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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하룻밤 로또 찾기 소동’이 주는 묘한 여운,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말라버린 우물처럼 이 집안도 결국 바닥을 드러내는 것인가. 상갓집의 음울한 기운이 감도는 경북 안동의 어느 종갓집. 흡사 조선시대로 착각될 만큼 전통적인 상례복장을 차려입은 친척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3년 동안 코빼기 하나 보이지 않는 종갓집 두 아들을 타박한다. 아비가 죽었는데도 당장 뛰어오지 않는 이 녀석들은 ‘썩. 썩. 썩을 놈의 석봉이’와 ‘죽. 죽. 죽일 놈의 주봉이’. 큰아들 녀석은 종갓집 장남답게 듬직하고 효를 다하기는커녕 허허실실 호탕한 성격에 도박과 경마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지 않나, 작은 아들 녀석은 똑똑한 머리로 데모하다 쇠고랑차고 가당치도 않은 여자와 도둑장가 들려다 이혼까지 당했단다. 심지어 무뚝뚝한 외골수 아버지 ‘춘배’의 죽음 앞에서도 이들은 눈 하나 깜짝 않고 조의금 분배에 이를 갈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을 일체 함구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품은 채, 안 그래도 잘 안 풀리는 인생살이에 서로에게 걸림돌이 되기만 하는 ‘석봉’과 ‘주봉’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형제지간이 된지 오래였다.

순간 ‘뾰로롱’하는 특유의 음악을 타고 등장한 묘령의 여인 ‘오로라’. 눈부시게 아름다우면서도 이상하리만치 형제의 이상형과 딱 맞아떨어지는 그녀의 출현은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예쁜 눈망울은 지닌 바비인형처럼 나긋나긋한 매무새의 ‘오로라’는 형제에게 로또라는 일확천금의 기회를 귀띔해준다. ‘내가 어릴 때부터 자라왔던 이곳, 지긋지긋했던 이곳에 인생역전의 기회가 숨어있다?’ 축시에 귀신이 나타난다는 흉흉한 소문도 잊어버린 채 형제들은 발 벗고 온 집안을 들쑤시기 시작한다.

여기까지의 내용만으로는 그저 흔한, 공연 좀 봤다하는 사람이라면 짐작할만한 뻔한 이야기일 것으로 보인다. 결국에는 형제들이 화해하고 부모에게 사죄하는 교훈적인 뮤지컬이겠거니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용감한 형제의 이야기를 더욱 매력 있게 만드는 요인은 ‘오로라’라는 신비로운 캐릭터의 설득력 있는 등장, 종국에 밝혀지는 아버지 ‘춘배’의 진정한 속내, 곳곳에 맛깔나게 넣어주는 친척들의 추임새에 있다.
극의 초반부터 꾸준히 형제를 질타하는 종갓집 친척들은 한복 속에 감추어진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듯 격정적인 춤사위를 보여준다. 사뿐사뿐한 버선코놀림에 “say,에헴!”을 외치며 경상도 사투리와 랩을 한데 엮어 일순간 힙합전사로 돌변하는 그들에게선 생동력 넘치는 젊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구슬픈 곡소리와 비트 있는 랩이 교묘하게 한데 어울려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흥을 돋우기도 했다. 한껏 감정이 격할 때 등장하는 의외의 노래와 춤, 배우들의 표정연기는 관객들을 기분 좋게 당황시켰다. 형제간의 말다툼이 격해질 때쯤, 난데없이 “난 네가 싫었어~”라며 부르는 정성화씨의 서정적인 발라드풍의 노래를 들은 관객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방금까지 죽일 듯 싸우다가 마치 연인이라도 되는 냥 손바닥을 곱게 맞잡는다. 이처럼 극 전반에는 진지함과 장난스러움이 엎치락뒤치락 섞여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무대의 이미지도 한몫을 했다. 형제의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극 초반에는 어두운 빛깔의 고보 조명(작품의 실루엣을 잘 살리는 특수필터사용 조명방식)이 자주 등장했다. 종갓집의 전통한옥에 걸맞게 드리워진 나뭇잎 모양의 조명은 그 빛깔과 모양에서 한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했다. 또한 삶과 죽음의 경계,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시점에는 영적 존재를 연상시키는 청색과 자색 조명, 공포감을 조성시키는 적색 조명을 시시각각 사용하여 무대 위의 공간이 현실세계가 아님을 암시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무대 장치에 있어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한국고유의 ‘종갓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표현하기에 창호지발린 문과 고목으로 만든 대문, 평상은 어딘지 모르게 진부한 감이 있었고 죽담이 둘러진 무대 외곽은 왜색이 느껴져 안동지방 종갓집은 과연 저런 모습일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시간동안 온통 관객들의 정신을 빼앗은 요인은 탄탄한 이야기 구성에 있다. 늘 이야기해도 모자란 부모님에 대한 향수, 형제의 미더운 우애 등은 우리의 가슴 한구석을 파고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 무대 위의 형제를 진정 용감하게 만든 것은 종갓집 종부로서, 그리고 아내,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다간 ‘어머니’라는 존재였다. 아니, 그보다 그 어머니를 전부로 알았던 아들들이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이다. 일 년에도 제사를 몇 십 번 지내고 시부모, 남편, 아이들 뒷바라지에 멍들대로 멍들어버린 어머니, 그 곁에는 무뚝뚝한 마음을 갓 익은 감 하나로 넌지시 건네는 아버지가 있었다.
하룻밤 새 로또를 찾으려다 ‘로도(努道)’라는 글귀를 찾은 형제들의 개과천선 이야기는 객석에 앉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심어준다. “빈손으로 돌아오긴 싫었어.”라며 자신이 무엇인가를 얻기 전까지 부모님이 마냥 기다려줄 것이라 생각하는 자식들. 옛것은 모두 고리타분해서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신세대들. 그들이 성장하여 사람답게 커올 수 있었던 것은 외로이 종갓집의 우물을 지키듯 묵묵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부모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석봉’과 ‘주봉’이 ‘로도(努道)’의 끝에서 지켜낸 종갓집 우물처럼 우리 각자가 지켜내야 할 그 ‘무엇’이 가슴 속에 있지는 않은가. 그저 웃고 박수치는 ‘즐길 거리 뮤지컬’과 달리 말썽꾸러기 아이들조차 숙연하게 만드는 ‘감동거리 뮤지컬’이 바로 ‘형제는 용감했다’다.


홍애령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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