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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썩은 내가 없어질 때까지 방향제를 뿌려라! 연극 ‘부드러운 매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창작예찬(창작희곡 활성화 사업)’ 첫 번째 작품, 오태영 작의 ‘부드러운 매장’이 지난 7월 4일부터 시작해 오는 13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오태영의 데뷔 초부터 현재까지, 그의 작품은 주로 사회의 정치상황을 비틀어 풍자한 극들이 대부분이었다. 연극 ‘부드러운 매장’ 역시 제목과는 달리 ‘껄끄러운’ 우리 현실을 고발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매장’은 일제 식민시대와 해방, 6.25로 이어지는 격변의 근대사를 무사히 버텨낸 ‘두열’과 ‘박암’ 두 가족을 통해 역사의 매몰된 진실, 이데올로기의 모순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먼저, 집 밖에 외출하는 법이 절대 없으며 정신병이 의심될 만큼 가면에 집착하는 ‘두열’이 있는가 하면, 그의 부인은 씻은지 1시간도 채 안되어 샤워를 해대기 바쁘다. 또 그 아들은 철저한 반공분자였던 아버지에 의해 빨갱이로 몰려 3년간 감옥에 다녀왔다. 그 며느리는 어떠한가? 외박을 일삼는 며느리는 가족들 아침밥도 나 몰라라 한 채 불륜을 저지른다. 그러하기에 ‘두열’은 온 집안 구석구석 싸구려 방향제를 연신 뿌려댔던 것이다. 식구들 모두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나니 말이다.

옆집이라고 괜찮을까?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두열’의 사돈 ‘박암’ 집에서는 정신을 반쯤 놓은 듯한 ‘박암’의 부인 ‘소임’이 있다. 그녀는 하루 왠종일 홑이불을 뒤집어 쓴 채 “오늘이 그날이냐?”며 끝없이 질문한다. 아들 역시 딴 여자와 바람이 났고, ‘박암’은 ‘두식’만큼은 아니지만 얼굴 팩에 특별한 애착을 보이는 듯하다. 그러하기에 ‘박암’은 ‘두열’과 마찬가지로 온 집안 구석구석 싸구려 방향제를 연신 뿌려댔던 것이다. 옆집이건 자기집이건 할 것 없이 모두 수상한 ‘냄새’를 풍기는 인물들이니 말이다.

연극 ‘부드러운 매장’을 보고 있으면, 그건 비단 두 가족의 평범한 이야기가 아닌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한국 근, 현대사와 맞물려 역사에 대응했던 많은 사람들의 선택과 갈등, 그 상처와 치유에 대한 이야기로 번지고 이는 또다시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공존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존방식으로 번져 나간다.

하루에도 10번씩 샤워를 해대는 아내와, 가면에 집착하는 ‘두식’에게서는 그들이 무엇인가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두식’의 아들에게서는 자신을 감옥으로 보낸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읽는다. 한편 “오늘이 그날이냐?”고 연신 질문을 해대는 소임은 ‘그날’에 대한 알 수 없는 이야기들만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녀는 ‘그날’이 어떤 이에게는 만세를 부르는 날이 될 수도, 어떤 이에게는 홑이불에 숨어 벌벌 떨어야만 하는 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전한다. 바람이 난 ‘박암’의 아들놈 역시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침대를 청소한다.


연극 ‘부드러운 매장’은 관객들에게 암죽을 떠먹이듯 모든 사실과 의미, 함축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모호하고 불완전한 말들을 흘리며 철저한 압축으로 의미를 전달할 뿐이다. 그러나 극 후반부로 갈수록 어느 정도 드러나는 두 집안의 비밀을 보며 관객들은 그것이 우리 역사와 사뭇 비슷함을 알아챌 수 있다. 이렇듯 드라마 안에서 배우들이 툭툭 내뱉는 한 마디는 우리 역사와 사회에 대한 거시적 관점으로 확장된다. 근대기를 살았던 인물들의 비밀과 함께 과거사의 비밀 폭로가 반복되면서 이는 다시 ‘역사의 진실성’에 대한 근본적 문제로 회귀한다. ‘역사란 없으며, 그것은 오직 승자에 의해 재해석된 것’이라는 시각이 극 안에 주를 이루고 있다.

극 후반부, 두 집안에 가득했던 악취의 진원지가 지하실임이 드러났다. ‘두식’의 아들은 그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지하실을 파내려 가고 문제의 물건들을 끄집어 낸다. 그러나 가족들은 “파헤쳐봤자 좋을 것 없다. 그냥 덮자”고 주장하며 아들까지 묻어버리는 다소 충격적인 반전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회의 부조리를 읽는다. 역사, 그것을 파헤치고자 하는 자와 덮고 싶어 하는 자는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퀴퀴한 썩은 내를 없애기 위해 방향제를 뿌려야 했던 ‘두식’, ‘박암’의 집안처럼 나도, 그리고 우리도 방향제를 뿌려야만 하는 것일까?

연극 ‘부드러운 매장’은 오는 13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심보람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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