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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it] 가장 보통의 존재가 된 당신에게, 카툰발레 ‘코펠리아’

 

세상에는 수많은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이 존재하지만 어린이들의 머릿속만큼 무궁무진한 비밀과 환상을 숨기고 있는 상상 창고는 없다. 특히 조악한 플라스틱 액세서리와 가짜 보석에도 열광해 마지않는, 초등학교 문턱을 아직 넘어 보지 않은 여자 아이들의 정신세계란……. 어린 살구같이 말랑한 그들의 머리는 온갖 달콤한 것들에 대한 기대에 달떠 늘 반짝인다. 세상이 내뿜는 각종 유독가스에 백기를 들고 어느 순간부터 그렇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성인 여자들이라면 날다람쥐같이 몸과 마음 모두가 기민했던 다섯 살 무렵의 시절을 늘 그리워 할 것이다. 그 시절에 우리는 자신보다 반세기는 족히 더 살았을 법한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나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의 언니 오빠들, 사나운 동네 강아지와도 깡다구 좋게 덥석덥석 어울릴 줄 아는 소통의 달인들이었다. 특히나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다가 볼 일도 시원하게 못 보는 보통의 존재로 전락한 직딩 여성들이라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카툰발레 ‘코펠리아’는 우리의 폐가 아직 사회의 매캐한 공기에 익숙해지기 이전, 뾰로통한 얼굴로 생고집을 피워대도 마냥 예쁘게만 봐주던 소녀시대의 절정기를 떠올리게 하는 공연이다.

비극 발레 ‘지젤’과 더불어 19세기를 발레 문화에 윤기를 더해 주었던 희극 발레 ‘코펠리아’가 만화와 접목되어 카툰발레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탄생하였단다. 푸석한 일상을 잠시 잊고 꿈결 같은 환상의 세계를 그린 ‘코펠리아’의 포스터에 주목해보자. 하얀 바탕의 포스터 가장 앞 쪽에서 고개를 떨군 채 앉아있는 소녀가 바로 주인공 코펠리아다. 그녀는 마술과 연금술을 즐기는 노 과학자 코펠리우스가 만든 정교한 인형이다. 원래 코펠리아는 실제 사람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를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존재인데, 포스터 속의 코펠리아는 등 위로 불쑥 솟아오른 태엽을 노출시키고 있다. 어쩐지 코펠리아는 파묻은 얼굴 속에서 ‘그래, 나 인형이야. 킥킥’하고 웃으며 관객들을 향해 메롱을 날리고 있을 것 같다. ‘명색이 비밀의 인형인데 이거 너무 김빠지게 만드는 거 아냐?’ 하고 실망하고 있는 사이 그녀의 오른쪽으로 동그란 얼굴을 멋스러운 콧수염으로 커버한 중절모의 사나이가 배꼼 모습을 모이며 시선을 분산시킨다.

그리고 ‘비밀의 인형 코펠리아’라고 커다랗게 쓰여 있는 글씨 위로는 빨갛고 파란 지붕의 건물들과 키 작은 나무들이 있는 서정적인 마을 풍경이 보인다. 납작하게 종이에 붙어있는 것 같은 인물들과는 다르게 마을 풍경에서 묘하게 입체적인 느낌이 든다. 왜일까? 대략 10초간 마을 부분을 뚫어지게 쳐다보면 그 이유를 알아챌 수 있다. 마을 풍경은 평면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건물들과 나무들은 스케치북에서 채색까지 마친 그림을 오려내서 다시 포스터 용지 위에 스리슬쩍 붙여 넣은 반(半) 입체들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골려먹을까?’라는 얄궂은 생각으로 근 200년간을 버텨온 코펠리아의 깜찍한 장난이 고개를 내미는 순간이다. 이로써 낮잠에 빠진 듯 힘없이 잔디에 앉아있는 포스터 속 그녀의 모습은 트릭이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정도면 코펠리아를 여염집 소녀, 아니 인형으로 얕잡아 보았다가는 큰 코 다칠 것 같지 않은가?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이고 유유자적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코펠리아의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밤을 꼴딱 새며 똘망한 눈으로 산타클로스를 기다리고 요정과 천사를 믿었던 유년의 향수에 목말라 있는가? 조카의 생일 선물로 마론 인형을 고르며 느꼈던 알딸딸한 대리만족감으로는 우리의 허기진 소녀 취향이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코펠리아와 함께 우리 인생의 샛별기로 돌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양손에 귀여운 조카들의 손을 맞잡고 극장을 찾는다면 더 좋겠다. 카툰발레 ‘코펠리아’는 오는 7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연분홍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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