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팜므 파탈의 이야기는 영원한 스테디셀러다. 예수를 유혹한 창녀에서 예수의 최후를 지키며 그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한 성녀... 희대의 영웅들을 치마폭에서 농락한 요부에서 뛰어난 정치 감각을 지녔던 이집트 최후의 파라오에 이르기까지... 막달라 마리아와 클레오파트라는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숱하게 다루어지면서 여러 사람의 손끝에서 재창조되어 왔다. 그렇다면 뮤지컬로 만나는 그녀들은 어떤 모습일까. 깊어진 가을, 마리아와 클레오파트라의 매혹적인 이야기가 무대에 올라 관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순수 창작 뮤지컬인 ‘마리아 마리아(이하 마리아)’와 최근 인기몰이 중인 체코 뮤지컬인 ‘클레오파트라’, 비슷한 듯 다른 두 작품의 키워드.
1. 토종 vs 라이선스
2008년에 만나는 ‘마리아’와 ‘클레오파트라’는 어느 때보다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2003년 초연 이후 많은 뮤지컬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마리아’는 순수 창작 뮤지컬로, 비영어권 뮤지컬 프로덕션 최초로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열리는 뮤지컬 씨어터 페스티벌에 초청되는 등 한국 뮤지컬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올해는 ‘마리아’가 선보인지 5주년이 되어 지난달 17일엔 역대 배우와 팬들이 함께 한 600회 기념 콘서트를 갖기도 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클레오파트라’는 현지에서 수십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체코의 인기 뮤지컬이다. 초연이라는 의미 외에 ‘클레오파트라’는 작품의 큰 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부분적 창조가 가능한 스몰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 정치색이 강한 원작을 다듬어 보다 우리의 정서에 맡는 무대가 가능 할 수 있었다.
2. 콧날 시큰 스토리 vs 극강 비주얼
‘마리아’의 관람 포인트는 무엇보다 밀도 높은 스토리텔링이 주는 감동에 있다. 창녀인 마리아가 예수를 유혹하려 애쓰는 과정과 구원 받은 마리아가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예수의 곁을 끝까지 지켜내는 이야기가 1막과 2막으로 나뉘어 전개되는데, 1막이 양념처럼 첨가된 코믹한 설정으로 간간이 웃음을 자아낸다면 2막은 마리아의 불운한 유년 시절과 고난을 겪는 예수의 이야기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서로 다른 장르인 듯 1, 2막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지만 이야기 전개가 억지스럽지 않다. 종교적 색채가 짙은 것은 사실이지만 굳이 크리스천이 아니라도 상처 입은 영혼이 이를 극복하고 바로 서는 이야기는 보편적인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에 비해 ‘클레오파트라’의 첫 번째 재미는 색다른 비주얼이 주는 즐거움이다. 지금까지 무대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고대 로마와 이집트가 주는 이국적인 매력은 가끔씩 맛보기에 더욱 특별한 별미 요리 같다. 변화무쌍한 세트, 화려한 의상, 춤으로 다져진 훈훈한 몸매의 앙상블이 선사하는 박력 있는 안무를 감상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브라보 앙상블! 스토리텔링은 상대적으로 다소 헐거워 보일 수 있으나 매 씬마다 폭발하는 등장 인물들의 오페레타는 장면하나 하나가 하이라이트처럼 느껴져 관객의 박수를 이끌어낸다.

3. 당신이었군요 vs 난 왕이 될거야
뮤지컬을 보고 극장을 나설 때 입가에 맴도는 넘버가 있다면 그 작품은 일단 반은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뮤지컬에서 메인 넘버, 즉 킬링 넘버는 야구 한일전에서 이승엽의 끝내기 홈런만큼이나 중요하다. ‘마리아’, ‘클레오파트라’에서는 각각 ‘당신이었군요’, ‘왕이 될거야’가 그와 같은 역할을 한다.
“당신이었군요. 찢어진 내 몸 위해 눈물 흘린 사람이...” 자신의 아픔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어루만지는 예수에 의해 마침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한 마리아가 부르는 ‘당신이었군요.’ 단 한번 불릴 뿐이지만 마리아가 토해내는 절절한 멜로디는 관객의 아픔까지 토닥여준다.
“난 왕이 될거야.(난 이집트의 왕) 신의 축복 속에서...” 여자로서의 삶에 좀 더 무게를 둔 ‘클레오파트라’의 메인 넘버 ‘왕이 될거야’는 가사를 바꿔 여러 번 리프레이즈 되면서 그녀의 꿈과 야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자신의 나라를 지키겠노라 다짐하는 아름답고 가녀린 여인을 지켜보고 있자면 주먹이 불끈 쥐어지면서 없던 야심까지 솟아날 지경... 삶에 나태해졌다고 생각될 때 중독한 강한 이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다잡아 보는 건 어떨까...
4. 캐스팅 vs 캐스팅
두 작품의 타이틀 롤에는 작품의 스타일만큼이나 다른 매력의 배우들이 더블 캐스팅되었다.
마리아의 캐스팅 시 전제 조건이 가창력이었던 걸까. 물론 뮤지컬 배우라면 기본적으로 노래를 잘 불러야 하지만 유독 ‘마리아’는 김선영, 이소정, 차지연 등... 가창력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시원시원한 발성의 뮤지컬계 디바들이 수두룩하다. 2008 ‘마리아’는 카리스마 넘치는 초대 마리아 강효성과 공연장을 날려버릴 것 같은 파워풀한 가창력의 8대 마리아 소냐가 다시 캐스팅 되었다.
‘마리아’가 가창력으로 승부를 걸었다면 ‘클레오파트라’는 이미지를 놓고 볼 때 이보다 더 적역일 수 없는 배우들로 눈길을 잡아끈다. 김선경과 박지윤. 수려한 미모의 두 여배우가 무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 관객은 ‘아 클레오파트라구나’라고 느낄 수밖에... 오랜 경력의 김선경은 노련한 연기로 ‘역시’라는 찬사를 받고 있고, 가수 출신으로 뮤지컬에 처음 도전하는 박지윤도 초반 우려를 떨치고 여리고 섬세한 클레오파트라를 표현해 내고 있다는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고 있다.
두 작품은 또 주인공 이상으로 화려한 조연으로도 이슈가 된 공통점이 있다. 지난 공연에서 예수 역에 허준호, 바리새인 역에 박완규 등을 무대에 세웠던 ‘마리아’는 이번에는 마왕 신해철을 바리새인 역에 캐스팅했는데, 신해철 특유의 카리스마와 능청스러운 연기가 잘 어우러져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런가 하면 ‘클레오파트라’에는 이름만으로 믿음이 가는 실력파 뮤지컬 배우들이 즐비하다. 올해 한국 뮤지컬 대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김법래와 대형 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민영기가 클레오파트라의 연인인 시저와 안토니우스로 분해 열연하고 있고 감미로운 미성의 최성원이 옥타비아누스를 맡아 작품에 무게감을 더한다.
조수현 lovestag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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