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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성의 The Stage 175] 뮤지컬 ‘박열’숭고한 사랑의 깊이를 무대 언어로 그려내
  • 유희성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8.1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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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박열’은 1923년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이용된 조선인 아나키스트 박열과 그의 일본인 아내 후미코, 이들의 숨통을 조이는 도쿄재판소 검사국장 류지의 관계를 되짚어 보는 서사로 구성되었다. 당시 긴박한 상황과 혼돈의 상태를 류지의 시선으로 생동감 있고 압축적으로 무대에 그려냈다.

느닷없이 찾아온 그날의 암울했던 극한상황은 서툰 청춘임에도 애국심과 조국의 독립, 자유에 대해 무조건적이었다. 극은 이들의 숭고하리만치 깊은 감동과 짙은 사랑을 한여름 밤의 꿈처럼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뮤지컬화 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붕괴한 도쿄에 조선인이 지진을 틈타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괴소문이 퍼진다. 그로 인해 조선인 6천 명이 학살되자 상부에서는 도쿄재판소 검사국장 류지에게 특명이 떨어진다. “조선인 대학살 사건을 뒤덮을만한 특종을 찾아내라” 그 계략에 이용된 것은 조선인 아나키스트 박열과 그의 일본인 아내 후미코다. 류지가 박열의 폭탄 계획을 알게 되고 그것을 과장하여 이를 악용하려 하자 박열과 후미코는 오히려 더 과장하여 황태자 저격 의도를 자백하며 “사형하라!”고 자처하게 된다.

젊은이의 덜 갖춘 지성으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제 강점기는 참담하기만 했다. 끝내 죽음도 불사한 청춘들은 핍박받은 항일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내며, 오로지 조국의 독립과 평등, 자유로운 세상을 향한, 그날의 꿈을 추구했다. 아무런 힘도 없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극한상황에서도 풋풋한 투쟁과 의지뿐 아니라, 어느새 솟아 난 인간의 본성에서 가장 고귀하고 애틋한, 숭고한 사랑의 깊이를 무대 언어로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뮤지컬 ‘박열’을 통해 데뷔한 이선화 작가의 대본은 기존, 알고 있었던 역사적 인물이나 영화와는 또 다른, 무대에서만 오롯이 만날 수 있는 재기발랄하고 신선한 텍스트를 구축해 냈다. 뮤지컬 ‘시데레우스’를 통해 평단과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는 이유정 작곡가의 심리적인 자극과 변화에 따른 의식의 흐름을 살려낸 드라마틱한 멜로디와 리듬의 변화, 적절하게 배치된 열정적이고 감동적인 아리아를 통해 함축적이고 당시의 뜨거움을 금방이라도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맛깔스러운 에너지의 넘버를 배치했다.

최근까지 다양한 작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성종완 연출의 적합하고 세련된 캐릭터의 동선을 통한 자연스러운 시각적 내용의 흐름과 주제 의식의 완급과 분배를 통한 깔끔한 연출력, MR과 라이브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효과적인 멀티의 음악적 색깔과 수수께끼 같은 완성도를 찾아냈다. 김은영 음악감독의 조화로움으로 빚어낸 작품은 캐릭터들과의 보이스 브랜딩을 세련되게 엮어냈고 작지만 당차고 실한 알맹이로 꽉 찬 대학로 뮤지컬 작품으로 거듭났다.

거기에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무대 디자인과 부분을 부각하며 텍스트의 확장, 그 이상의 공간까지 분할하고 엇대며, 자유자재로 변하게 하여 드라마의 개연성을 선명하게 한 조명과 소품, 또렷하거나 섬세한 음향 등 스태프들의 일관적이면서도 적확한 합이 이뤄지며 부분적인 부각과 음양의 특징들을 매끄럽게 잘 끄집어낸 프로덕션은 소극장 뮤지컬의 진수다운, 세련된 미장센을 구축해 냈다.

실질적으로 세 명의 배우가 무대를 채우고 있지만, 마치 30명 이상의 배우가 다양한 역할로 등장한 듯한 에너지와 구상으로 무대를 누비며 흥미진진하고 더러 오싹하고 짜릿한 장면들을 연기해 냈다.

박열 역의 김순택 배우는 그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혼신을 다해 작품 속 캐릭터로 거듭나곤 했지만, 박열에 완전히 동화되어 그 자체로 모든 것을 걸고 불태우는 듯했다. 첫 등장의 호흡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박열 그 자체로 거듭나서, 무대에서 행하는 모든 순간에 빙의되어, 마지막 남은 모든 것을 다 쏟아 내는듯한 모습들은 보는 이들을 이내 숨 멎게 한다. 뜨겁디뜨겁게 살다 모든 것을 쏟아내고 처연히 사라져가는 그의 마지막 모습까지 박열로 살다 사라져가는 뒷모습의 잔향이 아른거려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가슴 먹먹하게 한다.

후미코 역의 허혜진 배우도 당돌한 듯 당차고, 자기 의지를 분명히 표현하며 주체적인 여성상의 당당함을 소탈한 듯 우아하고 매력적으로 연기해 낸다. 정확한 딕션과 발성으로 솔로곡뿐만 아니라 2중창이나 3중창에서 화성으로 음악적 브랜딩을 완성하는 데로 안정적이고 세련되게 넘버를 일구어낸다.

류지 역의 배우 권용국 또한 악역일 수밖에 없고 거기에 고스란히 충실하지만, 가끔 박열이나 후미코에게서 이해할 수 없지만 감동 받은, 인간적인 속내를 드러내는 눈빛과 조금씩 흔들리는듯한 자세와 머뭇거린 시선을 통한 내면의 심리까지 스스럼없이 연기해 낸 모습은 가히 일품이었다. 무엇보다도 류지의 기억 속에서 소환된, 박열과 후미코의 마지막 듀엣 ‘불꽃처럼’의 넘버는 하루살이처럼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아쉽기만 한 청춘과 후회 없이 정의로운 행동과 불꽃처럼 뜨겁고 진실했던 사랑의 열정을 소환하며 오래도록 그 잔향에 휩싸이게 한다.

극 중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역할로 드러나는 보이스 톤과 음악적 브랜딩은 단연 이 작품의 완성도를 이끌어가는 핵심 노선이기도 했다. 더 촘촘히 완성되어 다시 돌아올 재연의 그 날을 기대해 본다.

유희성 칼럼니스트  he2s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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