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 뜯어 붙인 듯 흰 구름이 자리를 잡은 파란 하늘이 눈부시다. 그 하늘 아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 있다. 여자는 어딘가를 보며 웃고 있다. 그런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는 웃는지 우는지 모르겠다. 그런 남자와 여자의 허리께에 언뜻 보이는 회색빌딩들이 어쩐지 사람을 슬프게 한다. ‘경남 창녕군 길곡면’의 포스터다.
아내는 아이를 가진 것이 기쁘다. 낳고 싶고 지켜주고 싶다. 아이 생각에 남편도 현실도 잊은 듯 먼 곳을 응시하며 그저 행복하게 웃고 있는 아내의 시야엔 남편이 없다. 그러나 남편은 똑똑히 아내를 바라보고 있다. 희망에 찬 미소를 지으며 웃는 아내의 뱃속엔 두 사람의 아이가 있고, 아마 그것은 남편으로서 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일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웃을 수 없다. 그들은 외식도 하고 싶고, 남편은 동호회 활동도 하고 싶고, 아내는 친정에 용돈도 보내고 싶다. 헌데 이런 일들은 아이를 낳으려면 다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머릿속에 돌아가는 현실과 가슴속에 자리잡은 이상이 서로 충돌하고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래서 남편은 웃을 수 없는 것이다.
포스터는 ‘경남 창녕군 길곡면’을 ‘당신의 사랑이 숨 쉬는 곳’이라 한다. 그럼 지금 이 두 사람의 사랑은 팔딱팔딱 살아서 숨쉬고 있고, 이들은 지금 ‘경남 창녕군 길곡면’에 있는 것일까? 아니,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란 곳이 정말 존재할까? 그곳에 가면 이 부부는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그러나 ‘경남 창녕군 길곡면’에서도 생활비는 필요할 것이고, 아이를 낳으려면 아내는 일을 쉬어야 할 것이다. 보는 이가 포스터 속 흐릿한 회색빌딩이 보여주는 현실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2009년 2월 25일~ 2009년 3월 8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조아라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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