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비컬 열풍은 현재 진행형이다. ‘무비컬’이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을 일컫는 신조어임을 설명하기도 새삼스러울 정도. 지난 해 공연계의 화두였던 무비컬의 열기는 2009년 상반기에도 고스란히 이어져 현재 공연되고 있는 작품만 ‘드림 걸즈’, ‘라디오 스타’ 등 어림잡아 네댓 편에 이른다. 이 중에서도 올 봄 새롭게 선보인 두 작품이 관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 ‘주유소 습격 사건’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My scary girl)’과 ‘주유소 습격 사건’이 그것. 예상 외 흥행에 성공한 한국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극장 뮤지컬인 두 작품은 여러 면에서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 된다. 신선한 기획으로 관객 몰이에 나선 ‘마이 스케어리 걸’과 ‘주유소 습격 사건’의 관람 포인트를 짚어보았다.
- 달콤 살벌 커플 vs 대책 없는 꼴통 4인방
원작 영화가 주는 재미의 9할은 캐릭터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특하다 못해 다소 엽기적이기까지 한 영화 속 각각의 캐릭터들은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으며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재미 삼아 주유소를 습격하는 등 현실에선 지탄받아 마땅한 행위를 일삼지만 인간적인 훈훈함을 잃지 않는 캐릭터들에 어느 덧 동조하게 되는 것. 따라서 원작 캐릭터에 익숙한 관객들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느냐가 뮤지컬 성공의 관건일 게다.
캐스팅은 썩 훌륭하다. ‘마이 스케어리 걸’의 신성록, 방진의 커플은 영화 속 박용우, 최강희가 맡았던 캐릭터에다 각자의 장점을 더해 고유의 분위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재미를 준다. 영화 속 박용우가 연기한 대우가 쪼잔하고 소심하면서 까칠한 노총각이었다면, 뮤지컬 속 신성록의 대우는 좀 더 아방하면서 순진한 느낌이 강해 뒤늦게 사랑에 눈뜬 남자의 설렘이 잘 묻어난다. 영화 속 최강희가 상황에 휘말려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미나의 엉뚱하고 은밀한 매력을 잘 살렸다면, 방진의 특유의 무표정한 연기는 살벌한 그녀를 연기할 때 특히 빛을 발한다.
‘주유소 습격 사건’의 꼴통 4인방은 영화 속 이성재, 강성진, 유오성, 유지태가 분했던 캐릭터들의 특징을 극대화한 모습이다. 4인방의 리더이면서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노마크 역의 최재웅, 노래 없인 한시도 살 수 없는 다혈질 딴따라 역의 이율, 단순무식의 극치 무대포 역의 문종원, 아티스트적인 아우라를 발산하는 뻬인트 역의 이신성까지……. 외모만 봐도 어떤 캐릭터인지 짐작이 갈만큼 영화 속 캐릭터를 빼다 박은 이들은 공연 내내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발산하며 객석을 들썩이게 한다.
- 재기발랄 스토리 vs 통쾌한 상황극
2007년 작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제목도 영어로 바꿔 단 ‘마이 스케어리 걸.’ 오랜 워밍업 기간을 거친 ‘마이 스케어리 걸’의 꼼꼼한 스토리 전개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라 할 수 있다. 정당성을 부여하기 힘든 비호감 노총각과 연쇄 살인범의 사랑 이야기에 관객이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무대용으로 적절히 수정된 대본의 힘이다.
영화가 코믹통쾌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면 뮤지컬 ‘주유소 습격 사건’은 해프닝 뮤지컬을 표방한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스토리를 배제하고 그때그때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예기치 못한 재미를 찾는 것. 영상 기법을 이용한 액티브한 무대에서 각각의 캐릭터별로 나열되는 에피소드들은 마치 만화를 보는 것 같은 독특한 즐거움을 준다. 보다 적극적으로 공연을 즐기고 싶다면 무대의 연장 개념인 ‘해프닝존’에서 앉아 관람할 것. 배우 누구와 어떤 해프닝이 빚어질지 며느리도 모른다.
- 팝과 가요의 하모니 vs 열정적인 록발라드
대사와 매끄럽게 연결되면서 극 중 상황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넘버들은 ‘마이 스케어리 걸’이 갖는 장점 중 하나이다.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강렬함은 다소 부족하지만 대사, 안무와 삼위일체가 되는 듯한 ‘마이 스케어리 걸’의 넘버엔 아기자기한 매력이 가득하다. 유희열, 김동률의 발라드는 물론 송대관의 ‘네 박자’ 같은 트로트도 즐겨 듣는다는 작곡가 윌 애런슨은 팝(Ppp)의 경쾌함과 가요의 서정성을 버무려 듣기 편한 멜로디를 완성하였다.
‘주유소 습격 사건’의 넘버는 록(Rock)으로 정리할 수 있다. 영화 O.S.T.를 만들었던 손무현 음악 감독의 손을 거쳐 한층 강렬하게 편곡된 넘버들은 하룻밤 사이 일어나는 해프닝에 담긴 서민의 애환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된다. ‘오늘도 참는다’, ‘희망가’, ‘작은 사랑’ 등 귀에 익숙한 영화 O.S.T.들을 빵빵한 라이브 사운드로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지막 10여 분간 몰아치는 미니 콘서트는 이 작품의 백미다.
* 이것만은 놓치지 말자
마이 스케어리 걸-> 멋지다는 말 한마디에 길고 긴 몸을 배배 꼬며 수줍게 ‘여성전용’을 외치는 신성록의 표정. 진중한 분위기의 훈남을 주로 연기해온 그가 정말 제대로 망가진다.
주유소 습격 사건->공연 내내 객석을 향해 들이대는 이신성의 카메라. 공연도 보고 추억도 남기고 그야말로 일석이조. 단, 표정관리는 필수!
조수현 lovestag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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