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의 화려한 한두 시간을 위해 그 뒤에서는 몇 달, 혹은 몇 년의 준비가 이뤄진다. 객석에서는 보이지 않는 무대 뒤편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공연의 기획, 오디션, 제작회의와 연습현장 등, 9월 4일 무대에 오르는 테라피뮤지컬 ‘침묵의 소리’의 준비과정을 따라가 본다.」

최초의 한일 합작 뮤지컬로 주목받는 ‘침묵의 소리’ 캐스팅이 공개됐다. 태평양 전쟁을 배경으로 안타까운 사랑과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과정을 보여줄 이 작품의 주인공 동진 역에 ‘화성에서 꿈꾸다’ ‘이순신’ 등의 주역 민영기와 ‘오즈의 마법사’ ‘소나기’ 등으로 차근차근 이름을 알려가고 있는 박봉진이 더블 캐스팅 됐다.

서울시 뮤지컬 단원 박봉진은 동진 역을 맡은 것이 뜻밖의 행운이라고 말했다. “사실 제가 오디션에는 다른 역할로 지원했어요. ‘고다마’라고 연기하기는 어렵지만 아주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역이 있거든요. 그런데 심사위원 중에 일본 스텝분이 제 연기가 마음에 드셨는지 오디션 마지막에 주인공 노래를 한번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결과가 나왔는데, 주인공 동진 역할에 캐스팅이 되었네요.” 한편 민영기는 ‘삼총사’ 공연 중 서울시뮤지컬단으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았다. “이 작품은 색다른 장르라는데 호기심이 생겼어요. 또 개인적으로 창작 뮤지컬에 애정이 많아서 더 관심이 갔어요. 평소에 서울시뮤지컬단과도 함께 일해보고 싶었는데 먼저 권유를 해주셔서 좋은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침묵의 소리’는 아사히신문에 기사화되었던 한 한국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전쟁에 징병되고 일본인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 주인공 동진은 작품 속에서 열여섯 살 어린 시절부터 노인이 된 후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서울시뮤지컬단원 곽은태가 나이 든 동진을 연기하고, 두 사람은 청년기의 동진을 맡았다. 각자 만들고 싶은 동진의 이미지를 물어보았다. “젊은 시절의 동진은 여자주인공과 굉장히 열렬한 사랑에 빠지고, 또 헤어져있을 때는 애절하게 그리워하죠. 종이학을 가지고 연인과 대화를 하는 로맨틱한 모습도 보이고요. 제가 생각하는 동진은 참 순수하면서 사랑에 관해서는 아주 열정적인 인물이에요.” 민영기의 대답을 귀 기울여 듣고 있던 박봉진도 입을 열었다. “동진은 영원한 사랑을 믿고 갈망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전쟁 중에 사랑을 지키려다 시련도 겪고 나중에 상처도 받지만 끝까지 영원한 사랑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는 인물인 것 같아요.”

민영기는 창작 뮤지컬에 유독 강한 애정을 보이는 배우다. ‘침묵의 소리’를 선택한 것 역시 그 영향이 크다. “라이선스 뮤지컬은 그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창작 뮤지컬을 하면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되어 좋아요. 누구도 하지 않았던 것을 처음으로 하는 거잖아요. 왜 하얀 눈밭에 발자국을 처음 남기는 기분이 들거든요. 저는 먼저 걸은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걷기보다는 처음 걷는 사람이 돼서 제 마음대로 걸어 다니는걸 좋아해요.”

박봉진은 한일 합작 ‘침묵의 소리’에 더욱 흥미를 갖게 한 일본공연 경험을 털어놓았다. “‘소나기’라는 작품을 할 때 일본 오키나와에서 공연을 했는데, 일본 관객들의 문화가 한국과는 많이 달라서 놀랐어요. 우리나라 관객들은 슬프면 공연 중에 소리 내서 울기도 하고 그러는데 일본 관객들은 울면서도 입을 꽉 틀어막더라고요. 다른 관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또 제가 공연장 밖에서 그냥 편한 복장으로 돌아다니는데도 나이 많으신 관객분이 알아봐 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래서 일본과 합작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참 반가웠고, 일본과 우리나라의 다른 정서가 섞여서 어떤 작품이 나올지 많이 궁금해졌어요.”

동진을 준비하는데 영감을 준 역할이 있었는지 물어보자, 민영기는 서슴없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를 꼽았다. “제가 로미오로 처음 뮤지컬의 주연이 되고 신인상을 받았어요. 서른 살에 열여섯 살 로미오를 맡아서.(웃음) 그 때는 정말 무대에서 어떻게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고 연기를 했거든요. 정말 날 것 그대로 무대에 올랐어요. 그런데 관객 분들은 그걸 풋풋한 로미오라고 평을 해주셨죠. 이번에 맡은 동진이도 사람 사이의 관계나 사랑, 전쟁에 대해 뭘 알기보다는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인물이라 생각해요. 사랑을 할 땐 정말 덧없이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전쟁에서도 그 시간에 목숨을 걸고 임하고. 그런 면에서 저는 로미오를 연기한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관객들을 위한 한마디를 부탁했다. 민영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예쁜 사랑이야기도 있고, 생동감 넘치는 장면들도 있고, 눈물 나는 감동도 있는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한일 배우들이 한 무대에서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관객 분들이 많이 기대해주시고, 많이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박봉진이 이어 말했다. “관객 분들이 공연장을 나서실 때 어떤 따스함을 가져가실 거라 생각해요.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나 첫사랑을 돌아보면서 아련한 감동을 느끼실 수 있는 작품입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이현주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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