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디 맥베드’,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등 익숙한 고전 작품들이 오늘날 연극이나 뮤지컬 장르로 재탄생 되고 있는 것은 뻔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러한 고전 작품들을 어렵고 딱딱하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 역시 뒤따른다. 그러나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고전 작품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우울한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 던졌다. 영국의 대 문호 셰익스피어의 로맨틱 코미디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조금 색다른 고전이라 할 수 있다.
파듀아의 부호 밥티스타의 큰 딸 캐서리나는 난폭하고 거친 성격 탓에 그녀와 결혼을 원하는 남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로나의 한 신사 페트루치오가 나타나 캐서리나에게 막무가내로 청혼을 하게 되고 둘은 결국 결혼에 성공하게 된다.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라면 여기서 끝날 법도 하지만 아직 ‘말괄량이’ 캐서리나를 ‘길들이는’ 일이 남아있기에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렇게 결혼생활을 시작한 페트루치오와 캐서리나……. 페트루치오는 캐서리나보다 더 난폭하고 괴팍한 언동을 일삼으며 그녀를 길들이기 시작한다. 과연 천방지축 개망나니였던 캐서리나는 온순하고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변해가기 시작하는데, 과연 이게 끝일까?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관객들에게 짜릿한 쾌감 혹은 분노를 안겨주는 작품이다. 아무리 남녀평등 사회라지만 아직도 편견과 속박에 억눌린 채 살아가는 여성들이라면, 비록 그 하는 짓은 망나니 같으나 모든 남자들에게 물을 먹이는 캐서리나가 대리 만족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순전히 여자들에게만 어필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 관객들 역시 페트루치오가 나타나 캐서리나를 길들이는 혹독한(?) 과정을 감상하며, 남성 특유의 소유와 권위에 대한 욕망을 채우곤 한다. 또한 캐서리나를 길들인다며 그녀를 굶기거나 잠도 재우지 않는 페트루치오의 변태적 성향을 본 페미니스트들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안고 이 작품에 대해 가시와 같은 비평을 쏟아 내기도 한다.
그러나 기존에 갖고 있던 여성성 혹은 남성성의 잣대로 평하지 않고 이 작품을 그저 단순한 연애물이나 코미디물로서 바라본다면 작품의 스토리는 유쾌하기 그지 없다. TV나 영화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무대 위의 현장감은 두 남녀가 벌이는 기 싸움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 주며, 오직 세 개의 원통으로 표현된 독특한 무대 구조는 자존심 강한 페트루치오와 캐서리나의 마음처럼 비밀스럽기만 하다. 고전답지 않은 세련된 스토리와 익숙한 대사, 그리고 감칠맛을 더하는 한국적 번역 역시 성공이다. 즉,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여장부 캐릭터’를 새로이 창조해 낸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이 또 한번 입증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작품의 컨셉트부터가 ‘남성과 여성의 대결, 그리고 그 승자는 누구인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미 성적 논란을 품에 안고 출발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본 남녀노소 모든 관객들이 유쾌한 한 때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서울시예술단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힘에 있었다. 배우들의 농익은 연기와 클래식의 유쾌한 변주를 선보인 김대환의 음악, 유영봉의 참신한 무대로 옷을 입은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캐서리나와 페트루치오의 사랑스러움을 무기로 내세우며, 셰익스피어 작품에 제기된 많은 논란들을 피해가고자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역시 성공으로 서울시예술단의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고전 작품에 대한 유쾌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선보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심보람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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