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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in] 당신을 기다리는 상처, 연극 ‘클로져’의 ‘지현’ 송민지

 

 

연극 ‘클로져’는 세상에 흔해 빠지게 널려 있는 젊은 남녀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클로져’에서 연인에게 모든 것을 내거는 사랑을 보여주는 ‘지현’역을 맡은 배우 ‘송민지’를 지켜보고 있자면 ‘사랑의 단상’이라는 책에서 ‘나는 자신이 배타적인, 공격적인, 미치광이 같은, 상투적인 사람이라는 데에 괴로워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던 롤랑 바르트의 말이 떠오른다.

인생에서 정말 부끄러운 것
‘지현’은 스트립댄서다. ‘지현’은’ 과감한 의상을 입고 퇴폐업소의 ‘파라다이스’라는 방에서 스트립댄스와 페티쉬를 서비스로 제공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직업을 부끄러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으며, 오히려 당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한다. 또한 스트립댄서인 자신을 찾는 남자들을 통해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겪은 ‘지현’은 남자 보는 눈에 있어서는 남부럽지 않게 정확하다. 그러기에 그녀는 더더욱 아무에게나 함부로 마음을 열거나 내주는 일이 없다. ‘지현’은 ‘태희’에게 자신은 유혹에 넘어가 풍덩 빠지는 사랑을 하지 않는다며 스스로 ‘대현’을 선택했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사랑 방식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있다. 관객들은 높은 힐을 신고 단 위에 올라가 아찔한 춤을 추는 ‘송민지’를 보면서 ‘인생에서 정말 부끄러운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릴 적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한밤중에 발가벗겨져서 집에서 쫓겨났던 일이나 고등학교 시절 조회시간에 전교생이 다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했던 기억, 또는 어제 밤 달렸던 술자리에서 했던 치명적인 실수 등 지금 떠올리기만 해도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는 사건들은 꼬리표처럼 우리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그 일이 타인에게 일어난 것이라면 ‘그 때 그랬었지’하며 무심히 지나치고 말지만 우리의 개인사로 들어왔을 때는 얼마나 많은 고통과 큰 후유증을 가져다주는가. ‘송민지’의 저돌적인 스트립댄서 연기는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란 무엇인가?’하는 고민에 빠져들게 하였다.

옅은 그늘의 떨림
‘지현’은 매사에 자신감과 활기가 넘쳐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심약한 자존감을 가진 인물이다. ‘지현’은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연인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기에 항상 연인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지현’이 되어 그녀의 말을 쏟아내는 ‘송민지’의 대사 전달력은 아주 훌륭하다. ‘송민지’의 움직임과 표정도 영락없는 ‘지현’의 모습이지만 그녀를 완벽한 ‘지현’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아마 목소리가 아닐지 싶다 . ‘송민지’는 활달하고 정열적이지만 소녀처럼 여린 감수성을 지닌 ‘지현’의 성격을 목소리로 실감나게 연기하였다. 강하고 또렷하지만 미묘하게 끝이 흔들리기에 불안한 느낌을 주는 ‘송민지’의 음성은 ‘지현’의 캐릭터와 정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녀의 그늘진 목소리는 관객석의 공기로 퍼져 작은 파동곡선을 그리며 관객들의 심장에 가벼운 떨림을 실어주었다.

어린 새, 어른아이 ‘지현’
8살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지현’은 어린 시절에 심각한 애정결핍을 경험했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엄마~”라고 부르면서 엄마의 존재를 확인하는 아이처럼 ‘송민지’가 연기하는 ‘지현’은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는 미숙한 인물이다. 아무리 먹고 또 먹어도 이상하게 배가 고픈 고아의 허기를 해소하지 못하고 그대로 성장한 ‘지현’은 24살짜리 아이다. 멀리서도 두드러진 쇄골이 눈에 뜨이는 ‘송민지’의 몸은 ‘지현’의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말없이 보여준다. ‘송민지’의 몸은 길고 늘씬하게 여성의 곡선이 살아 있지만 약간 마른 편이다. 그런 그녀의 동작은 빠르고 민첩하지만 숨 쉬는 것마저도 조심스러워 보이는 어린 새처럼 연약한 분위기를 풍긴다. 관객들도 그녀의 연인인 ‘대현’이 이별의 순간까지도 애정을 갈구하며 보채는 어른아이 ‘지현’을 차갑게 내치지 못하는 이유를 아마 감각으로 느꼈을 것 같다. 공연 내내 ‘송민지’의 몸에 농밀하게 흐르는 파리한 기류에 많은 관객들의 마음도 흔들렸을 테니까.......

‘인간은 상처를 통해 성장한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타박상 정도의 가벼운 상처야 극복할 수 있고 다시 겪는다고 해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변심처럼 몇 번을 곱씹어도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일이 우리의 인생에 연속으로 굴러들어와 박힌다면 과연 그 상처를 통해 성장할 수 있을까? 다른 누군가의 따뜻한 어루만짐으로 상처를 치유 받고 싶은 마음에 또 다른 사랑에 불나방처럼 뛰어든 ‘지현’처럼 모든 사람들은 상처 위에 상처를 겹겹이 쌓아가며 자신만의 연애사를 만들어 나간다. 처음 시작하는 연인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완전한 사랑만을 꿈꾸며 겁 없이 앞으로 달려 나간다. 하지만 우리가 한 편의 어드벤티지 영화 같은 사랑에서 빠져 나오는 순간 몸 여기저기에 긁히고 벗겨진 상처들은 고개를 들고 모습을 드러낸다. 연극 ‘클로져’의 ‘지현’은 사랑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외면할 수 없는 상처 같은 존재이다. 관객들이 ‘지현’을 자신과 관계없는 타인을 바라보듯 응시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에 있다.


연분홍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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