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들의 뮤지컬 진출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이제는 하나의 트렌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가수들이 뮤지컬 시장을 노크하지만 어설프게 덤벼든 다수는 준비와 실력 부족으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갔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당당하게 뮤지컬 배우로 자리 잡은 이들이 있으니 바로 바다(최성희)와 옥주현이다.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여성 뮤지컬 배우가 부족한 우리 뮤지컬계의 현실에서 이들의 등장은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 반갑기 그지없다.
80년생. 우리 나이로 스물아홉 동갑내기, 90년대를 지배했던 여성 그룹 SES와 핑클의 메인 보컬, 대학에서 연극영화학 전공, 그룹 해체 후 솔로 데뷔, 그리고 뮤지컬 진출과 성공……. 이들의 행보는 놀라우리만치 닮아 있어 종종 비교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그 과정은 사뭇 다르다. 이제는 뮤지컬 배우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그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 바다, ‘페퍼민트’에서 ‘미녀는 괴로워’까지
뮤지컬 배우로서의 출발은 바다가 빨랐다. 바다는 2003년 창작 뮤지컬 ‘페퍼민트’에서 선정적인 노래를 부르는데 질려버린 톱 가수 역으로 뮤지컬 신고식을 치른다. 작품 자체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지만 바다는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그녀 또한 이 작품이 뮤지컬을 향한 의지를 심어준 작품이라 회고한다.
그 후 솔로 가수 활동 등으로 잠시 숨고르기를 한 바다는 2007년 ‘텔 미 온 어 선데이’와 ‘노트르담 드 파리’로 뮤지컬 배우로서 입지를 굳히게 된다. 30대 초반 싱글 여성의 연애담을 그린 1인극 ‘텔 미 온 어 선데이’로 연기의 폭을 넓힌데 이어 프랑스 대작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매혹적인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 역으로 연기의 깊이를 더하며 뮤지컬 배우로 당당히 인정받게 된 것. 특히 ‘노트르담 드 파리’는 8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함과 동시에 바다에게 신인상과 인기상을 안겨주어 그녀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라 할 만하다. 바다는 오디션을 자청해 에스메랄다 역을 따냈으며 파리 현지로 날아가 보컬 수업을 받는 등 작품에 대한 열의를 보였다고…….
여세를 몰아 바다는 2008년 12월 현재 창작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에서 열연 중이다. ‘미녀는 괴로워’는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무비컬. 이 작품에서 바다는 뚱뚱한 대창(代唱) 가수에서 성형 미녀 가수 제니로 변신하는 주인공 강한별 역을 맡았다. 그녀는 개막 전 인터뷰에서 SES 시절 유진과 슈 두 멤버에게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음을 밝히기도 했는데, 미녀 가수 제니로서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캐릭터는 외모가 아닌 노래가 자신의 정체성임을 깨달았다는 바다의 모습과 겹쳐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역할에 깊은 애착을 드러낸 바다는 뚱녀를 연기하기 위해 오랜 시간 특수 분장을 한 채 연기해야 하는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고 정상급 가수였던 경험을 십분 발휘해 무대를 휘어잡고 있다. 그녀의 연기 열정에 관객은 매회 기립 박수로 화답하고 있으며 ‘미녀는 괴로워’는 현재 공연 예매 사이트 수위를 점령하며 순항 중이다.
- 옥주현, ‘아이다’에서 ‘캣츠’까지
출발은 바다가 빨랐지만 먼저 주목을 받은 건 옥주현이다. 옥주현은 2005년 12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디즈니의 초대형 뮤지컬 ‘아이다’의 타이틀 롤 아이다로 캐스팅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가수 시절보다 더 연습을 열심히 한 것 같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성실하게 작품에 임한 결과 신인상을 수상하며 뮤지컬 배우로서 화려한 시작을 알리게 된다.
성공적인 데뷔였지만 그녀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해 옥주현은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들어야 했다. 하지만 옥주현은 이에 굴하지 않고 2007년 브로드웨이 대작 뮤지컬 시카고의 여주인공 록시 역을 맡아 주연상까지 거머쥐었다. 그녀가 록시 역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들리자 옥주현은 록시보다는 벨마에 어울린다며 미스 캐스팅이 아니냐 하는 말이 많았다. 그러나 옥주현은 초연 때 록시 역을 맡았던 전수경으로부터 연기 지도를 받으며 앙큼하고 도발적인 매력의 록시를 훌륭히 소화해낸다. 그녀의 연기력에 대한 비판이 잠잠해졌음은 물론이다.
2008년 12월 현재 옥주현은 ‘캣츠’의 그리자벨라 역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캣츠’는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꼽히는 대작이며 그 중에서도 그리자벨라는 불멸의 뮤지컬 넘버 ‘메모리’를 독창하는 ‘캣츠’의 히로인이다. ‘메모리’는 화려한 젊은 시절을 뒤로 한 채 쓸쓸한 노년을 보내는 그리자벨라가 과거를 회상하며 부르는 노래로, 지금 한창 전성기를 맞이한 옥주현이 과연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 그러나 혼신의 힘을 다하는 그녀의 열창에 감동 받았다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이번에도 옥주현의 성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 우열을 가리기 힘든 그녀들의 신(新) 라이벌 구도
누가 뭐래도 바다와 옥주현은 현재 뮤지컬계에서 여성으로서는 흔치 않은 흥행 카드다. 그러나 뮤지컬계에서 입지를 굳히기까지 두 사람의 그 접근법은 사뭇 달라 보인다.
바다는 의도했든 아니든 퍽 영리한 선택을 해왔다. 기존 흥행 뮤지컬의 주역으로 단박에 주목을 받기보다는 국내 창작 작품으로 데뷔하며 뮤지컬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인정받았다. 이어 모노 뮤지컬, 유명 라이선스 뮤지컬, 무비컬 등을 거치며 차근차근 내실을 다져갔기에 바다는 별 거부감 없이 뮤지컬 팬들에게도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반면 옥주현은 매번 대작 뮤지컬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작품에 캐스팅될 때마다 미스 캐스팅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편견과 싸워야 했다. 그 때마다 옥주현은 매사에 자신감 넘치는 그녀답게 정면 돌파를 선택했고 승리의 여신은 언제나 그녀의 편이었다.
무대에서 보여 지는 두 사람의 매력 또한 판이하다. 두 사람의 가창력과 댄스 실력이야 가수 시절부터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지만 바다가 섬세한 감성과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관객에게 어필한다면 한때 성악가가 꿈이었던 옥주현은 풍부한 성량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바다가 좀 더 다양한 무대에 어울리는 매력을 가졌다면 옥주현은 대극장 무대에서 빛을 발할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아직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그녀들이기에 속단은 이르지만 말이다.
이렇듯 닮은 듯 다른 행보를 보여 온 그녀들이지만 뮤지컬을 향한 열정과 노력만큼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것이다. 물론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뮤지컬 전문 배우들에 비해 메리트를 갖고 출발한 만큼 인정받기 위한 치열한 노력은 당연하다.
중학생 때부터 뮤지컬 배우를 꿈꿨으며 꿈을 이룬 지금 무척 행복하다는 바다. 평생을 뮤지컬 배우로 살고 싶다는 옥주현. 가요계 양대 여성 그룹으로 자존심 대결을 벌였던 그녀들이 앞으로 계속 뮤지컬을 하는 한, 둘은 비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좌우당간 뮤지컬 팬의 입장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실력을 쌓아가는 그들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 즐겁고 흐뭇한 일이 될 것 같다. 그녀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조수현 lovestag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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