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속에 쳐 박혀있던 낡은 전집의 변색된 한 페이지를 연상케 하는 포스터의 색감. 위쪽과 오른쪽의 윤곽선은 불에 그슬린 듯 끝만 나달나달하다. 그 위로 바람의 모양을 그려낸 양 하얀 색의 작은 소용돌이 모양이 보인다. 윤곽선의 모양새와 누런 색에서 금방이라도 케케묵은 냄새가 폴폴 풍겨올 것만 같다.

왼쪽에 쓰여 있는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라는 글씨는 포스터의 반을 차지한다. 세로 방향에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 순으로 써진 글씨 역시 낡은 고서(古書)의 모습과 닮았다. ‘내가 죽어’의 까만색과 ‘누워있을 때’의 파란색은 차분하고도 정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오른쪽 아래에 그려진 그림 역시 변색된 종이 색에서 조금의 음영이 더해진 색감이다. 하나의 색감으로 표현된 그림은 포스터의 그림과 같은 모노톤이다. 일행들은 죽은 이를 받들고는 장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저 귀퉁이에 그려진 걸로 보아 발인의 길목은 아득하게 먼 모양이다. 전통 삼베 수의를 입고 장지를 떠나는 일행들의 모습은 이청준의 소설 ‘축제’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먼 길을 떠나는 이들의 발걸음이 한없이 무겁게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단순한 윤곽선과 한 가지 색으로만 표현된 그림에서는 왠지 모를 장중함과 엄숙함이 베어 나온다. 관 속에 몸을 뉘인 채로 저승길 떠나는 망자의 행방이 불현듯 궁금해진다.

관을 싣고 떠나는 가족들의 장례여행, 연극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는 오는 10월 20일에서 25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박소연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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