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으로 오랜만이다. 공연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뮤지컬 ‘즐거운 인생.’작품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호불호(好不好)가 엇갈리는 듯하다. 그러나 작품이 좋고 나쁨을 떠나 무언가 나를 토닥거려 주는 것 같은 그 느낌 때문에 공연장을 다시 찾게 되었다. 처음 봤을 땐 무슨 재료를 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묘하게 감칠맛이 나는 잡탕 찌개 같았던 작품이 비로소 정리가 되면서 재료도 보이고 양념도 보인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에너지와 위로는 여전했다. 지독히 외로운 노총각 음악 선생 범진, 개그맨을 꿈꾸는 고학생 이세기, 사채에 시달리는 시나리오 작가 선영... 이 우울한 인생들이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 뮤지컬 ‘즐거운 인생’의 키워드들을 오만석 연출의 입을 빌려 살펴보았다.
- Challenge(도전)- 뮤지컬 스타 오만석, 연출에 도전하다
‘즐거운 인생’의 중심에는 오만석이 있다. ‘즐거운 인생’은 작품 자체보다도 뮤지컬 최고의 스타인 오만석의 연출 데뷔작으로 개막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이슈를 위한 일회성 연출이 아니다. 작품의 원작자인 김태웅 씨의 권유로 생각보다 빨리 연출가로 데뷔하게 되었다는 오만석의 ‘즐거운 인생’에는 오래 전부터 연출에 뜻이 있었던 그만의 색깔과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의도한데로 작품이 잘 나온 것 같다는 오만석은 작품에 대한 평가가 좋고 안 좋고를 떠나 많은 이야깃거리, 논란거리가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또 다른 연출 제의도 들어오고 있다니 그의 연출 데뷔는 성공적인 것 같다.
(오만석) “이 공연은 그야말로 보고 싶고 느끼고 싶은 것만 가져가도 되는 공연이거든요. 어떤 사람은 마지막 장면에서 웃고 있기도, 어떤 사람은 울고 있기도 하고... 이걸 하나의 문화 상품이라고 본다면 저는 문화 상품이 관객들에게 다양성을 가지고 어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러 반응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 만족스러워요. 그것이 좋든 나쁘고 와는 별개로 말이죠.”
- Experimentation(실험)- 새로운 시도, 낯설거나 신선하거나
‘즐거운 인생’은 연극이 원작이다. 오만석 연출은 연극을 뮤지컬로 옮기는 과정에서 여러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는 스토리 라인에 따라 관객들에게 일관된 반응을 이끌어 내는 연출을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선영이 자살하는 장면에선 종이비행기가 날아다니고 범진과 선영의 갈등 상황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설정해 다른 배우들이 웃고 떠들면서 구경하게 한다. 하나같이 잘 빠졌다는 좋은 평가를 듣고 있는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접한 세기가 부르는 노래는 듣다 보면 흥이 날 정도로 경쾌하다. 다소 산만해 보일 수 있는 이 부분에서 관객들의 호불호(好不好)가 엇갈린다.
(오만석) “똑같은 상황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눈물이 나는 장면일수도, 어떤 사람에겐 웃긴 장면일수도 있잖아요. 저는 작품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맡기고 싶었어요. 그래서 관객이 볼 때 분위기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걸 많이 깨려고 노력했죠.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도록 여러 장치를 마련했어요.”

- Skinship(스킨십)- 관객과 무대는 하나
‘즐거운 인생’은 오프닝부터 독특하다. 배우들은 극이 시작하기도 전에 무대에 나와 몸 푸는 모습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노출시킨다. 관객들이 좀 더 빨리 공연장의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작품을 관람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인 동시에, 배우들에게도 색다른 형식의 몸 풀기로 무대를 즐길 수 있게 하려는 의도다. 또 ‘즐거운 인생’은 유독 관객과의 스킨십이 잦다. 때에 따라 관객은 배우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학생이 되어 수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오만석 연출은 극에 관객을 참여시켜 무대와 현실이 결코 멀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단다. 그래서 더욱 관객은 모든 갈등이 마무리되고 부르는 배우들의 희망 노래에 저마다 간직한 크고 작은 상처가 치유되는 듯한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닐까.
(오만석)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게 흥미를 유발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무엇보다 극중 캐릭터들의 삶과 관객들의 삶이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니란 이야길 하고 싶었어요. 관객들이 극 속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중요한 장면에서 의도적으로 조명을 객석으로 던지기도 했죠. 극중 캐릭터들이 모두 한 다리 건너 얽히고설켜 있듯이, 다 남의 이야기 같아도 한 세상을 사는 한 결국 우리의 이야기니까요.”
- New face(뉴페이스)- 참신한 신인 배우의 등장
‘범진’역의 유준상, 임춘길. ‘선영’역의 이영미, 백주희 등 ‘즐거운 인생’에는 실력파 배우들이 즐비하지만 단연 눈에 띄는 캐스팅은 ‘이세기’역의 김무열, 라이언(주종혁), 정원영이다. 된소리로 발음하면 아주 민망스러울 이름 ‘이세기.’ 하지만 바람나 집을 나간 엄마에다 아빠는 돈 벌러 나갔다 사고사를 당해 졸지에 고아가 된 최악의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개그맨의 꿈을 키워나가는 세기는 참으로 고운 청춘으로, ‘즐거운 인생’의 메시지를 가장 명확히 드러내는 캐릭터다. 이제는 더 이상 유망주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성장한 김무열은 역시 노련하게 캐릭터를 소화하며 그의 이름값을 하고 있고 초짜나 다름없는 라이언, 정원영은 예상을 뛰어 넘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그들만의 ‘세기’를 창조했다.
(오만석) “원영이는 제가 ‘내 마음의 풍금’을 할 때 앙상블을 했던 친군데 가지고 있는 재능과 끼, 그리고 이 작품에서 세기로서 풀어낼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을 거라 생각이 돼서 같이 하게 됐어요. 라이언은 아이돌 그룹 출신이지만 연기에 대해 굉장히 진지하고 배우로서 거듭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친구에요. 무열이야 워낙 잘하잖아요. 세 사람이 각각 다른 세 명의 세기를 보여줄 거라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다들 열심히 해줘서 참 고마워요.”
- Best teamwork- 환상의 팀워크
‘즐거운 인생’에는 사실 주연, 조연이 따로 없다. 범진, 세기, 선영은 물론이고 모든 캐릭터에게 골고루 눈길이 가는 것. 주연급의 세 캐릭터를 제외한 다양한 배역들을 재능 넘치는 멀티맨들이 소화해내는데 모두가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연습 기간 내내 배우들의 팀워크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데, 그들은 오만석이 연출하는 작품이라면 또 출연하고 싶다며 연출가에 대한 신뢰를 보내기도...
(오만석) “팀워크를 위해 한 일이라고는 연습 초반에 제가 주도해서 제주도로 2박 3일 MT를 다녀온 것... 제가 한 노력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워낙 멤버들이 좋아서 제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 너무 호흡이 좋았고요. 그래서 첫 연출임에도 불구하고 참 재미있게 연습한 것 같아요.”
조수현 lovestage@empal.com
사진 김고운기자 vortexg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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