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공연에서 유난히 관객들의 호응을 많이 받는 캐릭터들이 있다. 때로는 잘생기고 예쁜 스타성 있는 배우들이어서, 혹은 극의 감초 역할을 자청하며 극 속에 등장하기만 해도 관객들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케릭터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역시 가장 관객들의 마음에 와닿는 캐릭터는 그 캐릭터의 삶과 대사 그 모든 것들이 딱 맞는 옷을 입힌 듯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캐릭터가 가장 그러할 것이다.
뮤지컬 ‘빨래’에는 개성 넘치는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통통 튀는 캐릭터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희정엄마’,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노동자 ‘솔롱고’와 ‘낫심’, 그리고 제일서점의 악덕 사장인 ‘빵’역시도 빼놓을 수 없는 개성 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 유난히 관객들의 호응을 받으며 박수세례를 받은 캐릭터가 있다. 솔직히 이 역을 맡은 배우는 젊고 예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관객들에게 크게 웃음을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관객들은 유난히 이 캐릭터에 열광했다. 그는 바로 뮤지컬 ‘빨래’에서 사지가 절단된 장애인딸을 키우며 거친 말투 속에서 그 본연의 따뜻함을 드러내는 ‘주인할매’역의 ‘이정은’ 배우이다. 관객들이 그렇게 ‘주인할매’에게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 ‘의지’의 할머니
처음 ‘주인할매’역의 ‘이정은’배우가 등장했을 때 솔직히 놀랐다. 왜냐하면 본 필자가 2006년에 본 ‘빨래’에서의 ‘주인할매’는 허리가 꼬부러진, 그야말로 전형적인 할머니의 모습을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2008년 뮤지컬 ‘빨래’에서의 ‘주인할매’는 나이 든 할머니의 모습이기보다는 홀로 장애인 딸을 키우며 억척스럽게 하루를 살아내는 그야말로 ‘의지’의 할머니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허리도 곧게 펴져 있었고, 그녀의 우렁찬 목소리는 우리네 든든한 어머니요,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세상의 갖은 풍파는 다 견딘 듯, 그래서 이제는 별로 무서울 게 없다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가방을 던진다던가, 가게에서 당당하게 값을 깍아달라 주장할 법한 그런 당찬 모습 말이다. 하지만 그런 억척스러운 할머니라고만 평가하기에는 이 할머니, 뭔가가 수상하다. 마치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주인할매’, 역시 사연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주인할매’의 인생은 그녀의 거친 입담만큼이나 갖은 풍파 중에서 거센 파도만을 거쳐 살아온 삶이었다. 그녀가 지나가듯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삶에 귀기울여보니, ‘주인할매’의 할아버지는 젊었을 적 꽤나 할머니의 속을 썩혔던 양반인 모양이다. 소위 도박이나 바람피우는 것 등등, 그런데 역시 ‘주인할매’는 우리네 옛 순종적인 전형적인 아내만은 아니었다. 홧김에 자기 역시 멋진 남자를 만나 바람을 폈다는 ‘주인할매’는 그리하여 아버지가 다른 두 남매를 두게 되었다. 하지만 이게 웬 운명의 장난인지, ‘주인할매’가 바람을 펴서 난 딸은 사지가 절단된 장애인이었다. 그렇게 ‘주인할매’는 하늘이 주신 죄 값을 치루듯 매일매일 다 큰 딸의 기저귀를 빨면서 살아간다. 그리고는 혹여나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장애인 딸을 손가락질 하진 않을까 딸아이의 방문을 굳게 잠그고는, 자기가 딸아이보다 먼저 죽으면 안된다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 욕쟁이 할머니, 하지만 우리 할머니!
뮤지컬 ‘빨래’의 ‘주인할매’는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전기값, 수도값을 깐깐하게 요구하는 인물이다. 심지어는 똥값까지 받아 챙기며 자신의 집에 세들어 사는 인물들에게 있어 조금의 봐줌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매우 거친 입담의 소유자로, 욕지거리를 내뱉는 건 기본이요, 다른 사람들도 쉽게 하지 못할 말도, 거침없이 쏟아낸다. 하지만 또한 ‘주인할매’는 정의로운 할머니다. 옆집에 사는 외국인노동자 ‘솔롱고’가 그 집의 주인에 의해 부당하게 집을 쫓겨나가게 될 상황에서 ‘주인할매’는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의 일임에도 ‘이건 말이 안되지 않느냐’며 당당하게 ‘솔롱고’를 감싸고 나섰다. 그렇다. 우리는 어느새 이러한 ‘주인할매’의 가늠할 수 없는 그녀의 매력에 점차 빠져들게 된다. 화려한 입담은 아니지만, 그녀의 거친 듯 하지만 정감 있는 말투에 관객들은 점점 시골에 계신 자신들의 어머니이자 할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관객들을 극의 후반부에 달할수록 묘한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당장이라도 저 ‘주인할매’의 품에 안기고 싶다는, 그 품에 꼭 안겨 ‘할머니’라고 부르며 애교를 피우고 싶은 그러한 충동 말이다. 욕쟁이 할머니, ‘주인할매’는 사실 할머니, 할머니, 우리 할머니였다!
TV프로그램을 통해 ‘욕쟁이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 발 디딜틈 없이 손님들이 미어터지는 광경을 많이 봐왔다. 처음 봤을 땐, 도대체 손님들한테 저렇게 예의 없이 욕을 막하는 주인집 할머니가 뭐가 좋다고 가나 싶었다.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알아챘던 것이다. ‘욕쟁이 할머니’의 거친 입담 속에 있는 진정한 따뜻함을 말이다. 그리고 여기, 뮤지컬 ‘빨래’의 ‘주인할매’ 캐릭터가 그렇다. 그녀 역시 ‘욕쟁이 할머니’처럼 거친 입담으로 때로는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억척스러운 인물이지만, 우리는 왠지 그녀의 삶을 보며 우리의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종미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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