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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마방진 스빠링 No. 1) 강철왕」- 세상을 향해 제대로 날린 멋진 한방! 아마 당신 덕분에 세상도 정신 좀 차렸을 거예요.

 

 

이럴 수가! 오늘이 막공이라고요? 허겁지겁 공연 시간에 맞춰 연습장이자 공연장인 마방진 극공작소에 도착했을 때 족히 백 명은 됨 직한 사람들이 줄 서 있었습니다. 저는 아슬아슬하게 그 줄 끄트머리에 착 달라붙어 섰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야외에 설치된 매표소에는 ‘매진’이라는 고딕글자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으니까요.
저는 “엄청 인기 많은 연극인가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포스터를 구경했습니다. 울퉁불퉁한 팔뚝에 꽉 쥔 맨주먹이 결연해 보입니다. “왜 이렇게 힘을 주고 있는 거죠?” 금방이라도 한 방 날릴 거 같습니다. “누군가 당신을 얕잡아 보고 괴롭혔나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피도 눈물도 없이 스트레스만 팍팍 권하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
첫 장면은 신체언어연극처럼 한 인간이 뱃속에 있다가 세상에 나와 자라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하는 상황이 몸짓으로 표현됩니다. 연극이 아니라 현대 무용극으로 봐도 될 정도로 세련됐습니다. 안무가의 창의성이 돋보입니다. 압축적이고 상징적이기도 하고요. 거기에 음악도 인상적이고요.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현실을 제대로 짚어 요약해내 지껄이는 사설 혹은 ‘구라빨’이 얹혀져 뭔가 상당히 있어 보입니다. 구라빨이라고 했는데 언어를 뽑아내는 내공이 심상치 않습니다. 말싸움 혹은 말 대결 같은 거를 하면 1등이겠네요. 말하기를 워낙 좋아하니까요. 마구 언어의 연발탄을 쏘아댑니다. 그건 마치 반드시 절정까지 가서 사정하듯 즐기며 쏟아내는 언어 배설물 같습니다. 시원하죠.
뭐든 단순하게 얘기하지 않고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고 조미료 같은 자극 강한 형용사 부사 사투리 팍팍 치기 때문에 현란하고요. 자연히 듣는 사람들은 여러 이미지들을 중첩하고 연상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잠언처럼 노트에 적어두고 싶은 대사들도 나옵니다.
자, 그럼 대사빨에 대해서는 잠시 접고 스트레스에 대해! 인간과 스트레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어머니 자궁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행복 끝! 고생 시작!이며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 내던져지죠. 세상사 살다 보면 스트레스 받을 일이 어쩜 그리도 많은지요. 살면 살수록 새록새록 깨닫습니다.
근데 문제는 인간들 중에서 특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부류가 따로 있다는 겁니다. 그들은 구속받는 상황을 싫어하고 섬세하고 예민한 내면과 감정을 갖고 있어 아주 작은 스트레스에도 심각한 외상을 입고 맙니다.
그들은 시험 성적표를 기준으로 한 줄 서기를 강요받거나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짓밟아야 한다는 식의 사회가 정한 게임의 규칙 같은 것을 이해할 수도 견딜 수도 따를 수도 없습니다. 그럴 바에는 그냥 사회에서 열외가 돼 아무것도 원하지도 받지도 않고 최소한으로 혼자 살아가기를 택합니다. 뭐, 남들이 사회부적응자니 루저(loser)니 입방아 찧든 말든요.
우리의 주인공 왕기(조운)가 바로 그렇습니다(그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하게 반짝이는 눈빛을 지닌 배우더군요). 그는 그저 자유롭게 춤추면서 살고 싶을 뿐입니다. 가족, 사회, 국가, 우주에게 아무것도 해달라고 안 했죠. 오직 “제발 그냥 저 좀 내버려둬 주세요”입니다. “그게 그렇게 무리한 요구인가요?”

