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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리뷰] ‘나’와 ‘그’가 남긴 것들, 뮤지컬 ‘쓰릴 미’

 

지난 일요일 저녁,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랙은 사람들의 열기로 들떠 있었다. 기존의 뮤지컬 공연장에선 보기 힘든 묘한 흥분감. 마치 한창 잘 나가는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장이나 좀처럼 접하기 힘든 팝스타의 내한 공연장에 온 것 같은 설렘이 가득했다. 이 날은 뮤지컬 ‘쓰릴 미’의 마지막 공연 날이었다. 화제작의 마지막을 축하하기 위해 오만석, 유준상, 이선균 등 낯익은 얼굴도 공연장을 찾았다. 어느 공연인들 마지막 무대가 소중하지 않을까마는 이곳의 과열된 공기는 ‘쓰릴 미’라는 작품의 특별함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소재와 형식의 새로움으로 한국 뮤지컬사에 방점을 찍은 ‘쓰릴 미’의 발자취를 키워드를 통해 돌아보았다.

1. New(새로움) - 새로운 시도로 가능성을 확인하다
‘쓰릴 미’가 처음 선보였던 2007년, 이 작품의 성공을 예상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동성애, 아동 유괴와 살해 등의 마이너한 소재에다 90분 공연 내내 휑한 무대에서 단 두 명의 배우가 극을 끌어가는 점 등... 관람객의 절대 다수가 젊은 여성인 한국의 뮤지컬 시장에서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 그러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초연 4개월여의 공연 기간 94%, 2008 재공연 91%의 객석 점유율. 우려되었던 점들은 오히려 관객에게 신선함으로 다가갔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실험성 짙은 작품에 관객들은 열광했고 작품의 소재가 된 1924년 시카고에서 일어난 ‘나’와 ‘그’의 충격적인 실화에 빠져들었다.
‘쓰릴 미’의 미덕이 소재의 파격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출과 음악, 배우 등의 빼어난 조합이 없었다면 작품의 인기는 초반에 반짝하고 사라졌을 터. 피아노 한 대와 두 명의 배우만으로도 꽉 찬 무대, 집중력을 배가시키는 조명의 효과적 사용, 살해 과정이 생생히 묘사되는 참혹한 가사 뒤로 흐르는 아름다운 피아노의 선율은 훈남 배우들의 호연과 어우러져 묘하게 유혹적이다.
여러 모로 ‘쓰릴 미’는 ‘헤드윅’과 비교된다. 판이하게 다른 작품의 분위기는 논외로 하더라도 동성애라는 소재, 소수의 출연진, 단출한 무대 등... 두 작품은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이들의 성공은 새로운 소재에 대한 관객의 열린 마음을 확인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2. Rediscovery(재발견) - 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다
‘쓰릴 미’의 ‘나’와 ‘그’는 배우들에겐 도전이었다. 농도 짙은 동성애 연기, 관객으로 둘러싸인 반원형의 무대에서 90분을 온전히 끌고 가야 하는 배우는 숨을 곳이 없다. 이 작품에서 배우의 역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며 그렇기에 작품의 최대 수혜자 또한 배우이다.
이 작품으로 뮤지컬 데뷔 10년 만에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린 류정한의 경우 연기 변신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가창력을 앞세운 대작 전문 배우로 인식되던 그는 2007년 초연과 이번 재공연에서 동성을 사랑하는 섬세한 성격의 ‘나’를 훌륭히 소화하면서 ‘류정한의 재발견’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초연 당시 대선배에 맞서 미워할 수 없는 악역 ‘그’를 훌륭히 그려내 유망주에서 당당한 주연급으로 자리매김한 김무열은 재공연 때 가진 인터뷰에서 기회가 된다면 ‘나’ 역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며 작품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실력에 비해 저평가를 받는 배우라 평가되던 최재웅과 초짜에 가까웠던 신예 이율도 이 작품을 통해 팬들의 아낌 없는 사랑을 받은 케이스다.
2008 공연에서도 ‘나’와 ‘그’의 캐스팅은 팬들의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치열한 오디션 끝에 ‘나’ 역에 김우형과 이창용, ‘그’ 역에 김동호가 낙점되어 성공적인 연기 변신을 꾀하였다. 김우형의 경우 남성성 강한 외모 때문에 여린 ‘나’를 표현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를 깨고 ‘소녀우형’이라는 닉네임을 얻을 정도로 ‘나’에 완벽히 동화된 모습을 선보였다.

3. toxication(중독) - ‘쓰릴 미’에 중독되다
‘쓰릴 미’의 성공에는 입소문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일찍이 이처럼 후기가 많았던 뮤지컬이 또 있었던가. ‘쓰릴 미’에 꽂힌 관객은 캐스팅별로 번갈아 관람한 후 페어별 공연 후기를 인터넷 블로그와 카페에 쏟아냈고 이는 그 어떤 홍보보다도 효과적이었다.
‘쓰릴 미’는 두 청년의 세밀한 심리 묘사로 극을 풀어 가기 때문에 볼 때마다 매번 다른 인상을 받게 된다. 같은 사람이 연기하더라도 당일 배우의 컨디션이나 설정, 상대 배우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 것. 류정한은 과거 인터뷰에서 매회 조금씩 다른 ‘나’가 되어 무대에 오른다고 말한 바 있다. 주연상 수상 후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그를 정말 사랑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집착이었을까. 안경을 떨어뜨린 건 고의였을까, 아니면 실수였을까... 매회 치열하게 고민하곤 해요” 라며 배역의 어려움에 대해 털어놓았다.
이처럼 여러 번 반복해 봐도 새로움을 주는 ‘쓰릴 미’의 중독성 강한 매력에 빠진 관객은 적게는 수 번에서 많게는 수십 번까지 공연 예매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티켓 오픈 일에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곤 했다.

많은 이의 사랑을 뒤로 하고 2008 ‘쓰릴 미’는 이제 막을 내렸다. 그러나 두 청년의 처절하게 아름다운 이야기에 열광한 많은 팬들은 벌써부터 다음 시즌을 기약하고 있다. 다음 번엔 어떤 모습의 ‘나’와 ‘그’를 만나게 될 것인지 궁금해 하면서...


조수현 lovestag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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