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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시인이 된 비보이, 예술적 감성을 옷 입다! - 시댄스 2008, ‘힙합의 진화 ∥’

 

영화 ‘스텝 업’을 보면 춤깨나 춘다하는 춤꾼들이 모여 서로의 실력을 견주어보는, 이른바 ‘댄스배틀’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체계화된 학습을 거치지 않은 이들의 독창적인 스트리트 댄스는 발레보다 덜 고상하고 컨템포러리 무용보다 덜 사색적일지언정 그 자유분방한 마력으로 많은 젊은이들을 매료시킨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서 있는 것이 바로 힙합. 그동안은 힙합하면 스트리트, 스트리트 하면 곧 힙합이었다. (메인사진_브라힘 브슐라겜의 ‘방랑자’

그런 점에서 지난 10월 21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었던 ‘힙합의 진화 ∥’는 그동안 스트리트 댄스의 이미지를 지우지 못했던 힙합 춤의 본격적인 무대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힙합의 무대화’는 한국 공연예술계의 주요 화두였다. 자유로움, 에너지, 그리고 춤의 기교 등 힙합춤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살려 공연문화의 다양성과 질을 높이고자 하는 목표에서다. 그렇게 하여 지금까지 힙합의 무대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들이 자행되었고 여러 고민 끝에 생겨난 산물이 바로 ‘힙합의 진화 ∥’인 것이다. 이번 공연에는 지난해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연이어 참가하게 된 김설진, 이인수와 프랑스에서 날아온 스타 비보이 브라힘 부슐라겜까지 초청된데 이어 ‘모던힙합’을 부르짖는 고릴라 크루 - 이우재가 합세 했다.

먼저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를 시각화 한 김설진의 ‘카니발’이 첫 무대를 장식했다. ‘카니발’은 동화적인 상상력을 견지했다는 점에서 뒤이은 세 작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안ダ� 본인이 “아이들을 위해 만들었다”라고도 밝혔듯 코믹성과 따뜻한 정서를 동시에 품은 이 작품은 더 친근하고 포근히 관객들에게 흡수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카니발’에서 가장 중요하게, 그리고 빈번히 사용되던 것은 무용수들이 입고 있던 옷이다. 그들은 알록달록하며 신축력까지 뛰어난 옷을 오브제로 사용하여 여러 가지 아름다운 시각효과를 연출했다. 이와함께 육, 해, 공 모든 만물을 완벽히 묘사하는 무용수들의 표현력 역시 일품인 공연이었다.

다음으로 이어진 무대는 이인수의 ‘오뚜기’다. 이 작품은 우연히 오뚜기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이인수 안무자가 “인간 역시 넘어지면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되어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무용수들은 무대 앞뒤를 오가며 걷기와 군무를 반복했다. 그 사이 외톨이처럼 보이는 무용수 한명을 계속 밀치며 돌아다녔는데, 그 역시 ‘넘어지면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주제의 상징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오뚜기’는 주제의 전달력과 함께 몸의 기술성 역시 두드러진 작품이었다. 특히 ‘오뚜기’처럼 쓰러졌다가도 일순간 일어나는 강렬한 동작과 등으로 중심을 잡으며 오뚜기를 표현한 부분에서는 수차례의 연습 끝에 얻어진 무용수들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7명의 무용수들이 빠른 비트의 움직임을 오차 없이 일정하게 소화해내는 부분 역시 인상적이었다.

이어 고릴라크루 - 이우재의 ‘죽음에 이르는 망상’이 공연되었다. 앞선 두 작품보다 음침한 분위기로 출발한 이 작품은 요괴나 괴물을 연상케 만드는 무용수들의 등장으로 더욱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연출했다. 흰 옷을 입은 여인이 중앙에 누워있고 그녀의 옷 안에 들어가있던 다른 무용수(악마의 분장을 한)가 실체를 드러내면서 공연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 여인을 사이에 놓고 펼쳐지는 무용수들의 기괴한 움직임은 정말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의 망상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죽음에 이르는 망상’은 힙합과 현대무용의 결합 뿐 아니라 모던과 주술이 섞인 퍼포먼스 역시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특히 무당의 신들림을 힙합 동작의 파워풀함과 접목시킨 점이 흥미로웠다.


△브라힘 브슐라겜의 ‘방랑자’


마지막 무대는 프랑스에서 온 브라힘 부슐라겜의 ‘방랑자’가 장식했다. 현대무용 안무가인 카롤린 카를송이 ‘시인’이라고 칭한 브라힘 부슐라겜은 12살때부터 독학으로 힙합을 익혔고 여러 현대 무용단을 거치며 진솔한 힙합 안무에 매진하고 있는 안무자이자 비보이다. ‘방랑자’는 알제리에서 일자리를 찾아 프랑스로 떠나버린, 상습적 노름꾼이었던 아버지에게 바치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은 탁자와 의자, 옷걸이과 스크린이라는 간략한 오브제들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앞선 세 작품이 ‘스토리’를 우선시했다면 이 작품은 안개처럼 깔려있는 스토리 위에 몸의 움직임과 영상의 미학, 그리고 브라힘 부슐라겜의 카드 퍼포먼스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이번 공연을 통해 관객들은 정극, 혹은 무대예술과 계속적인 접목을 시도해 온 힙합인들의 고민과 노력을 엿볼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힙합의 옷을 입은 현대 무용 역시 그동안의 정형성을 깨고 한층더 관객들을 위한, 그리고 그들과 즐기기 위한 무대를 선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앞으로도 한국 무용인들의 끝없는 노력을 통해 더 많은 장르를 섭렵하는 ‘다양한 힙합’을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심보람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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