전 세계 B급 상상력이여, 총 집합 단결하라! 이 세상을 좀먹는 모든 악들과 맞서 싸우자!
이 연극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시대를 아주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좀먹는 모든 악들인 가부장제도, 우리 가족 제일주의, 혈연주의, 폭력이 횡행하는 남성주의, 국수주의, 대중 추수주의, 이기주의, 가진 자들의 숫자놀음인 자본주의, 매스 미디어 상업주의, 거짓 욕망을 생산해내는 자본주의 꽃 CF의 폐단 등이요.

그럼 자세히 살펴볼까요? 일단, 무대는 간결하고 담백합니다. 조명도 단순하고요. 배우들은 몽땅 SF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다이의 기사 같습니다. 죄다 가공할 만한 포스(Force)를 내뿜고 있답니다. 탄탄하게 단련된 근육질의 몸에는 검도복 같은 의상이 걸쳐졌습니다. 거기다 다들 맨발.
하지만 그 외에는 만화적 상상력이 난무합니다. 판타지적인 상황을 만들어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고요. B급 장르에서 주로 애용하는 유치한 상황도 많고요. 만화책 속 개그 컷처럼 주인공이 망가져서 일부러 웃기게 목소리 구겨서 대사 치는 경우도 있고요.
무엇보다도 해학과 풍자로 기존 권위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듭니다. 또한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기존 가치관이라는 게 얼마나 천박한 이기주의에 근거한 것인지를 까발리고요. 그 날카로운 비판에는 우리가 가장 숭배하는 가족 제도 역시 피해갈 수 없습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왕기는 월급쟁이 생활 대신 가난하더라도 자유로운 댄서로 살아가고 자 하는 꿈 많은 젊은이입니다. 그런 그의 아버지 성국(조영규)은 열처리공장을 운영하는 사장입니다. 성국은 왕기에게 아버지로서의 권리를 내세우며 댄서 일은 집어치우고 자신의 뒤를 이어 열처리공장을 물려받으라고 합니다.
왕기는 아버지 성국의 혀를 깨물고 죽겠다는 협박과 애원과 성화를 못 이겨 결국 마지못해 공장에 나옵니다. 공장 첫 출근할 때 머리에는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황금 담요처럼 보이는 괴상한 망토를 두르고 등장합니다. 근데 그 모습이 너무 엉뚱하고 이상한 게 예수가 가시면류관을 쓰고 조롱당했던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공장 노동자들은 사장 아들인 왕기의 출근이 반가울 리가 없죠. 그들은 왕기를 경계하고 오해하고요.
한편 성국은 비용 절감을 위해 노동자들을 자르고 대신 최첨단자동화시스템을 들여옵니다. 이에 공장 노동자들은 불만을 품고 왕기를 납치해서 열처리로에 가둡니다. 그때 최첨단 자동화 설비가 자동으로 운전되고 급기야 왕기는 열처리로에서 70여 분 동안 갇혀 있게 됩니다. 그 이후로 왕기의 몸은 스테인리스로 변했고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강철왕이 되고 맙니다. 발상과 소재가 참신합니다.

