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둡지 않다. 어둡긴 커녕 오히려 밝다. 순간순간 마음이 시큰해지고 눈물도 좀 나지만, 슬플때 흘리는 눈물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뮤지컬 ‘루카스’는 8살 지능을 가진 부모와 태어나서 15일 밖에 살지 못한 아기 루카스의 이야기다. 마음이 좀 여린 사람들이라면 벌써 ‘어떡해…’하는 반응이 나올 법한 스토리다. 그러나 웬걸, 관객들은 웃다가 울다가 박수치다가를 반복했다. 말하자면 ‘루카스’는 감동도 있고 웃음도 있는 공연이다.
‘루카스’는 캐나다 토론토의 발달 장애인 공동체 ‘데이 브레이크’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데이 브레이크’의 장애인 부부 앤디와 졸리가 아이를 가지게 되면서 시작된다. 문제는 졸리가 가진 아기가 태어나 15분밖에 살 수 없는 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기어이 아이를 낳는다. 이 아이가 바로 루카스다. 한국에서 실직하고 파혼까지 당한 현우는 친구 소개로 ‘데이 브레이크’를 휴양지 쯤으로 알고 간다. 본의 아니게 ‘데이 크레이크’에서 지내게 된 현우는 천지분간 못하는 장애인들과 사사건건 부딪히며 갈등을 일으킨다. 식사를 좀 준비하라고 했더니 샐러드에 고추장을 뿌려 먹이는 건 예사다. 장애인들에게 글자를 가르쳐주면서 “그것도 못하냐”고 구박하는가 하면, 루카스 아빠 앤디에게는 “자기 이름도 못쓰면서 아기는 왜 낳느냐”고 심한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그도 변한다. “사랑해봤어? 사랑하는데, 아프다고 버려?” 아마도 현우를 변하게 한 건 이 말이었으리라. 15분밖에 살 수 없다던 루카스는 17일을 살고, ‘데이 브레이크’에서 돌아온 현우는 장애인인 자신의 아버지와 화해한다.
‘루카스’는 지금 앵콜 공연 중이다. 초연 이후 좋은 반응을 보였다는 증거다. 그도 그럴 것이 내용도 좋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워낙 좋다. 특히 루카스 아빠 앤디를 연기한 유기호는 영화 ‘아이 엠 샘’의 쇼팬과 ‘오아시스’의 문소리와 비교해 뒤짐이 없다. 앤디 뿐 아니라 릭, 롤린의 장애인 연기도 돋보인다. 특히 릭과 롤린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장애’라는 소재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적절할 때 적당한 웃음을 던진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은 아기자기한 소품 활용은 ‘루카스’의 또 다른 매력이다. 그렇다고 많은 소품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나비와 토끼가 무대 위로 나타나는 방식이 특이하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나비가 여기저기 날아다니는데 가만히 보면 나비 달린 막대를 들고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사람이 보인다. 토끼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토끼가 달려 있는 긴 막대를 사람들이 들고 다닌다. 인형극 같은 모습이다. 그럼에도 촌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스토리와 잘 어우러져 보였다. 디지털 아닌 것이 없는 세상에 온전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이 빨리 빨리 돌아가는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데이 브레이크’ 사람들과 닮았기 때문이다. 제작자 말로는 돈이 없어서 그랬다는데, 미안하지만 이 부분 만큼은 그래서 다행이다.
노래도 좋았다. 배우들의 목소리는 튀지 않고 따뜻했으며, 가사는 상황을 정확하고 재치 있게 표현했다. ‘데이 브레이크’에 적응하지 못하는 현우 앞에서 수잔은 ‘어디든 마찬가지인 거지’를 부른다. “밥을 먹으면 그릇이 쌓이고 그릇을 씻으면 배가 고프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아픈 사람 성한 사람, 미국 사람 한국 사람,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말을 참 잘 표현했다.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스토리 전개가 다소 불친절했다. 추측해서 알만한 내용은 최대한 생략하는 것이 문학의 미덕이라 할지라도, 현우가 ‘데이 브레이크’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좀 더 일찍 알려줬어야 했다. 끝날 때가 돼서 현우 아빠도 장애인이었다, 라고 말하는 건 반전이 될 수도 있지만 성의 없는 결말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온갖 ‘세속적인 것’에 물든 마음을 하얀 함박눈으로 덮어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 대부분은 몸과 마음이 개운하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데 아프다고 버릴 수 있어?’ 이 말이 관객들의 폐부를 푹, 찔렀음에 틀림없다. 뮤지컬 ‘루카스’는 8월 31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나무와 물’에서 공연된다.
박혜진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평택아트센터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성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