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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공연 상!상!賞!]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져리그로, 뮤지컬 ‘헤어’

 

 


영국 축구에 프리미어리그가 있다면 미국 야구에는 메이져리그가 있다. 영국 웨스트엔드에 프린지가 있다면, 브로드웨이는 그 유명한 오프-브로드웨이가 있다. 영국 프린지에서 인정을 받아 웨스트엔드 메인 무대로 진출하는 경우가 있다면 미국에서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작품성을 인정 받은 작품들이 브로드웨이로 옮겨가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져리그로 발돋움한 작품들은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다. 많은 작품들이 완성도면에서 신중을 기하면서, 작은 무대에서 먼저 검증을 받은 후 큰 무대로 옮겨가고 있다. 2008년 토니상 최우수뮤지컬상을 수상한 ‘인더하이츠’와 후보였던 ‘패싱 스트레인지’ 모두 오프-브로드웨이를 거쳐 온 작품이다. ‘제리 스프링어: 더 오페라’가 프린지에서 웨스트엔드를 옮겨가면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작품이라면 오프-브로드웨이의 문제작은 락 뮤지컬의 원조 ‘헤어(Hair: The American Tribal Love-Rock Musical)’였다.

작지만 매운 Off-Broadway



오프-브로드웨이 연극이나 뮤지컬은 뉴욕내에서 공연되는 작품들을 일컫는다. 본래 ‘오프-브로드웨이’는 극장의 특정 지리적 위치에 따라 분류되었으나, 현재는 뉴욕시에 속해있는 99-500석 규모의 공연장을 의미한다. 오프-브로드웨이 작품들은 브로드웨이에 올려지는 작품들에 비해 그 규모가 작다. ‘코러스 라인’, ‘렌트’, ‘리틀숍오브호러즈’ 모두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인정 받아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작품들이다. 하지만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반드시 큰 무대로 옮겨가는 것은 아니다. ‘알타보이즈’나 ‘블루맨그룹’은 오프-브로드웨이서 자리를 지키며 꾸준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뮤지컬 역사상 가장 오래 공연된 ‘판타스틱스’는 42년간 오프-브로드웨이서 터줏대감 역할을 했다. 많은 실험적인 작품들이 오프-브로드웨이를 수놓는다. 최근 들어 많은 수의 작품들이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시작으로 미흡한 점을 보완해 더 큰 무대로 올라서고 있다. 2007년 토니상 최우수뮤지컬상을 거머쥐고 한국 초연을 앞둔 ‘스프링 어웨이크닝’ 또한 이런 단계를 밟아 왔다.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져리그로

‘헤어’는 초반 수 많은 브로드웨이 제작자들에게 거부당했다. 여러 번 좌절을 맛본 ‘헤어’는 마침내 뉴욕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을 주최한 조 파프(Joe Papp)에 의해 퍼블릭 씨어터에 올려졌다. 하지만 초반 공연의 진행은 매끄럽지 못했다. 리허설과 섭외 일정 등이 혼선을 일으켰고, 일차적으로 많은 공연 관계자들의 극본 자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혼란 속에 ‘헤어;는 1967년 10월 17일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렸다. 평단의 반응은 미지근했지만, 관객의 반응을 폭발적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헤어’는 1968년 4월 29일 브로드웨이에 둥지를 틀었다. 오프-브로드웨이서의 문제점들을 보완해 더욱 견고해진 ‘헤어’는 평단의 긍정적인 평가를 끌어냈다. ‘헤어’는 관객과 평단의 호응에 힘입어 1968년 토니상 최우수뮤지컬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히피들의 뮤지컬 – Hair!

‘ 헤어’는 제임스 라도의 극본과 제롬 라그니(Gerome Ragni)의 음악으로 만들어졌다. ‘헤어’는 장발의 ‘물병자리 히피’들이 베트남 전쟁 강제 징집에 대한 반대 운동을 펼치는 이야기를 따라간다. 이 작품의 제목인 ‘헤어’는 1960년대 장발 규제를 지칭하고 있다. 이 뮤지컬은 주인공인 클로드와 버거 그리고 그들의 룸메이트 쉴라는 마약과 섹스 그리고 전쟁 중의 평화주의 운동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헤어’는 “선구자적 뮤지컬”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1960대 히피 열풍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의 음악은 실제로 베트남 반전 운동에 주제가로 사용되기도 했다. 또한 ‘헤어’는 락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새롭게 소개했다. 락 뮤지컬을 표방하는 이 작품은 실제 미국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뮤지컬 ‘헤어’의 넘버들은 수 많은 가수들에 의해서 다시 불려졌고, 수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삽입곡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헤어’ 이후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갓스펠’ 등 수 많은 락 뮤지컬이 성공 궤도를 달리기도 했다. ‘헤어’는 금시기시된 주제들을 서슴없이 쏟아 내며 크나큰 사회적 파장을 가져오기도 했다. ‘헤어’의 제1막의 피날레에서는 브로드웨이에서 최초로 남녀 배우의 전라 장면이 삽입되었고, 공연 중 성조기를 훼손시키고 욕설이 등장하면서 법원까지 논쟁이 이어지기도 했다. ‘헤어’는 1967년 공연 이후 2008년까지 끊임 없이 전세계적으로 재공연되었다. 비록 ‘헤어’가 1968년 토니상 후보에 그쳤지만 이 작품은 시대에 구애 받지 않고 사랑 받으며 진정한 ‘선구자’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이예린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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