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깃븐우리절믄날’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서울(경성)을 배경으로 그 시절 젊은 예술가들의 교유와 그들을 둘러싼 연애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작가 겸 연출가 성기웅은 ‘조선형사 홍윤식’,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사람들’을 통해 종래의 문화와 새로운 문화가 충돌하는 모습을 그려온 바 있다. ‘깃븐우리절믄날’에서는 모던한 문화가 화려하게 꽃을 피워가는 30년대 중반,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소설가 구보 박태원과 시인 이상을 중심으로 그들 사이에 벌어졌던 실제 연애사건을 이야기 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텍스트를 통해서만 봐왔던 소설가 구보와 시인 이상을 만난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27세의 나이로 짧은 인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난해한 작품들은 아직까지도 한국 문단에서 회자되고 있는 시인 이상. 그의 모습이 어떻게 고증되었는지, 그리고 이상을 연기하는 배우 전병욱은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냈는지 주목해보았다.
- 천재 시인 이상보다는 자연인 이상으로
배우 전병욱이 그려낸 이상은 천재 시인이라는 느낌보다 자연인으로서의 이상을 연상케 한다. 작품 자체가 소설가 구보, 매일신보사 기자 인택, 이상 등 세 명의 남자와 카페 여급 권영희 사이의 연애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연극 ‘깃븐우리절믄날’ 속의 이상은 ‘내가 학창시절 알았던 그 이상이 맞나?’하며 자문하게 만들 정도다. ‘제1의아해’부터 ‘제13인의아해’를 주욱 늘어놓던 그 난해한 이상 말이다. 대신 쓸쓸한 수염 뒤로 반듯한 외모를 내민 배우 전병욱은 전처 권순희와 새 연인 영희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랑에 빠진, 그리고 우울한 예술가로서의 이상을 살려냈다. 하지만 정작 권영희와 이상이 함께 무대에 서는 신은 한 장면도 없다는 사실. 오직 소설가 구보를 통해 본 이상에 대한 질투와 카페 여급에게 쉴 새 없이 추파를 던지는 그를(이상) 보며 낯설고도 친근한 이상을 발견할 뿐이다.
- 감춰진 우울함과 1935년
전병욱의 차림은 사진 속의 이상을 그대로 고증해낸다. 반듯하면서도 자연스레 풀어헤친 양복과 계속해서 양담배를 꼬나무는 그의 와일드함은 당시대 최고의 모던보이라는 타이틀에 금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말끔한 신사의 이미지 뒤에는 우울한 예술가의 이미지 역시 내재되어있다. 그가 항상 주머니에 소지하고 다니는 수면제가 그렇다. 연극의 초점이 1935년에 맞춰져 있고 그가 죽었던 해가 1937년임을 감안한다면 그의 정신적인 피폐와 혼돈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를 통해 드러나는 이상은 절대 우울하지 않다. 그것은 ‘연애고민과 작품구상에 빠진 이상’이라는 캐릭터 설정 속에 전병욱의 가벼운 대사처리가 그의 우울함을 감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천재 시인의 상실감을 더욱 진중하게 전달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실현된 부분이기도 하다. 시답잖은 농담 속에 꼬아진 그의 삼차원적 우울은 신문화의 보급으로 더없이 반짝거리던 1935년의 종로통의 아이러니와 꼭 닮은 것이 아니었을까?

심보람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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