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중순께 찾아 올 좀비들로 벌써부터 뮤지컬계가 시끌벅적하다. 뮤지컬계의 젊은 피 쇼팩의 송한샘 대표를 주축으로 내로라하는 배우와 스태프가 모여 일대 파격적인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각오다.
정통 B급이란다. 자기 작품이 서로 A급이라고 난리인 판에 대놓고 B급이라니, 사실 그래서 더 구미가 당긴다. 천편일률적인 브로드웨이 쇼뮤지컬이 지겨워 토니상 수상자들이 모여 만들게 되었다는 ‘이블데드’는 ‘스플래터존’이라는 독특한 마케팅이 아니더라도 한국 뮤지컬 시장에 ‘새롭다’라는 기대감을 안겨준다. 그 이유는 바로 좀비라는 소재다. 물론 영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와 무대는 분명 다르다. 죽이겠다는 좀비와 살겠다는 인간들의 활약(?)이 바로 내 눈앞에서 펼쳐진다니, 우선 마술 같은 무대효과에 먼저 주목해야겠다.
좀비는 통상적인 구분의 논리를 방해한다. 양쪽의 상태를 다 취함으로써 어느 쪽의 상태에도 있지 않다. 좀비는 우리와 다른 질서에 속한다. 이런 좀비에 인간의 이기심과 자만심을 비유하기도 한다. 해체주의로 유명한 영국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이 좀비로 인간의 결정불가능성을 이야기 했다. 이런 결정불가능성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양성 구유자가 있으며, 인간과 기계 사이에는 안드로이드, 친구와 적 사이에는 이방인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좀비는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과 아주 가깝게 있다.
일반적으로 좀비는 공포다. 하지만 ‘이블데드’가 중시하는 것은 코믹이다. 정말 대책 없이 웃기겠다는 각오다. 좀비에 코믹이 붙으니 그것이 가깝게 느껴지기는 하다. 게다가 ‘이블데드’는 기대 중인 관객들에게 심히 불친절(?)하다. ‘이블데드’의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면 비속어와 인터넷 용어 남발에 대 놓고 자신감을 부린다. 그것부터가 크게 웃지 않을 수 없다.
‘이블데드’는 열혈 청년들이 좀비들과 벌이는 한 판 싸움이다. 하나 둘씩 좀비가 되는 친구와 연인을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하는 주인공이지만 그는 심히 주인공스럽지 않다. 그는 정의의 수호신도 인류의 구원자도 아니다. 그냥 살고자 몸부림 칠 뿐이다. 어처구니없는 소품들과 캐릭터, 게다가 죽은 레이몬드 박사의 유령이 갑자기 나타나 좀비 퇴치법을 알려준다고 하니 참 만화스러운 설정이다. (물론, 애들이 볼 만한 장면은 별로 없어 보인다.)
역시 가장 기대되는 장면은 주인공 ‘애쉬’가 좀비가 된 자신의 한 쪽 손을 전기톱으로 잘라내는 장면이다. 이것 역시 사실적인 묘사일지 아니면 어처구니없는 상상력이 될지 기대가 크다.
사실 스토리는 이 작품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제작사 측은 ‘이블데드’에 심오한 줄거리는 없다고 미리 엄포한다. 그 치밀한 스토리나 인류구원을 위한 눈부신 메시지 없이도 티켓 값 결코 아깝지 않다는 말 되겠다. 그냥 ‘한 판 웃고 즐기라’이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도, 열혈 기자의 입장에서 보아도 이런 특이한(?) 작품이 집에 가면서 더 생각나는 법이다. 작품의 주제가 주는 메시지가 아니라 작품 자체로서 이미 각인된다는 말이다.
‘이블데드’, 말 그대로 정통 B급 코미디다. A급들이 모여 만든 B급이라... 물론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 아닌가. 하지만 마음껏 기대하라는 이들의 말을 듣고 보면 기대안하면 안 될(?) 분위기다. 그래서 전기톱 들고 나타날 코믹한 류정한과 꽃미남 조정석을 상상하며 무작정 기대해 보련다.
공정임기자 kong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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