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예모가 연출한 중국 퓨전 발레극 ‘홍등’이 지난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었다. 푸른 산과 맞닿은 성남아트센터 산책로에는 곳곳에 붉은 홍등을 달아놓아 공연장으로 올라가는 관객들에게 기분 좋은 설레임을 안겨주었다. 발레 ‘홍등’은 익히 알다시피 세계적인 거장 장예모가 연출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이슈였다. 그는 영화 ‘홍등’, ‘황후화’, ‘붉은 수수밭’, ‘연인’ 등 여러 작품을 통해 국제적으로 상을 휩쓸며 세계적인 영화감독 반열에 올라섰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장르를 불문하고 오페라, 발레 등 무대작품 제작과 연출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며 자신만의 예술적 감각을 모두 쏟아내고 있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발레극 ‘홍등’은 장예모 특유의 색채, 이미지 연출력이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공연 시작 전 무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붉은 홍등은 어두운 공연장에 화려함, 그 이상이었다. 특히 은은하게 비취는 붉은 홍등아래 푸른색 치파오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춤을 출 땐 해질녘 노을 진 오후의 햇살을 보는 듯 관객들을 작품 안에 그대로 빠져들게 했다. 여기에서 색채의 배합을 중요시하는 장예모의 취향이 발레극 ‘홍등’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신혼첫날 밤, 강제로 결혼하게 된 여주인공이 영감에게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장면에서는 무대 막을 설치해 놓고 그림자극을 이용해 그 상황을 대신해 주었다. 이는 기존의 발레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으로 실제 상황을 더욱 사실감 있게 그려내어 작품의 스토리 전달력을 높인 것이다. 더구나 그 막을 찢고 무대로 튀어나오는 여주인공과 영감, 이들의 모습을 붉은 천으로 덮음으로써 비극적인 운명을 알리는 장면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연출가 장예모만의 독특한 감각기법이라고 여겨진다.

더욱이 발레극 ‘홍등’에서 보여진 무용수들의 실력은 ‘역시 중국스럽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뛰어났다. 항상 모든 것이 정확하게 완벽함을 요구하는 중국발레에서 남성무용수들은 그 맛깔스러움을 더해주었다. 이 일진을 이루며 춤을 추는 남성군무들은 발하나, 시선 하나의 오차 없이 모든 움직임을 일치시켰다. 전반적으로 테크닉적인 면을 본다면, 기존의 클래식발레에서 보여진 고난이도의 테크닉보다는, 예술성 짙은 느낌위주의 리드미컬한 테크닉을 선보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어쩌면 작품 스토리자체가 중국의 전통적인 일부다처제 모습에서 풍기는 여러 어두운 면들을 포괄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가슴속까지 뻥 뚫리게 하는 기교 높은 테크닉 보다는 감정의 대립이 짙은 느낌위주의 춤을 삽입함으로써 예술적인 면모를 더해준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독특한 특징이라고 한다면 경극과 중국전통음악을 삽입시킨 점이다. 경극은 중국에서 영향력이 크고 가장 대표성을 띤 극의 종류로서 극본, 연기, 음악, 노래, 소도구, 분장, 의상 등의 예술적 요소를 다채롭게 결합한 총체적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발레라는 무대예술 바탕위에 경극을 삽입시킨 점은 서양예술과 동양예술의 색다른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예술을 발레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점이 작품의 질을 높인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중국전통음악이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극은 현대적인 모던함보다는 드라마틱한 느낌으로 천천히 흘러간다. 극이 잔잔하게 진행되다가 클라이막스에 도달했을 때는 음악이 작용하는 효과가 크다. 음악이 좀 더 강하게 들어오거나 사운드를 높여 극의 클라이막스를 잘 부각시켜줘야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이 너무 여유롭다는 느낌이 든다. 그 부분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결론적으로 말해 발레극 ‘홍등’은 중국이기에 가능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물론 작품 안에 경극도 삽입되었고 중국고유의 느낌을 풍기게 하는 의상과 음악 등이 사용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점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대 위에 사용된 색채미와 이미지 기법은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장예모만의 독특한 감각능력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특히 장예모가 중국인이 아니었다면 중국만이 가진 특징을 작품 안에, 그것도 하나의 영상처럼 이렇게 녹여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우리도 우리 고유의 한국 춤이 있겠지만 우리고유만의 퓨전 발레가 없다는 것은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문제다. 한마디로 말을 맺자면 발레극 ‘홍등’은 중국을 대변해주는 가히, 장예모다운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박하나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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