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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여전히 강렬한 ‘관극’이라는 체험, 연극 ‘에쿠우스’11월 8일(화) ~ 2023년 1월 29일(일),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연극 <에쿠우스> 2022 공연 사진

‘에쿠우스’만큼 ‘관극’이라는 체험의 세계를 강렬히 실감케 하는 작품이 또 있을까. 

1975년 국내 초연 이후, 오랫동안 무수히 공연되었음에도 연극 ‘에쿠우스’는 여전히 관능적이고 문제적이다. 관객은 3년 만에 돌아온 이 작품에 다시금 매료될 것이다. 어디서도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에쿠우스’만의 연극적 체험과, 그 안에서 명징하게 던져지는 질문들이 시대를 넘어서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말들의 울부짖음과 생동하는 근육은 한결같이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다이사트는 객석에 여전한 자세로 앉아 날선 질문들을 던진다. 공복을 채우는 일이나 자기 종족을 번식시키는 일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욕망이란, 대체 어떤 의미인가. 그 의미심장한 첫 질문은 모든 체험의 시작을 여는 작은 문에 불과하다.  

‘에쿠우스’, 말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에쿠우스’를 관극한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기억할 때 가장 먼저 꼽는 것은 아마도 일곱 마리 말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탁월한 몸연기와 관능미일 것이다. 말을 상징하는 가면과 가죽 안장을 걸친 그들이 근육질의 몸으로 투레질을 하고 발을 구를 때, 관객은 비현실적인 환상의 세계에 빠르게 압도된다. 

특히, 2015년에 이어 다시 한 번 ‘너제트’ 역으로 돌아온 은경균 배우의 아우라는 독보적이다. 조밀하게 꿈틀대는 근육과 도드라진 갈비뼈, 숨소리와 동작 하나하나마저 그야말로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관능적 야성의 신 그 자체다. 

‘에쿠우스’에서 말은 단순히 길들인 가축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말의 형태와 습성에서도 벗어난다. 무대에 오른 말들은 오직 배우들에 의해 치밀하게 계산되고 훈련된 마임을 통해 새로운 상징으로 재탄생된다. ‘에쿠우스’(라틴어로 ‘말’이라는 뜻)는 알런의 아버지의 관점에서는 배제되어야 할 “위험한 동물”이며, “말이 섹시하다”고 말하는 알런에게는 숭배의 대상이자 성적인 이끌림의 대상이다. 관객은 무대를 통해 전에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말의 수많은 이미지를 체험하며 그 의미를 확장시킨다. 

실제로 말이 출연하거나 CG로 덧입힐 수 있는 영화였다면 이런 강렬한 체험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간이 연기하는, 그러나 전혀 인간답지 않고 완벽한 말이 되지도 않는 ‘에쿠우스’들만의 폭발하는 존재감. 그것이야말로 이 연극이 그 어떤 작품보다도 지극히 ‘연극적’인 이유이며, 수십 년간 무대를 선보였어도 여전히 관객이 객석을 메우며 열광하는 이유이다.

 

연극 <에쿠우스> 2022 공연 사진

치료 아닌 각성, 진정한 ‘정상성의 회복’이란

극의 초반 다이사트는 알런을 정신병 환자로 보고 길들이려 한다. 여타의 아이들을 치료할 때와 마찬가지로 달래고 윽박지르며 반항심을 꺾고, 원하는 진실을 끌어내려 시도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알런의 고백들을 통해 자신의 억눌러왔던 진실한 욕망을 직시한 다이사트는 아이들을 ‘정상화’한다는 자신의 치료 행위에도 반감을 갖게 된다. 결국 “정상이란 죽이고 살리는 일”이며, “개성을 도려내야 하는 것”임을 고백하는 그는 객석에 내던졌던 첫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낸다. 

본성을 부인하고, 자신을 부정하며 사는 삶이야말로 비정상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 그런 의미에서 다이사트가 시종일관 관찰자의 얼굴로 객석에 말을 거는 것은 일견 위장이다. 이 작품은 다이사트를 중심으로 보면 그의 내면적 물음으로부터 스스로 각성에 이르는 하나의 여정이 된다. ‘정상성’이라는 논리에 스스로를 기만해온 한 남자가 스스로의 욕망을 직시하고 자신이 잃은 것을 발견하기까지의 자문자답이랄까. 

관객은 2막 후반부에 이르면 17살 알런의 내면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다는 외연 속에 중년 의사 다이사트가 제 삶의 ‘비정상성’을 깨닫는 진정한 내연이 숨어 있음을 깨닫는다. 다이사트의 모습은 삶의 의지처를 잃어버리고 무기력해진 현대인을 그대로 표상한다. 

다이사트는 결국 “의사는 정열을 파괴할 수는 있지만 창조할 수는 없”으며, “어둠 속을 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마치 첫 장면과 꼭 같이, 마지막에도 같은 위치와 자세로 앉아 뱉는 다이사트의 마지막 대사들은 그제야 처음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객석에 와 닿는다.

연극 <에쿠우스> 2022 캐스트

드라마를 통해 대중에게 친숙한 최종환 배우는 다이사트 역을 맡아 자조적인 혼란에 빠져가는 2막의 연기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예민하고 불안한 17세 소년의 분위기를 몸에 두른 백동현의 섬세한 연기에도 주목할 만하다. 

창단 62주년을 맞은 ‘극단 실험극장’은 이번 ‘에쿠우스’를 원작에 가장 충실히 구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목조의 각형 무대와 무대 밖의 벤치는 초연 그대로 단순하지만 극적인 조명과 음향이 덧입혀지며 꿈과 현실, 병원과 들판 등의 생생한 공간감을 구현한다. 

3년 만에 돌아온 ‘에쿠우스’는 팬데믹의 시대를 겪어온 관객들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이지 않을까. 때로는 ‘비대면 공연’이라는 불가피한 터널을 지나오며 많은 관객들이 연극의 체험적 본질에 대해 물었고, 거리를 두지 않는 연극의 현장성을 그리워했다. 이 연극이 주는 해방감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에쿠우스’의 해방감은 일상이 아닌 ‘비일상’, 현실이 아닌 ‘판타지’, 가라앉은 적요가 아닌 ‘광기어린 소요’에서 오기 때문이다. 

일순간 빨려 들어가는 압도적 야성의 세계를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관객이라면 극장을 나서면서도 그 얼얼한 여운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이것이야말로 비대면의 세계가 우리에게 빼앗아 갔던, 알고서도 여전히 매번 압도당하는 ‘관극’이라는 놀라운 체험의 세계다.

사진 제공_아트리버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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