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살해당한 어린 소녀가 자신이 유령인 줄도 모르고 떠돌아다닌다. 소녀 이조벨은 상처투성이인 마을 사람들의 내면을 확인하고 결국 자신을 살해한 남자를 용서한다. 한 장의 그림이 이 여정을 한 칸 한 칸의 계단으로 담았다. ‘영혼의 오디세이’를 그린 연극 ‘거리의 사자’의 포스터다.

한껏 고풍스러운 포스터가 아무도 말을 걸지 못하게 자신을 방어하고 있다. 잘 닦여진 대리석 계단과 육중한 기둥으로 이루어진 이 도시는 일견 완벽해 보인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깃 아래로 보이는 것은 바로 맹수의 꼬리. 그들 중에는 남편에게 버림 받은 여자나 학부모에게 질타당하는 선생이 있을 수도 있다. 또, 이조벨을 죽인 살인자 역시 있을 수 있다. 그들은 서로를 향한 비수와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검은 복식 속에 감췄다. 얼핏 담담해 보이는 하루만이 건조한 배경을 메운다. 그러나 포스터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당신이 사자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신 역시 사자일지도 모른다.”

온통 어둠뿐인 배경에서 이조벨의 얼굴만이 도드라져 보인다. 두 뺨과 깊은 눈빛은 홀로 생기가 감도는 듯하다. 이조벨이 죽은 자인지 아니면 홀로 산 자인지 모호해진다. 그녀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묻는다. “혹시 날 죽인 사자를 보셨나요?” 그 답을 찾아 떠나는 연극 ‘거리의 사자’는 9월 27일까지 청담동 유씨어터에서 공연된다.


백수향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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