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4일, 캐스트가 바뀔 때마다 ‘보고 또 보는’ 대한민국 대표 연극 ‘아트’가 돌아왔다. 이번 공연으로 벌써 10번째 캐스팅 팀이 꾸려진 연극 ‘아트’의 캐치프레이즈는 ‘원조아트의 화려한 귀환’이다. 이 작품에 출연하는 정보석, 이남희, 정원중, 권해효, 조희봉, 이대연 등 여섯 배우가 이미 ‘아트’의 무대에 수차례 서왔던 원조 배우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원조아트의 컴백으로 정통 연극의 진정성과 정통 배우의 힘을 맛볼 수 있는 연극 ‘아트’를 소개한다.
이 작품에는 3명의 친구가 등장한다. 피부과 의사 수현과 전문대 전임교수 규태, 문구도매회사 CEO인 덕수가 바로 그들이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의 반열에 오른 세 사람이나, 그들 사이에도 나름의 서열은 있다. 굳이 순위를 매겨보자면 (부유한 정도에 기초해서) 의사 수현 > 교수 규태 > CEO 덕수의 순이다.
이들 세 사람은 각자 특정한 인물 군을 대표하고 있다. 흔히들 ‘세상에는 몇 가지 사람이 있다’라는 말을 자주 들먹이듯, 연극 ‘아트’에는 세 가지 사람이 있다. 성공한 사람과 성공을 시기하는 사람, 그리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이다. 이 작품에서 성공한 사람은 의사인 수현이고, 교수 규태는 그런 수현의 성공을 시기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규태는 질투로 점철된 자신의 행동을 ‘타락해버린 친구를 위한 충고’ 혹은 ‘언제부터 너와 느끼게 된 거리감 때문에 화를 내는 것’ 등의 핑계로 합리화 하곤 한다. 그리고 이 두 남자 사이에 낀 덕수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성격 좋고 답답한 친구다.
연극 ‘아트’는 프랑스 국적의 작가 야스미나 레자(Yasmina Reza)의 대표작이다. 이 여성작가에 의해 쓰인 연극 ‘아트’는 그동안 ‘남자 = 우정’으로 인식되어 온 고정관념에 큰 활을 박게 된다. 20년 넘게 우정을 유지해 온 세 명의 친구, 그리고 그들의 수다를 통해 확인되는 남자들의 옹졸함과 소심함은 기존 남성성의 이미지 위에 투영되어온 강인함과 과묵함을 통쾌하게 깨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은 수현이 산 그림 한 점이다. 수현은 하얀색 캔버스 위에 하얀색 선이 그어진 그림을 한 점 사게 된다. 한마디로 그저 네모나고 하얀색일 뿐인, 그림 같지 않은 그림이다. 헌데 이 그림의 가격은 무려 2억 8천만 원.
어느 날 수현이 산 그림을 구경하러 간 규태는 (본인이 생각하는) 그 그림의 실질적 가치와 (수현이 지불한) 돈으로 환산된 가치 사이의 괴리감을 확인 한 뒤 여러 가지 감정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런데 사실 수현이 얼마짜리 그림을 사건 간에 그것은 개인적 취향일 뿐 규태에게 득이나 실이 될 일이 전혀 없다. 그러나 규태는 ‘수현이 그 그림을 2억 8천만 원에 샀다’라는 사실에 기초하여 화를 내는 것은 물론, 수현을 대상으로 정신분석을 하게 된다. 결과 규태는 수현의 행동을 ‘허영심’ 혹은 ‘과시욕’으로 정의 내리고 그렇게 불거진 이야기가 결국 세 친구 사이의 갈등으로까지 치닫게 되는 것이다.
조금 황당할 정도로 지나친 규태의 간섭과 비난은 누가 봐도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규태의 심리는 조금 복잡하다. 앞서 규태를 시기하는 사람이라고 소개 했으나, 그것은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행동일 것이다. 100으로 채워진 규태의 마음에는 시기 외에도 복잡다단한 감정 선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규태는 그 그림을 빌어 둘 사의 소원해진 관계, 친구로부터 존경심을 상실했다는 느낌 등의 다양한 감정으로 확장해 나간다.
철저히 언어를 분석함과 동시에 그 화자의 심리까지 파헤치는 세 사람의 이야기 방식은 유머와 비아냥거림으로 포장된 불쾌한 감정들의 옷을 벗긴다. 많은 사람들이 연극 ‘아트’의 이야기에 공감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며 우리가 때로 느끼는 감정들의 고발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언제나 한결같을 수는 없다. 우리는 늘 좋고 싫음의 감정 변화를 경험한다. 하지만 말하는 것에 서투른 우리들은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그대로 전하지 못하고 항상 그 외곽만을 전할 뿐이다. 우리는 시시한 농담으로 흘리거나 비아냥대는 방식을 빌어 나의 분노 혹은 서운함을 전달할 때가 많다. 연극 ‘아트’의 세 주인공 역시 그렇다. 오고가는 농담 속에 가시를 섞어 보내는 방식.
그러나 이러한 위장전술은 작가의 통찰력 있는 고발로 인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그림 한 점을 놓고 펼치는 세 남자의 소심한 수다를 통해 당신이 맺고 있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 혹은 내 친구가 말도 안 되는 그림을 2억8천만 원에 샀다면, 자신은 어떻게 반응할지를 짐작해 보는 것도 좋겠다. 연극 ‘아트’는 오는 11월 30일까지 공연된다.
심보람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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