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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성의 The Stage 167] 뮤지컬 ‘붉은 정원’
  • 유희성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2.1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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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붉은 정원> 무대ㅣ 사진 제공 벨라뮤즈

뮤지컬 ‘붉은 정원’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에프스키, 톨스토이와 더불어 러시아 3대 소설가로 불리는 이반 트루게네프(1818~83)의 자전적 소설 ‘첫사랑’을 모티브로 한 극이다. 이번 무대는 뮤지컬 제작사 ‘벨라뮤즈’가 등장인물의 이름과 나이, 때로는 설정을 다소 바꿔 대학로 소극장 3인 뮤지컬로 새롭게 제작했다.

작품은 1850년, 이반 투르게네프가 한때 살았던 정원으로 돌아온 날. 열병처럼 심하게 앓았던 첫사랑의 기억을 공기를 들이마시듯 자연스럽게 추억한다. 그의 시점으로 첫사랑의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작품이 시작된다.

첫사랑. 누구나 한 번쯤 처음 겪어 보기에 그저 생경하기도 하지만, 뭐라 단정 지울 수 없는 것. 미묘하게 기분 좋은 감정의 열병을 동반하고 마치 마법과도 같은 기쁨과 설렘이 시시때때로 터져 나오는 작은 탄식들. 때로는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세상에 대한 환희와 마치 솜사탕을 탄 기분이었다가도 불현듯 예기치 않은 불안으로 절망한다. 시나브로 다시 나타나는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도무지 어쩔 줄 모르는 것. 누가 봐도 금방 알아낼 것 같고 왠지 모를 들뜸과 흥얼거림은 불가항력의 마법과도 같은 순수한 열정이 된다. 그렇게 애를 써도 잡히지 않은 간지러운 햇살 같은 기억으로 가슴 졸이게 한 첫사랑!

뮤지컬 <붉은 정원> 리허설 장면ㅣ사진 제공 벨라뮤즈

이반 투르게네프의 고전문학을 토대로 한 작품답게 서정적이고 시적인 언어와 클래식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들이 조화를 이룬다. 러시아풍이 스며든 세트와 고전적이면서도 모던한 의상, 그리고 금방이라도 홀릭 될 것 같은 왈츠 선율에 어울리는 멋진 안무까지. 극은 시대를 초월해 지구촌 어디에서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2018년 초연 이후 더 디테일하게 다듬어 돌아왔다. 첫사랑의 설렘과 상큼함, 안타까운 좌절의 기억과 순간들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인 액자식 구조에 담았다. 무대는 러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나 있을법한 정원, 유난히 붉고 탐스러워 보이지만 독이 있는 가시 돋친 붉은 장미정원으로 꾸며졌다.

18살 소년, 이반은 우연히 옆집에 사는 매혹적이고 당찬 지나를 만나자마자 즉각적으로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둘은 이반의 아버지인 빅토르의 서재에서 그가 새로 쓴 소설 ‘아도니스의 정원’이라는 원고를 몰래 훔쳐 읽으며 더욱더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이반은 지나를 향한 사랑처럼, 오롯이 장미정원을 가꾸며 사랑을 키워가지만, 지나의 뭔지 모를 언행과 시선은 가끔 종잡을 수 없이 느껴진다. 하지만, 사랑의 빠진 이반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뿐이다.

누구나 급작스레 사랑에 빠지면 오로지 한 방향만 쳐다보게 되어 마치 장님이 되거나, 남녀노소 누구나 삶의 경험과 지혜를 상실하고 맹목적인 어린아이같이 되듯이 이반 또한 지나 앞에서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숙명처럼 사랑의 포로와 장님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도무지 믿기지 않고 꿈속에서라도 있을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그의 첫사랑은 부서지고 만다. 다른 누구도 아닌, 마치 하늘처럼 의지하고 존경해마지 않은 아버지와 지나와의 관계를 알고 난 후 그의 첫사랑은 한낱 물거품처럼 속절없이 부서져 버린 것이다.

뮤지컬 <붉은 정원> 리허설 장면ㅣ사진 제공 벨라뮤즈

사랑에는 나이를 불문하고 언제 어느 때나 스스로 감정을 제어할 수 없게 하는 불가항력의 마력을 지니고 있다. 세 명의 배우들은 맡은 역을 충실하고 완벽하게 구현해 내며 작품 완성도에 방점을 찍었다.

이반 트르게네프역의 조현우 배우는 첫사랑의 상큼하고 순박한 설렘에 닭살 돋게 했다. 그의 사랑에 빠진 연기는 누구라도 마치 자기의 거울을 보듯이 사랑앓이를 떠올리게 했다.

아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멋진 우상이자 모범적인 사람이지만 아들만의 특별한 여름과 사랑을 송두리째 뭉개버리는 사랑에 빠진 중년의 한 남자. 작금의 비현실적 상황을 인지하고 이성적 논리로 거부하려 해도, 사랑이라는 덫에 걸려 헤어나질 못하고 숙명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빅토르 투르게네프 역의 김순택 배우.

그리고 어쩌면 불륜의 화신 같은 요부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젊고 아름다운 매력에 매 순간이 진실하여 누구라도 한번 보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특히나 왈츠의 춤 선을 너무나 아름답고 우아하게 빚어낸 춤사위에 누구나 매료당할 수밖에 없는, 그 어떤 누구라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운명 같은 사랑의 큐피드에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여자, 지나 역의 이정화 배우. 이들이 연기하는 무대는 무한 흡입력에 시공을 초월한 날개를 달고 동서고금 어디서나 유사한 특별한 첫사랑의 마력을 재확인할 수 있다.
 

유희성 칼럼니스트  he2s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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