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굳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아도 누구나 자연스럽게 인지되는 것들이 있다. 바늘과 실처럼 이몽룡 뒤에는 성춘향이, 철수 뒤에는 영희가 붙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이몽룡과 성춘향의 서양버전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로미오&베르나뎃이란다! 이게 웬 이몽룡과 향단이 혹은 방자와 성춘향 같은 조합인가? 베르나뎃, 그녀는(아니, 어쩌면 ‘그’일수도 있겠다) 누구이기에 500년이나 내려오던 ‘로미오&줄리엣’의 불문율을 깬 것일까.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더니, 죽음도 불사하고 줄리엣 밖에 모르던 로맨티스트 로미오에게 찾아온 늦바람! 시공을 뛰어넘은 로미오의 새로운 사랑 이야기를 몰래 훔쳐보도록 하자.
극중극 구조를 택한 이 작품은 1960년대의 한 극장에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이 공연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세기의 사랑을 지켜보는 한 연인이 있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것 같아 보이는 그 연인을 제 3자 입장에서 지켜보자니 아무래도 동상이몽이다. 여자 친구는 비극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에 푹 빠져 감정컨트롤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남자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달콤한 밤을 보낼 음흉한 생각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이 순진한 여자를 어르고 달래기 위해 남자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수면제를 먹고 500년 뒤에 깨어나 다른 여자와 바람난(?) 로미오의 이야기이다. 자, 지금부터는 본의 아니게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된 로미오의 얘기로 들어가 보자.
어느 제약회사인지 상이라도 줘야할 것 같다. 수면제의 약빨이 500년이나 가다니 말이다. 너무나 강력한 수면제의 효력으로 500년이나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로미오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언제나 그렇듯 줄리엣이다. 그런데 눈에 콩깍지가 씌인 로미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는 몰라도 우리에게는 너무나 낯선 모습의 줄리엣이다. 수십, 아니 수백 년 전부터 소설로, 연극으로, 영화로 만나오던 청순하고 가녀린 모습의 그녀는 어디가고 미끈한 각선미에 짧은 스커트, 높은 하이힐 차림의 저 여자가 진정 줄리엣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로미오가 약에 취해 정신을 살짝 놓은 모양이다. 사실을 알고 보니 로미오가 눈 뜬 그곳은 500년이나 훌쩍 뛰어넘은 베로나이며, 눈앞의 그녀는 줄리엣이 아니라 베르나뎃이라는 이름을 가진 펜자 갱단 두목의 딸이다. (오호라, 로미오와 줄리엣을 갈라놓은 베르나뎃이 여자라는 사실은 확인되었다! 이제 물증만 잡으면...?!)
엄마의 고향인 베르나를 잠시 방문 중이던 베르나뎃은 뉴욕의 브루클린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로미오, 이 가엾은 남자에게 대체 사랑은 무엇이기에 난생 처음 보는 비행기를 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500년이라는 상상도 하기 힘든 시간을 건너, 낯선 땅 미국까지 도착한 사랑의 열정을 보여준 로미오에게 과연 사랑의 여신은 쉽게 미소를 보내줄까? 못다 이뤘던 줄리엣과의 사랑이 이번에는 반드시 해피엔딩이길 기도해본다. 줄리엣이 아닌 다른 여자라는 사실은 약간의 배신감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동안 로미오의 사랑은 너무 안타깝지 않았는가. 부디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살아난 로미오에게 이번 사랑은 달콤한 핑크빛이길…….
바람난 로미오 그리고 그마저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안타까운 로미오의 이야기는 7월 4일부터 8월 10일까지 나루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더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조하나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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