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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셰익스피어와 뮤지컬의 재기발랄한 조우, 뮤지컬 ‘썸씽로튼’뮤지컬 패러디와 언어유희로 명품 코믹극 완성해

단순하고 유쾌하게 폭소를 터뜨리지만 그 방식은 치밀하고 짜릿하다. 낯선 외국 배우들이 만담처럼 주고받는 대사와 슬랩스틱, 시트콤처럼 잘 짜인 좌충우돌 에피소드에 한국 관객은 속수무책 웃음을 터뜨렸다. 특히 평소 뮤지컬을 좋아해 온 관객이라면 뮤지컬의 매력을 마음껏 늘어놓는 이 독특한 뮤지컬에 빠질 수밖에 없다. 뮤지컬 ‘썸씽로튼’은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뮤지컬이 탄생했다면?’이라는 기발한 설정에다가 16세기 영국의 시대 분위기와 브로드웨이 명작 뮤지컬들의 패러디를 찰지게 녹여 만든 명품 코미디극이다.

16세기 영국, 당대 시대적 분위기 물씬

공연의 오프닝을 화려하게 여는 넘버 ‘Welcome to the Renaissance'는 16세기 영국의 시대적 변화를 유쾌하고 알기 쉽게 노래한 곡이다. 음유시인이 등장해 우울했던 중세 분위기를 요약적으로 읊다가 당시 사람들이 차례로 등장하며 과학과 문화가 꽃피웠던 시대, 당대를 살아가는 중세인으로서의 자부심 등을 노래한다. 시대가 잘 요약된 가사는 “지금이 바로 르네상스(Welcome to the Renaissance)”라는 가사 반복과 중독적인 멜로디, 화려한 의상과 소품으로 시작부터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했고 부엌도구도 최신식. 우리 잔은 백랍방식, 집들은 튜더 양식. 세련되고 현대적인 장식. 숙녀복은 페티코트, 파딩게일. 제비꼬리 턱수염은 우리가 제일. 우린 엘리자베스 시대인들. (중략) 마녀들이 화형당하고 전쟁이 터지는 동안 틈틈이 일궈낸 문화와 예술. 지금이 바로 르네상스. 인쇄공들은 고급진 활자를 찍지. 문학과 극예술도 꽃을 피웠네.”  - Welcome to the Renaissance 중에서 -

흑사병이나 청교도인, 록스타처럼 당대인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셰익스피어의 모습 등도 시대적 분위기를 잘 담아내고 있다. 주인공인 바텀 형제는 당대 예술가들의 고뇌와 창작 과정을, 청교도인의 딸과 형 닉의 아내 ‘비아’는 당대 진취적인 여성들의 모습을 드러낸다. 예술에 관심이 많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후원을 금지당했던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사실적으로 재해석해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했다.

유쾌한 뮤지컬 설명서, 패러디와 흥이 넘치는 ‘A Musical'

무엇보다 작품에서 가장 큰 환호를 이끌어내는 장면은 온갖 유명 뮤지컬들의 넘버를 교묘하게 편집해 만든 ‘A Musical'이다. 이 곡 하나에 무려 20개의 뮤지컬 장면과 대사가 패러디되어 녹아있다. 뮤지컬이 없었던 시대에 엉터리 예언가가 미래에 크게 성공할 뮤지컬을 설명하는 대목과 뮤지컬 문법을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닉 바텀의 황당해하는 반응이 오가며 시작부터 웃음을 자아낸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관객들은 대중적인 흥미를 반영하며 발전해 온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매력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가사들, 뮤지컬들의 명장면을 교묘하게 패러디한 곡의 진행에 무릎을 치며 폭소하게 된다.

“어떤 뮤지컬은 대사가 하나도 없을 수도 있어. / 말을 하나도 안 한다고? / 바로 그거야. 대사가 없는 거지. 모든 대화는 노래로 이루어질 거야. 굉장히 극적인 방식으로. 종종 한음에 머물러 있기도 할 걸, 아주 오랫동안. 그래서 그들이 다른 음으로 바꾸면 너는 알아채겠지. 그건 극적 효과를 연출하기 위한 건데 보통 너는 객석에 앉아 너 자신에게 묻겠지. “쟤네 도대체 왜 말로 안 해?”  - ‘A Musical' 중에서 -

바텀 형제보다 빛나는 여성 조연, ‘비아’
-가정 위해 남장, 성별 역전 꿈꾸는 당찬 매력

작품의 주된 서사를 이끄는 것은 주인공인 ‘바텀 형제’와 당대 스타인 ‘셰익스피어’지만, 그 매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조연 캐릭터도 있다. 형 닉 바텀의 아내인 ‘비아’는 셰익스피어에 밀려 빛을 보고 있지 못하는 남편에게 “(당신의) 오른팔이 되겠어”라며 당찬 포부를 밝히면서 등장부터 눈길을 끈다.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이었던 당대 사회에서 닉은 아내가 경제적 활동에 나서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지만, 비아는 남장을 하면서까지 돈을 벌러 나선다.

남장한 여성 캐릭터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종종 등장하는 설정이다. 남장 덕분에 난감한 상황을 해결하기도 하고, 애정전선에 장애가 생기거나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아의 남장은 단순한 웃음유발 요소라기보다는 당대 무시받는 여성의 처지를 위트 있게 비판하고, 무능력하고 비관적인 남편보다 빠르게 행동하고, 긍정적으로 문제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남장을 해서 그녀가 얻은 일이 기껏 똥을 치우는 일이었지만 비아는 불평하지 않고 직책이 생겼다며 즐거워한다. 그마저도 여성에게는 주지 않는 일자리였다면서 “똥 치우는 여성도 생길거야”라고 희망적인 의지까지 내보인다. 시원시원한 동작 연기와 사이다적인 대사가 만들어내는 이 당돌한 여성 캐릭터는 현대 여성 관객에게 짜릿한 대리만족의 쾌감을 안겨주며 폭넓은 공감대를 얻을 만했다.

뮤지컬 ‘썸씽로튼’은 샬롯의 거미줄’, ‘스머프2’의 각본을 쓴 캐리 커크패트릭과 에릭 클랩튼과 함께 작업해 그래미에서 수상하기도 한 그의 형 웨인 커크패트릭의 합작품이다. 두 형제는 어린 시절부터 상상했던 ‘셰익스피어의 그늘 아래에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극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기로 결정했고, “셰익스피어의 런던이 브로드웨이의 30년대와 비슷했다면 재미있지 않을까?”에서 출발해 극작가가 예언자를 찾아간다는 기발한 설정을 더했다. 기존의 웅장하고 드라마틱하며 진중한 뮤지컬들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허를 찌르는 전개와 패러디, 언어유희가 안겨주는 독특한 유머와 재기발랄함이 새로운 매력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수많은 레퍼런스가 녹아 있는 대사들은 내공을 쌓아온 오랜 국내 뮤지컬팬들에게는 장면을 여러 번 곱씹어 즐길 만한 특별한 재미를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 제공_엠트리뮤직/에스앤코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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