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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in] ‘잘자요, 엄마’라는 인사를 받게 된 엄마는 잠들 수 없었다

 

연극 ‘잘자요, 엄마’의 제목은 평범한 사람들이 흔히 주고받는 평범한 인사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연극이 공연되고 있는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마지막 인사의 반전이 관객들을 울리고 있다. 1982년에 초연된 마샤 노먼의 ‘잘자요, 엄마’는 그 이듬해인 1983년 퓰리처상과 수잔스미스상을 수상하였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며 현대 명작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작품이다.

연극 ‘잘자요, 엄마’의 등장인물은 단 두 명, 엄마와 딸로 대변되는 두 여배우가 출연해 한 시간 반 남짓의 공연을 이어간다. ‘연극열전2’의 여덟 번째 작품으로 꼽힌 ‘잘자요, 엄마’에는 우리시대 최고의 여배우 나문희, 손숙, 서주희, 황정민이 각각 더블캐스팅 되었으며, 젊은 여성연출가 문삼화가 연출을 맡았다.

연극 ‘잘자요, 엄마’의 이야기는 간질병을 앓고 있는 딸 ‘제시’가 죽은 아버지의 녹슨 권총을 찾아내면서부터 시작된다. 평범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던 제시가 불현듯 엄마에게 던진 고백, 그것은 ‘엄마! 나 자살할 거야’라는 담담한 한 마디였다. 만약 당신이 제시의 엄마라면, 그 순간 가장 처음으로 하게 될 생각은 무엇일까?

- 엄마는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제시가 던진 말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명도, 설득도, 주장도 없었으며 생기 없는 기사의 한 단락처럼 사실을 전하고 있을 뿐이었다. 즉, 제시는 자신의 입으로 ‘제시가 자살 할 것’이라는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렇듯 자살을 하겠다는 제시의 아무렇지 않은 고백에 엄마는 선뜻 그 말의 진중성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엄마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엇을 해야 했을까? 제시가 던진 말의 심각성을 모를 바보는 없다. 단지 제시의 말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엄마 나름대로 버퍼링(buffering)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마치 고용량의 영화를 다운받고 있는 1G짜리 USB처럼 엄마는 제시의 자살 고백을 듣고도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뱉어내고 말았다.

- 그러나 사실이었다
연극 ‘잘자요, 엄마’의 엄마 델마는 자신의 극심한 심리변화를 드러내며 관객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배분한다. 델마가 겪는 무시와 두려움, 절규의 세 감정이 공연 내내 지그재그로 진동하며 관객들의 감정 끈을 쥐락펴락하는 것이다. 처음에 무시로 일관했던 델마는 이내 딸의 말이 진실임을 알게 되고, 이 믿을 수 없는 사실로 인해 파생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맛보게 된다. 자식의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일 부모는 없다. 이는 델마도 마찬가지다. 점차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가는 델마가 보여주는 것은 여느 부모가 보일 반응과 다를 바 없었다. 화내고, 설득하고,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하고 그것이 전부다. 델마의 발악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확실해지는 사실은 ‘제시가 자살 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 연극은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마지막 밤을 맞은 딸 제시와 엄마 델마의 대화를 통해 관객들은 제시가 자살을 선택한 이유를 추리한다. 그렇게 한 시간 반 동안 파헤쳐진 제시의 자살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간질병, 남편과의 이별 등 정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제시가 여러 관계에서 자살의 이유를 찾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가혹한 결말을 앞두고 엄마와 딸이 마련한 소통의 자리에서 델마의 감정은 더욱 간절해진다. 앞으로는 약을 스스로 챙겨먹어야 하고, 알아서 사탕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소소한 사실의 차가운 두려움이 델마의 고통을 더욱 짙게 만드는 것이다. 델마는 제시의 죽음을 멈추게 하기 위해 거창한 것에서부터 전혀 쓸모 없는 이유까지 들먹이지만, 제시는 그런 델마에게 ‘잘자요, 엄마’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긴다.

‘딸의 자살’이라는 소재를 통해 수 많은 찬반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연극 ‘잘자요, 엄마’……. 남겨진 델마가 감당해야 할 슬픔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사실은 한가지다. 당신에게는 가족과 대화할 수 있는 많은 밤이 있다는 것, 그것이다. 연극 ‘잘자요, 엄마’는 오는 11월 2일까지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에서 공연된다. (가격 3만원부터 4만원까지/ 화요일 4, 8시/ 수, 목, 금요일 8시/ 토, 공휴일 3시, 7시/ 일요일 3시/ 월 쉼)


심보람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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