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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별들이 보낸 진실의 편지, 뮤지컬 ‘시데레우스’17세기 지동설 주장한 두 학자의 이야기

한 번 진실을 알게 된 자는 그것을 알지 못했던 때로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 성경에 기반한 천동설의 신념에서 벗어나 망원경으로 직접 우주를 관측해 지동설의 진실을 발견한 갈릴레이 또한 그랬다. 뮤지컬 ‘시데레우스’는 지동설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야 했던 ‘갈릴레이’를 중심으로 그의 연구에 힘을 보탠 ‘케플러’와 갈릴레이의 딸 ‘마리아’까지 세 사람의 여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실재했던 사건과 인물을 바탕으로 위대한 과학적 발견의 순간을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극적으로 각색했다. 17세기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같은 의문으로 만난 두 학자가 서신을 교환하면서 모든 사건은 시작된다. 끈질긴 인내와 빛나는 탐구심으로 우주를 연구해가는 둘에게 과연 별들은 진실의 편지로 화답해 줄 것인가.

잘못된 신념과 대결하며 진실을 좇은 학자들의 이야기
-17세기 다소 험난한 우주 탐구 여정

이 작품만의 가장 큰 개성은 17세기 수학자들이 우주의 진실을 탐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꽤 구체적인 당대 학자들의 이론을 언급하며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17세기 확고한 신념이었던 천동설에 의문을 품고 새로운 가설을 확증해 나가는 두 학자의 탐구 과정은 스크린 영상과 바닥의 조명 장치 등을 활용해 최대한 시각적으로 구현된다. 두 학자를 둘러싼 실화와 이론을 어디까지 어떻게 서사에 반영할지 제작진은 꽤 고심한 듯하다. 작품은 두 학자의 실제 서신 교환을 흥미롭게 전달하기 위해 ‘종소리’를 활용해 마치 실시간 채팅처럼 유쾌하게 표현하거나, 초중반의 서사가 지루하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갈릴레이의 ‘메디치 가 설득작전’과 같은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를 첨가하기도 했다.

초중반의 두 학자의 토론이나 탐구를 위한 이론적인 언급은 작품 전체 서사를 이루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때문에 과학적 배경지식이 없거나 지동설에 관심이 없는 관객이라면 서사에 몰입하기 어려울 수 있다. 작품 전반에 당시의 과학적 이론을 진지하게 녹여낸 접근은 이 작품의 호불호를 가르는 포인트가 됐다. 여타의 작품들처럼 캐릭터 간 갈등이 적은 데다 종교와 과학이 갈등하는 시대적 갈등이 주가 되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반대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 부르는 과학혁명, 역사적인 두 인물(케플러, 갈릴레이)에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알기 쉽게 두 학자의 생각을 전달하려 애쓴 작품의 이야기 방식이 충분히 흥미를 끈다. 몇몇 장면에서는 어떤 과학책보다 이론전달이 생생하고 체험적이었다. 특히 미지의 영역이었던 우주를 17세기 학자들이 과감히 들여다보고자 망원경을 만들어낸 이야기는 오늘날 관객에게도 충분한 감동을 준다.

장면과 케미를 살려주는 극적 넘버들
-넘버들에 녹여낸 ‘티키타카’ 호흡

이 작품은 꽤 귓가에 남는 넘버들이 많다. 유쾌하거나 서정적인 멜로디도 좋지만 무엇보다 가사들이 장면을 잘 담아내고 중창으로 노래할 땐 캐릭터 간의 케미를 잘 살려준다. 인물들이 동시에 부르는 중창도 있지만 서로 다른 공간이나 입장에서 이어 부르는 곡들도 있다. 초반 넘버 ‘답장’이나 대표 핵심 넘버인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는 케플러와 갈릴레이의 개성적 케미를 즐겁게 담아낸 곡들이다. 돌직구에 열정이 넘치는 젊은 청년 케플러와 고지식하면서도 이성적인 ‘갈릴레이’의 캐릭터가 선보이는 티키타카 호흡이 유쾌하다. 케플러를 연기한 ‘신성민’은 시종일관 진지한 해맑음을 선보였고, 갈릴레이를 맡은 ‘고영빈’은 겉으로는 냉정하지만 내면의 따뜻한 면모를 드러냈다. 나이도 성격도 차이가 나는 두 학자의 묘한 케미가 곳곳에서 객석을 흐뭇하게 했다.

