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극의 제목인 ‘쉬어매드니스’는 연극의 공간적 배경인 미용실의 이름이다. 극이 시작되기 전부터 무대 위는 미용실로 걸려오는 전화, 손님의 머리를 감기는 미용사의 손길 등으로 분주했다. 본격적으로 극이 시작되기 전 암전이나 옅은 빛으로 조용한 대기 상태를 유도하는 보통 연극과는 다르게 ‘쉬어매드니스’는 환하게 불 밝힌 미용실의 전경을 그대로 노출하며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음악과 배우들의 재기발랄한 움직임으로 관객들을 맞았다. 여느 미용실에서나 들릴 법한 가벼운 댄스 음악이 크게 울려 퍼지고 미용실 주인인 토니와 미용사 써니가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며 바쁘게 미용 재료 정돈을 하고 미용실을 찾은 손님의 머리를 감겼다. 특히 써니 역을 맡은 배우 이윤화는 미용실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손님을 응대하면서 상냥하지만 한편으로는 앙칼진 카리스마로 객석을 향해 강한 포스를 내뿜었다. 미용실 언니 특유의 코맹맹이 소리로 “네~ 쉬어매드니스 미용실입니다”라고 전화를 받는 이윤화의 경쾌한 목소리가 관객들의 귀를 간간히 자극하며 ‘이 언니, 만만치 않은 성격이겠다’하는 생각을 들게 했을 것이다.
쉬어 매드니스 미용실의 세트는 웬만한 동네 미용실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세련된 모습이었다. 정면에서 보이는 산뜻한 오렌지색 가구와 손님들이 대기하는 의자 사이에 놓인 봉에 쓰이면서 밝고 활기찬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나타내었고, 블랙이 손님 대기석과 세면기 등에 쓰이며 자칫 경박해 보일 수 있는 주황의 어지러운 느낌을 보완해 주었다. 또한 무대 좌측에 위치한 매니큐어 진열대와 퍼머기기, 무대 중앙 관객들과 맞닿은 곳에 놓인 세면기는 관객들이 실제 미용실에 들어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정교하고 튼실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극이 시작되고 미용실의 단골 손님인 사모님 한보람이 들어오고 곧 이어 한 남자가 면도를 하기 위해 들어왔다. 토니와 써니는 ‘도레미파솔라시도’ 한 옥타브 중에서 가장 듣기 좋다는 음 ‘솔’톤의 목소리로 살갑게 손님들을 맞고 그들의 시중을 들며 자연스럽게 말을 섞었다. 써니는 사모님이 늘어놓는 럭셔리한 사생활과 풋짜증을 ‘네~네~ 그렇죠. 그럴 것 같아요’하고 비위를 맞추며 받아치고, 수다쟁이 토니는 면도를 하러 온 손님에게 살짝 말을 거는 듯 하다가는 손님은 뒷전이고 자신의 소중한 스파게티 요리와 피아니스트인 건물주에 대해 열변을 토해내었다. 다혈질에 희극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토니는 자신의 감정에 한 번 몰입되면 그 상황에서 잘 헤어 나오지 못하는 타입의 인간이다. 그런데 그는 미용실 위층에 사는 건물주 송채니와 적대적인 관계로 미용실 영업을 원만치 못해 항상 그녀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다. 왕년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송채니는 심각한 신경질환을 앓고 있는 중년의 여성으로 극에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으나 나중에 살해되면서 사건의 중심이 되며 배우들의 입에서 그 이름이 굉장히 많이 거론되게 된다. 그녀는 토니와는 앙숙같이 지내면서도 ‘선생님~선생님~’하며 잘 따르는 미용사 써니와는 친자매처럼 가깝게 지냈던 외로운 독신녀였다. 송채니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내고 있는 토니와 써니는 살인 사건 후에 가장 오랜 신문과 추긍을 당하게 되었다.
