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 ‘굿바이걸’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극작가로 불리는 ‘닐 사이먼’이 1977년 쓴 동명의 영화를 무대로 옮긴 뮤지컬이다. 뮤지컬 ‘굿바이걸’에는 뉴욕의 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계속되는 실연에 지친 엄마 ‘폴라’, 주연 배우의 꿈을 안고 시카고에서 올라온 ‘엘리엇’, 이해심 많고 영리한 딸 ‘루시’가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특별히 배우 하희라와 뮤지컬 스타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정성화가 주연을 맡았다.
- 희안한 노스탤지어와 동심을 자극하는 리얼한 장치들
거리, ‘폴라’와 ‘엘리엇’의 집, 옥상으로 구성된 세트는 주목성 있는 깔끔한 외관이 특징이었다. 주로 브라운관를 통해 보아왔던 벽돌로 지어진 미국의 전형적인 소규모 아파트의 모습과 건물 바로 앞 도로표지판 및 공중전화 부스 등이 실제로 미국에 가 본 적은 없는 관객들에게도 왠지 모를 8~9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했다. 간접 경험에 대한 향수라는 것도 은근히 무시 못 할 것 같다.
공원 장면에서 솜사탕 장수를 맡은 배우가 솜사탕 수레에서 직접 진짜 솜사탕을 만들고 귀퉁이에 위치한 석조 분수에서는 실제로 물이 뿜어 나오는 등 실감나는 무대 연출로 관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뮤지컬을 보러 온 어린이 관객들이 분수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우와~’하고 소리를 질렀고 만들어진 솜사탕을 보고는 ‘먹고 싶다’고 부모님을 조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 오 아늑하여라 나의 집, 엄마의 손길이 닿은 곳은 역시 달라
주요 사건이 펼쳐지는 ‘폴라’와 ‘엘리엇’의 집 내부 세트는 크게 엘리엇의 방, 거실, ‘폴라’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 방마다 방을 사용하는 인물의 성격이 잘 드러났다. ‘엘리엇’의 방은 원래 소피가 쓰던 방으로 파스텔톤의 침구와 흰색의 가구가 ‘어린이 방’다운 분위기를 풍긴다. 후에 ‘엘리엇’이 ‘폴라’ 모녀와 동거하게 되면서 그 방을 쓰게 되는데 ‘엘리엇’의 짐은 겨우 가방과 기타가 전부였다. 그는 집안에 새로운 물건들을 사들이지 않고 ‘소피’의 옷가지만을 치운 채 그대로 사용하게 된다. 그것은 ‘엘리엇’의 아이같이 순수하고 소탈한 성격의 일면을 보여준다.
주방 뒤로 보이는 ‘폴라’의 방은 앞에 놓인 식탁과 옆의 냉장고 싱크대 등 큰 가구들과 싱크대 위의 식기 등 구석구석의 자질구레한 소품들로 인해 어지러워 보이기 쉬운 공간이었다. 하지만 방의 산만한 구조가 일정 수입이 없는 무용수 생활로 조숙한 딸을 키우는 싱글맘 ‘폴라’의 예민하고 복잡한 심리를 공간 내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었다.
그리고 두 방의 침대 위에 씌워진 침대보, 소파에 씌워진 소파커버, 식탁에 깔린 식탁보 심지어는 벽에 걸린 수건과 커튼까지 정면에서 관객들이 바라봤을 때 웬만한 소품에는 천이 덧씌워져 있다. 이것은 직장의 사무실이나 회의실 같은 딱딱하고 삭막한 실내 공간과 차별화되는 특징으로 모성이 존재하는 공간인 가정 특유의 포근하고 아늑한 성질을 적절히 표현해 주었다. 역시 어머니의 손길이 닿는 곳은 다르다. 아닌 것 같아도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 사랑과 온정이 몽글몽글 배어있다.
또한 천장의 등과 침대 옆에 놓인 갓이 씌워진 스탠드의 불빛이 백색광이 아니라 노르스름한 빛이어서 실내의 조명도 인물 간의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배경에 소소하게 일조하였다.