이 공연이 얼마나 웃기고 재미있었는지를 좀만 더 소개할게요. 요지경 세상에 사는 사람들만큼 재미나는 구경이 없잖아요. 당신이 누구든 이 공연을 봤다면 분명 마음에 들어 하고 재미있어 했을 거예요.
제일 먼저 관리와 경리를 맡고 있는 복자에 대해 설명할게요. 그녀는 몸매가 다 드러나는 빨간색 미니 원피스에 그물망 스타킹을 신고 있습니다. 빨간색 뾰족구두도 당연히 신었고요. 일본 B급 영화에 나오는 여고생 킬러 같은 모양새입니다. 그녀는 장난감 같은 기관총을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회사 노동자들을 향해 자주 총질을 한답니다. 근데 그 총은 장난감 총이 확실합니다. 그녀가 아무리 총질을 해대도 죽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다들 총을 맞고 아프다는 시늉만 합니다. 아무래도 맞으면 따가운가 봅니다.
그녀가 총 들고 남자들 앞에서 세상을 사는 방법에 대해 일장연설을 할 때는 완전 「개그 콘서트」나 「웃찾사」 저리 가라였습니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장황한 논리를 마구 펼치지만 항상 “난 예쁘니까”라는 얼토당토 않는 귀결로 끝나니까요. 하하하.
왕기의 아버지인 성국이 조폭들을 동원해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도 웃기고요. 글로벌 신자유주의를 이야기하면서 구시대의 유물인 조폭을 동원하는 것은 아무래도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의 권유로 구입한 최첨단 자동화 기계는 만화책에 나오는 깡통 로봇만큼이나 허접하기만 합니다. 끄는 방법을 몰라서 두꺼비 집 내리는 데서는 완전 뒤집어질 수밖에 없죠. 비싸기는 얼마나 비싼지요. 여럿 노동자가 그 기계 때문에 해고됐잖아요. 근데 작동방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답니다. 다 빛 좋은 개살구 허울뿐입니다.
전 세계 매스 미디어에서는 인간이 강철왕이 된 것을 토픽 뉴스로 전합니다. 그때 두 사람이 동시통역을 하듯 외국어와 한국어 방송이 나오는 부분도 재미있습니다. 외국어 부분은 코미디 프로에서 외국 발음 아무렇게나 재미있게 흉내 내는 것처럼 합니다. 주성치 영화에 나오는 유머 방식이죠.
의사(호산)도 희화화된 재미있는 캐릭터입니다. 의사는 왕기를 치료하는 것보다 마루타로 사용하는 데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가 보기에 왕기는 정말 하늘이 주신 기회죠. 이게 웬 떡입니까? 인간이 강철이 되다니요.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과제입니다. 잘하면 인류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그는 왕기의 상황이 어떤지를 이야기할 때마다 우스꽝스럽게 탱고나 사교댄스를 추면서 이야기합니다.
국가가 이런 중차대한 일에서 빠질 리가 없죠. 국정원에서는 국가의 안보를 위해 왕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요. 각 기업체에서는 왕기를 어떻게 하면 자사 CF 모델로 기용해 돈을 벌 것인가에 혈안이 돼 있고요. 누가 죽든 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득을 취하겠다는 심보가 잘 드러나죠.
아버지도 남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이유로 자식을 소유물인 양 다루고요. 아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데도 CF 모델료에 더 눈독을 들이고요. 결국 왕기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60억짜리 생수 CF 촬영을 합니다.
그는 그 CF를 찍으면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속으로 비장한 죽음을 각오한 눈빛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뒤의 담담함과 슬픔이 얼굴 표정에 스쳐 지나갑니다. 하지만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그는 사람이 아니고 괴물인 강철이 됐으니까요. 그는 강철이 된 자신의 몸뚱어리에 마지막으로 축복을 내리듯 성수를 상징하는 물을 마셔버리고 죽음을 택합니다.

궁금합니다! 그는 죽음을 선택하고 죽음을 결행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는 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이 세상에 그를 이해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공장 노동자들은 오해하고 밀어냈고요. 아버지 역시 잇속을 챙겼고요. 의사는 치료보다 개인의 영달을 추구했고요. 가족, 국가, 세계, 우주 모두 그의 꿈을 그의 외로움을 그의 스트레스를 이해해주지 않습니다. 그가 얼마나 괴로운지, 아픈지, 슬픈지 관심 없었습니다. 오직 유일한 사람이라면 여자친구 숙영(양영미)밖에 없지만 그녀 역시 너무 먼 곳에 있고요. 물을 다 마신 그가 고통스럽게 바닥에 쓰러지고 이어 그의 공식 사망 통보가 들려옵니다. 공식 사망 통보는 이제 더 이상 희망을 가져서도 안 되고 되돌릴 수도 없다는 쐐기 박기입니다.
그때 울려 퍼지는 음악이 기가 막힙니다. 그 음악은 바로 「운명의 타격」. 저는 그 음악을 들으며 비장한 마음을 안고 세상으로 떠밀려 나왔습니다. 마방진 극공작소에서 나와 무규칙 이종 격투기를 하는 것 같은 세상이라는 링까지 입장하는 동안 흐르는 음악으로는 딱이지요.

ps 이럴 수가! 오늘이 막공이라고요? 그렇다면 하는 수 없군요. 열렬히 앙코르 공연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안현주 bread-wine@hanmail.net
사진 김고운기자 vortexg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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