또한 이 극에서는 송채니과 연관된 또 한 명의 인물 오준수가 등장한다. 오준수는 예전에 황채린으로부터 조선시대 유물인 서랍장을 매입한 적 있는 골동품 수집가이다. 그는 송채니가 소유하고 있는 피아노를 사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오던 중 쉬어 매드니스 미용실에 들르게 되었다. 그는 미심쩍은 알리바이를 소유한 인물로 극 중반까지 관객들의 의심을 한몸에 받았다. 또 두 명의 형사를 제외하고 살인 사건의 용의선상에 올라 있는 마지막 인물, 배우 한보람이 연기한 사모님 한보현은 사건 당일 저녁 홍콩으로 출국하기 전 머리를 다듬기 위해 미용실에 찾은 쉬어 매드니스의 오랜 단골손님이다. 그녀는 전형적인 상류층 마나님으로 송채니라는 인물을 매체를 통해서만 접했었다며 자신은 이 사건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계속 주장을 펼쳤다. 평민(?)과는 질적으로 다른 생활을 향유하는 한보현의 비밀스런 스케줄이 수사과정에서 만천하에 공개되며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결백을 주장하는 용의자들의 그럴듯한 알리바이와 진술 속에서 도떼기시장같이 어수선한 사건 현장을 정리해 나가는 두 형사의 이마에는 진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현장을 주도하며 용의자들을 심문하는 선배형사 박현철과 박형사의 지시에 따라 증거물들을 채취하고 용의자들을 통제하는 신입형사 조동욱의 콤비는 관객들에게 녹녹한 웃음을 제공했다. 모든 게 능숙능란하고 용의주도한 박형사와는 달리 한 박자 느리고 다소 고지식한 신입 조형사의 엇박 연기가 타이트한 사건 진행에 숨구멍이 되어 관객들이 잠시 극에서 빠져나와 지나간 사건에 대해 잠깐 되돌려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연극 ‘쉬어매드니스’에는 개그맨 뺨치는 센스가 작렬하는 대사들이 많이 등장했다. 특히 숨 가쁘게 대사를 쏟아내며 관객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던 미용실 주인 토니 역할의 배우 정태민은 날렵한 몸매와 풍부한 표정으로 무대를 종횡무진 오가며 연기를 펼쳤는데 그 모습이 잘나가던 시절의 짐캐리처럼 느껴졌다. 그는 새로 맞춘 꽃무늬 앞치마 하나를 설명하더라도 ‘나는 엘레강스하고 럭셔리한 꽃가라 앞치마가 필요했었다. 이 앞치마는 미용실 벽지와도 딱 어울리고 너무 마음에 든다’며 여성스러운 목소리로 완전히 앞치마에 심취하여 호들갑스럽게 기나긴 자랑을 늘어놓았다. 또 건물주 송채니를 일컬으면서도 그 여자는 신경쇠약에 걸린 게 아니라 ‘신경죄악’에 빠져있다며 재치 있는 언어유희를 선보였다. 정태민의 감칠맛 나는 연기가 살인사건이라는 격앙된 상황이 칙칙하게 퇴색되지 않도록 연극 전반에 윤기를 내주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부산한 분위기 가운데 사건을 냉철하게 관찰하고 수사에 참여하는 관객들의 열의가 이 연극의 가장 큰 묘미가 아닐지 싶다. 행여 관객들의 참여가 저조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뒤엎고 사건을 재현하는 시간동안 객석을 꽉 매운 관객들은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꼼꼼하게 사건의 전말을 수첩에 메모한 여성관객에서부터 질문으로는 모자라 직접 무대로 나서서 용의자를 확인하는 남성관객까지, 관객들은 사설 탐정이라도 된 듯 극에 몰입하여 적극적인 참여를 보였다.
인물들이 등장하고 극이 진행되면서 들으면 감이 확 잡히는 큰 사건 하나 터지지 않았지만 시종일관 촉각을 곤두세우며 배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심지어는 가방 속까지 까뒤집어 조사하는 관객들의 수사 본능이 드러나는 2시간의 공연시간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관객들은 낚시대를 담그고 때를 기다리는 낚시꾼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범인이라는 물고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살인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던 유일한 목격자로서 형사들에게 단서를 제공하고 용의자들의 알리바이에서 허점을 파헤쳤다. 연극의 급박한 진행 속에서도 낚시꾼이 때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차분하게 범인의 입질을 노렸던 관객들은 낚시바늘에 범인이 낚아 올려지는 순간의 쾌감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관객의 낚시질을 기다리는 연극 ‘쉬어매드니스’는 대학로 예술마당 2관에서 오픈런으로 공연중이다.
연분홍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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