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다. ‘자살’과 (그의 앞뒤로 붙은) ‘기발한’과 ‘여행’이란 단어에는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 분명히 끔찍하고 문제적 행위인 ‘자살’이 기발하든 무난하든 무슨 상관이며, 한 순간에 끝나버릴 일을 무슨 여행까지 가서 한다는 것인가. 민감한 사회문제에 대한 귀여운 도발과 엉뚱하고 웃음 가득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이다.
- 가장 죽고 싶은 사람이 가장 살고 싶은 사람이라는 아이러니
한 명은 사업에 실패한 중년의 아저씨이고, 다른 한 명은 통일이후 임무를 잃어버린 장교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이런 삶은 비참하니, 그만 죽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우연찮게 같은 마음을 품은 동지를 만나게 된 두 사람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 ‘혼자’ 죽으면 외롭지 않겠나. 우리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죽자. 그들은 살 힘이 남지 않은 사람들이니,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의욕적으로 자살 동지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한다. 우여곡절 끝에 모인 자살단체. 집단자살을 하기 위해 탑승한 버스에서 이야기가 끝날 줄 알았는데 웬걸, 그 시점에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서울-평양-중국-실크로드에 이르는 예기치 않은 대장정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혼자서도 몇 번이나 실패했던 자살시도는 함께여도 계속된다. 이 사람들 진짜 자살하고 싶은 거 맞나?
삶이 가져다주는 뼈아픈 배신감은 삶에 대한 애착이 있기에 더욱 절절하다. 세상을 떠나려던 이들은 세상을 열렬히 붙잡고 있었던 자들인 것이다. 뮤지컬은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 갖는 아이러니를 포착한다. 그리하여 자살하고 싶은 사람들이 사실은 가장 죽기 싫은 사람이란 내포된 진실을 꺼낸다. 깊은 물속에 가라앉았을 땐 밑바닥을 짚어야 수면 위로 올라 올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처럼, ‘자살여행’이라는 행위가 되찾아주는 삶의 의욕과 절실함에 뮤지컬은 더없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 뮤지컬의 숨은 감초, 기발한 무대장치들
무대 위의 어두침침한 푸른빛이 자아내는 음산한 분위기와 장엄하고 으스스한 주요 테마곡은 뮤지컬의 주제인 ‘자살’과 연관된다. 이와 같이 기본 무대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각종 무대효과는 뮤지컬의 또 다른 맛이자 두드러지는 관람 포인트라고 하겠다. 무대의 뒤쪽 벽에는 무대 스크린이 설치되어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을 확장시켜준다. 서울역, 평양, 중국, 실크로드를 가로지르는 뮤지컬의 장대한 스케일이 무대 스크린을 통하여 살아난다. 자살 여행의 이동 수단인 빨간 버스는 분리, 조립되어 관객이 버스의 정면과 측면을 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이를 통해 움직이는 버스의 역동감을 표현해내기도 한다. 음향의 적절한 크기조절은 뮤지컬의 극적인 순간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이 외에도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세심한 무대효과가 뮤지컬의 곳곳에 배치되어있으니 그것을 찾아보는 것도 뮤지컬의 솔솔한 재미이다.
- 버라이어티한 인간군상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처럼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하는 연극도 드물 것이다. 인물들이 구사하는 남북을 넘나드는 구수한 지역별 사투리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구구절절한 자살 사연들만큼이나 뮤지컬이 담아내는 한국의 인간군상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 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들만큼은 자신이 관객을 즐겁게 해는 엔터테이너라는 사실을 한 시도 잊은 적이 없는 듯하다. 1인 2역의 뒷북치는 발명가와 안기부 소속원은 극의 막간을 이용하여 등장하여 웃음을 준다. 이 배우는 불과 3초 만에 옷을 갈아입고 다른 역할로 변신하여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한다. 다른 인물들도 그들의 캐릭터성을 극대화하여 관객들에게 웃음을 준다. 매사에 소심한 전직 사장, 허영심 가득한 왕년 최고여배우, 자살도구 마니아인 소녀, 무감증이라 모든 일에 덤덤한 사내, 약간 모자라 보이는 아내, 폭주족 등 설정만으로도 웃음을 자아내는 인물들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 나머지, 한 인물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공감은 힘들다. 하지만 무대 위의 인물들은, 각기 하나의 음표가 모여 하나의 곡을 완성하듯이 자신의 사연과 비밀을 적재적소에 터트려주어 보기 좋은 앙상블을 이룬다. ‘기발한 자살여행’이 타 뮤지컬에 비해 드라마틱하거나 기승전결이 뚜렷한 구성을 갖지 않으면서도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 이유다.
강민경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 김고운 기자 vortexg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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