작과는 달리 임 연출의 ‘아일랜드’는 존재의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제가 생각하는 아일랜드는 어떤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이상향은 태어나면서 나에게 주어진 환경을 떠나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현실도 아일랜드가 될 수 있어요. 저희 공연을 보신 분들께서 희망을 품고 돌아가신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

- 임철형, 조정석, 양준모의 아름다운 모험

‘아일랜드’는 작품 자체의 화제성과 함께 눈에 띄는 캐스팅으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배우의 힘이 무엇보다 중요한 2인극에서 뮤지컬 스타지만 연극 무대에는 서본 적이 없는 조정석과 양준모를 캐스팅한 것. 하고 싶다는 배우가 여럿 있었지만 임 연출은 두 사람 이외에 다른 배우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정통 연극배우를 캐스팅했다면 아마 연극을 좋아하시는 분들만 작품에 관심을 가지셨을 거예요. 그렇지만 조정석과 양준모를 무대에 세운다면 뮤지컬 팬들도 좋은 관점에서 연극을 봐 주실 것이고, 그렇게 해서 연극의 저변을 확대한다면 순수 연극의 발전에도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연극에 대한 두 친구의 갈망이 컸어요. 죄수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삭발, 하드 트레이닝 등 힘든 요구를 많이 했는데 잘 따라줬죠. 그래서 저는 ‘아일랜드’를 저희들의 아름다운 모험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결과를 기대하고 하는 도전이 아니라 과정을 즐기고 받아들이는 모험이죠. 먼 훗날 아일랜드라는 작품을 했던 건 배우 인생에서 정말 잘했던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만큼 이 작품이 그들에게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캐스팅의 화제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치색이 강한 존을 양준모가, 순수하고 감성적인 윈스턴을 조정석이 연기할 것이란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임 연출은 조정석에게 존을, 양준모에게 윈스턴을 맡겼다.

“무대란 건 결국 역할놀이니까 반대로 가보자 싶었습니다. 두 친구가 초반엔 많이 힘들어 했지만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요. 준모는 순박해 보이고 정석이는 영악하고 날카로운 느낌에 근접해가고 있죠. 지금까지 알고 있던 두 사람의 느낌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기존 이미지를 전복하는 의외성이 주는 즐거움도 크실 겁니다. 정석이와 준모는 어디에 데려다 놔도 제 몫을 할 좋은 배우들이기 때문에 믿고 맡길 수 있었어요. 아마 오페라를 시켜도 잘 해낼걸요. (웃음)”

개성 강한 세 사람이 모였기에 연습 기간 동안 부딪힐 일이 있을 법도 한데 감정이 격해지거나 목소리를 높인 적은 한 순간도 없었단다. 임 연출은 배우의 입장을 잘 헤아리고 소통할 수 있는 점을 배우 출신 연출가가 갖는 장점으로 꼽았다. 오만석의 연출 데뷔작인 뮤지컬 ‘즐거운 인생’ 역시 팀워크가 유난히 좋았던 점을 생각할 때 공감 가는 부분이다.

“배우와 연출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단점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창작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출발한다는 거예요. 정석이, 준모와는 이전부터 형, 동생 하며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다 보니 장난칠 땐 한없이 장난치기도 하지만 집중해야 할 순간에 집중하는 에너지가 강한 친구들이라 언성 높일 일이 없어요.”

- 연출가는 작품의 길라잡이, 향후 3년은 연출에 힘쓸 것

‘작품의 친절한 가이드,’ 임철형이 생각하는 연출가의 정의다. 역할에 대한 확신이 없는 배우의 연기는 관객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임 연출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배우에게 역할과 작품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한 준비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캐릭터에 대한 확신 없이는 결코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배우가 역할에 대한 의문점이 생길 때 조언하고 설득할 수 있도록 사전에 철저히 준비합니다. 연출은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야 해요. 제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 주는 길라잡이가 되어 주는 것이 연출자로서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작업에 정답이라는 건 없으니 서로를 수용할 수 있는 자세도 중요하고요.”

사실 이 인터뷰의 제목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연기와 연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임철형’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은 평가는 아직 너무나 이르다며 한없이 자신을 낮춘다. 자신의 의지나 감각, 나이 등 모든 면에서 지금이 연출에 도전할 적기인 것 같아 향후 3년 동안 연출에 주력할 예정이지만 자신의 뿌리가 배우라는 점 역시 잊지 않고 있다는 임철형. 그는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많은 사람이다.

“저는 분명히 배우죠. 연출을 하건 제작을 하건 저의 뿌리는 배우입니다. 제가 아주 유명한 배우는 아니지만 정석 코스를 밟아온 뮤지컬 배우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11월쯤엔 배우로도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일랜드’ 이외에도 올 한해에만 창작 뮤지컬을 비롯해 두 세편의 작품을 연출할 예정이고요. 배우로서, 또 연출가로서 좋은 작품 보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 연극 ‘아일랜드’는?
작가 겸 연출자 아돌 후가드의 1974년 작으로 두 죄수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 임철형 연출. 조정석, 양준모 출연. 2월 14일부터 4월 5일까지, 대학로 SM아트홀.


조수현 lovestag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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