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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삶은 권태를 편집하지 못한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한국 초연 50주년,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어떤 궤적도 그리지 않고 무질서의 사소한 해프닝들이 지나간 무대. 관객에게 그 무엇도 남지 않을 것 같지만 함께 ‘견뎌낸’ 느낌이 오롯이 남겨진다. 180분의 공연 시간은 극중에서 조금도 축소되거나 확장되지 않고 마치 일상이 권태를 편집하지 못하듯 인물과 관객에게 고스란히 주어진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그리고 관객들은 고도를 기다리며 시간을 견디지만 결국 고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그동안 신발을 벗으려 애쓰고, 볼일을 보고, 두리번거리거나 투닥거리고, 끌어안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길 반복했을 뿐. 다음날에도 상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언뜻 무의미해 보이는 이 일련의 고군분투들이야말로 실제 삶에 가장 가까운 것이 아닐까.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그렇게 관객으로 하여금 현대인에게 숙제처럼 던져진 삶과 그 안에서 시간을 견디는 우리의 존재방식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한다.

사뮈엘 베케트의 대표 부조리극
- 존재의 의미 찾기 속 짙은 ‘블랙유머’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사뮈엘 베케트의 대표작으로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부조리극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찾아온 인간 이성에 대한 비판과 회의를 바탕으로 시도된 부조리극은 그간의 질서들을 비틀고 해체시킨다. 부조리극의 주제는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다. 이 작품에서 인물들은 ‘고도’라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대상을 기다려야 하는 삶과, 나무에 목을 매는 것으로 생을 끝내는 것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반복적으로 놓여 있다. 죽지 않는다면 결국 삶의 목적은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삶이란 결국 오늘 올지 내일 올지 알 수 없는 대상을 기다리는 것이며, 오지 않는 대상을 기다리며 시간을 견디는 동시에 그것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이 작품 안에는 완벽한 서사도, 개성적인 인물도, 화려한 이미지나 강렬한 사운드도 없다. 어디에나 존재할 것 같으면서도 무엇 하나로 특정할 수 없는 묘한 캐릭터들과 그들이 나누는 상투적이고 기계적인 대사와 행동들이 극도로 간소화된 무대에서 펼쳐진다. 정적이나 침묵과 같은 빈 시간도 흔하게 존재한다. 다만 특징적인 것은 그 안에 담겨진 ‘블랙 유머’다. 특히 고통을 소재로 한 일련의 희화화는 관객을 웃기는 동시에 인간을 조롱하거나 소외시키는 인간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비인간화된 일상에 대한 비판을 드러낸다. 구두를 벗지 못해 괴로워하는 에스트라공이나, 포조에 의해 인간성을 말살당한 럭키, 목을 매려고 허리띠를 풀자 바지가 벗겨지는 장면 등은 모두 웃음의 소재로 활용된다. 하지만 결코 웃을 만한 상황은 아니다. 과장된 제스처를 빼면 남는 건 고통이며 비극이다. 마치 찰리 채플린의 영화처럼 말이다.

오래된 부부 같은 친숙함과 쓸쓸함
- 이호성, 박용수 배우의 디디와 고고

주연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의 조합은 단순한 친구를 넘어서 수십 년을 함께 해 온 부부와 같은 편안하고 친숙한 호흡을 보여준다. 박용수 배우의 고고는 성별과 연령을 특정 짓기 힘든 어투와 몸짓이 매력적이었다. 기억을 잃거나 얻어맞거나 하는 약자의 모습에 어리광과 투정 섞인 제스처를 하지만 근본적으로 과거의 아픔을 오래 기억하지 못하기에 오히려 천진하기도 하다. 이에 비해 이호성 배우의 디디는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집착과 환기를 반복하면서 권태를 괴로워하고 고독을 못 견뎌한다. 두 배우의 조합 안에는 친숙함과 쓸쓸함이 공존한다. 오랜 세월을 반복해 온 그들은 마치 멸망하는 세계에 오직 둘만 남겨진 것처럼 서로를 의지하지만 동시에 서로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고고는 구두가 발을 조이는 고통, 타인에게 얻어맞는 고통을 홀로 견뎌야 하고, 디디는 고도를 기다리는 매일의 반복 속에서 기억을 쉽게 잃는 고고보다 더 큰 불안과 집착을 안고 살아야 한다.

조연이지만 포조와 럭키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특정한 스토리가 없는 극 전체에서 포조와 럭키는 적절한 극적 긴장감을 주며 작품의 빈 시간을 채워준다. 정나진 배우의 포조는 오만하고 잔혹하면서도 어딘가 허술하고 순진해, 그 양면성이 관객을 여러 번 웃게 만들었다. 과장된 복장이 안겨주는 우스꽝스러움도 포조라는 인물이 가지는 잔혹성을 누그러뜨리고 친근하게 만든다. 반면, 럭키 역의 박윤석 배우는 가장 예측불가능하고 인간성이 결여된 기계화된 인물 표현으로 주목을 끌었다. “생각하라!”는 포조의 명령에 대한 럭키의 격렬한 반응은 그간의 작품 전체 분위기를 일순 전복시킨다고 할 만큼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있었다. 폭력적이고 수직적이며 불합리한 포조와 럭키의 관계는 이 작품 특유의 블랙유머를 더욱 짙게 드러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올해 산울림 극단은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의 첫 무대를 올린 이래 뜻 깊은 50주년을 맞았다. 한 공연이 50년 동안 꾸준히 무대에 올라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배우와 관객, 연출가 모두 일생의 동반자처럼 작품 속에서 함께 살아온 셈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고고처럼 얻어맞으며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지 종종 잊어버릴 것이다. 그 때마다 이 작품이 무대에 올라 마치 디디의 잔소리처럼, 길고도 짧은 이 생애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이유를 우리에게 다시금 상기시켜준다면 좋겠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반복이 삶의 본질이라는 안도감, 오지 않는 무엇을 기다리는 자체가 삶이라는 깨달음이 우리를 씁쓸하지만 따뜻하게 위무한다.

사진 제공_국립극단

박세은 기자  eunybeaut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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