- 뮤지컬 관람의 후유증, 불쑥불쑥 입에서 튀어나오는 뮤지컬 넘버
뮤지컬 넘버 “굿 뉴스 배드 뉴스”는 이 뮤지컬의 테마곡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곡으로 ‘다행인건 ~이라는 것’으로 시작해서 ‘불행인 건 ~라는 것’으로 끝난다. 이 노래는 ‘폴라’와 ‘엘리엇’이 집안 사용 문제로 아웅다웅 다투는 장면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또 ‘엘리엇’이 주연을 맡은 연극에서 주인공 ‘리처드 3세’ 역을 연기할 때 연출자의 비정상적이고 무리한 요구에 따라 ‘남자 역을 맡은 여자 연기를 하는 남자’처럼 연기해야 함을 괴로워하는 장면에서 심각하지 않고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느껴지도록 돕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다만 34살의 ‘폴라’역으로 분해 노래하는 하희라의 목소리 톤이 여성의 톤이라고 하기엔 조금 낮았던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 점이 크게 튀지 않았고 ‘루시’역을 맡은 송다원의 맑고 높은 톤의 음색과 정성화의 안정된 목소리가 ‘폴라’의 결점을 보완해 주었다. 또한 ‘크로스비’ 역할을 맡은 배우 최나래의 파워풀한 목소리가 극을 꾸준히 고조시키며 활약을 했다.
- 우수성을 인정받은 탄탄한 원작과 환상적인 배우들의 하모니
뮤지컬 ‘굿바이걸’은 탁월한 원작에서 비롯한 주옥같은 대사들이 극의 재미를 살려 주었으며 무엇보다도 무르익을 대로 익은 배우들의 연기가 일품인 공연이었다.
뮤지컬 ‘굿바이걸’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탄탄한 원작에 기반을 두어 흥행을 예고했던 작품이었다. 원작가 ‘닐 사이먼’은 특유의 재치와 솔직한 대사로 이미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흥행력 있는 작가’로 평가 받고 있는 극작가이다. ‘굿바이걸’은 영화로 만들어졌을 당시 골든 글러브 각본상과 작품상 그리고 아카데미 남우, 여우주연상을 모두 석권하는 영예를 안았다. 또한 극 중의 가사는 1989년 ‘city of angel ’로 토니상 최우수 대본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지펠’이 썼다. 그리고 음악은 오스카, 그래미, 토니, 퓰리쳐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동시에 석권한 ‘마빈 햄리쉬’가 작곡했다. 뮤지컬로는 1993년 3월 브로드웨이에 입성하여 그 해, 토니 어워즈 베스트 뮤지컬을 포함한 모두 12개 부분에 노미네이트 된 기록이 있다.
하희라는 앙칼지면서도 한편으론 어리숙한 면을 가지고 있는 귀여운 여자 ‘폴라’역을 잘 소화해 냈다. 몇 편의 뮤지컬에도 출연했었지만 TV 드라마로 배우 최수종의 아내로 더 익숙한 배우 하희라의 연기는 기대이상이었다. 그리고 정성화의 담백하고 털털한 연기가 주인공 ‘엘리엇’의 솔직하고 따뜻한 모습을 잘 그려냈다. 정성화가 맡은 ‘엘리엇’은 겉으로 볼 때는 다혈질에 괴팍하지만 내면은 한없이 다정다감한 캐릭터이다. 그는 ‘엘리엇’이 갑자기 느끼한 아저씨로 돌변하지 않게 ‘엘리엇’이란 인물을 재치있게 소화해냈다.
당신이 있는 곳이 한적한 시골이건 복작거리는 시내 한 복판이건 간에 세상은 봄의 물결이 한창이다. 연둣빛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면 바깥의 풍경들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투명하게 일렁이는 봄. 그 봄을 시인 이해인 수녀는 ‘풀물 든 가슴으로’라는 시에서 봄을 ‘겨우내 아팠던 싹들이 웃으며 웃으며 올라오는 봄’이라고 노래하였다. 그렇게 생명력 강한 봄은 다섯 번의 연애 실패에 다친 ‘폴라’의 가슴에도, “나에게 아빠는 생물학적인 아빠밖에 없어요”라고 말을 했던 ‘루시’의 가슴에도 사랑과 가족이라는 싹을 틔웠다. 지금 실연의 상처에 얽매여 찾아온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해인 시인의 말을 빌어 당부하고 싶다. ‘봄에는 슬퍼도 울지 마십시오 신발도 신지 않고 뛰어 내려오는 저 푸른 산이 보이시나요? 그 설레임의 산으로 어서 풀물 든 가슴으로 올라 가십시오’라고 말이다. 진실한 사랑은 웅크린 마음을 열 때야 비로소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 ‘굿바이걸’이 관객들의 가슴 속에도 파릇파릇 싱싱한 감동의 싹을 틔울 수 있을 지 기대해 본다. 공연은 6월 15일까지 백암아트홀에서 계속된다.
연분홍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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