부녀인 갈릴레이와 마리아의 케미도 후반부 서사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마리아 역을 맡은 ‘나하나’ 배우의 섬세한 감정연기는 후반부 서사를 더욱 매력적이고 극적으로 이끌었다. 마리아 캐릭터는 초반에는 17세기 당대 신념을 철저히 신봉하지만 서서히 아버지의 책과 두 학자가 나눈 편지, 망원경을 통해 새로운 진실을 깨닫게 되는 입체적 인물이다. 기본적으로 가정에 불성실했던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과 이단으로 몰려 탄압받는 아버지를 향한 연민과 애정이 뒤섞이면서 연기 자체가 다채롭고 흡입력이 있다. 인물 간 갈등이 거의 없고, 두 남성 배우가 주된 서사를 이끄는 작품 전체에서 음악적이나 갈등의 균형 면에서도 마리아는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학자가 아닌 당대 일반인의 시선을 대변한다는 점에서도 관객의 몰입을 도왔다.

나의 믿음이 진실이라 믿었을 때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고. 답은 선명하고 영원했어. 나의 발밑의 땅이 멈춰 서 있을 때 내게 정해진 길을 따라 걸었고 다른 꿈을 꿀 수도 없었지만 이젠 돌아갈 수 없어. (...) 내가 알던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끝이 없는 고통 속으로 걸어간다 해도 진실이 날 두렵게 하고 거짓이 날 위로하여도 돌아가선 안 돼 예전의 그 때로. - ‘돌아갈 수 없어’ 중에서-

‘실제 우주 속에 있는 듯’, 조명과 영상 연출 돋보여

이 작품은 우주에 심취한 두 학자의 머릿속 생각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려한 섬세한 연출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반구형의 정면 무대와 기울어진 원형 바닥면은 때때로 우주와 별들을 구체적이거나 상징적으로 형상화하는 스크린이 되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특히 넘버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장면에서 진실을 발견해 감격한 갈릴레이가 별들의 위치를 바닥에 책을 늘어놓으며 표현하는 부분은 책이 별처럼 빛나며 행성의 궤도를 완성하는 아름다운 연출이 돋보였다. 이 장면은 서사적으로도 갈릴레이와 케플러의 학자로서의 우정과 케미가 가장 돋보여 연출과의 조화가 빛나는 부분이었다.

이 작품의 마무리를 감동적으로 이끌어내는 데에도 조명 연출이 한몫한다. 후반부 케플러는 의지가 꺾인 갈릴레이를 직접 찾아와 새로운 망원경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 새로운 도전을 다시 하게끔 설득한다. 두 학자의 우주를 향한 식지 않은 열정은 객석까지 우주의 복판으로 만드는 조명 연출을 통해 관객이 감성적으로도 인물과 일체감을 느끼게 만든다. 후반부 갈릴레이가 결국 재판장에서 거짓증언을 했음에도 객석이 마무리에 서운함이 남지 않는 것은 이러한 연출이 충분히 둘의 여정을 의미 있는 연장선으로 와닿게 한 덕분이다. 작품은 지금까지도 여전한 우주에의 낭만과 신비를 마지막까지 객석에 한껏 흩뿌린다.

갈릴레이의 책 ‘시데레우스 눈치우스’가 출간된 해는 1610년이었다. 북극성이 지구로부터 400광년 정도 떨어져 있으니 지금 우리가 보는 북극성이 바로 갈릴레이가 살았던 그 시대의 모습인 셈이다. 지금 우리에게 와닿는 별빛들은 모두 그렇게 과거에서 왔다. 모두가 사실이라고 믿는 상식이나 신념이 미래에도 여전히 진리로 남을지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고,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선구자들의 아름다운 혁명은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다. 그렇기에 두 학자의 이야기는 현재에도 과거에서 온 별빛처럼 유효하다. 400년 전 케플러와 갈릴레이의 이야기를 통해 당대 과학자들의 열정과 우주의 신비를 대리체험하고 싶은 관객에게 이 작품을 기꺼이 추천한다.

사진제공_(주)랑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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