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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우린 결국 같은 길을 가는 바다3.1운동 100주년, 깊은 메시지와 여운 전해

새하얗게 눈 덮인 설산 위로 그 예전 드라마의 감동을 일깨우듯 섬세한 피아노의 선율이 쏟아져 내린다. 평범했던 여인 윤여옥이 총을 맞고 쓰러지고, 그녀의 기구한 일생의 첫 시작으로 이야기는 되감긴다. 자신도 모르는 새 씌워졌던 수많은 굴레들에 포위되어 재판장에 서야했던 윤여옥. 그녀는 어느새 공산당 간부 최대치의 아내이자, 민족의 반역자, 빨갱이로 불리며 처단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죽기 직전 그녀가 내뱉은 진심은 단지 간절한 하나의 소망이었다. “그저 함께 있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역사의 격변기, 세 남녀의 가혹한 운명과 사랑으로 그려내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동명의 드라마를 160분의 극으로 압축한 작품으로, 1943년 일제강점기 말부터 한국전쟁 직후까지의 10여년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한다. 독특한 점은 ‘STEP1길’이라는 부제를 더해 런웨이 형태의 무대를 구현하고 객석을 무대 위 양 옆으로 올렸다는 점이다. 나비석으로 칭해진 이 양 옆의 객석에서는 배우들의 동선은 물론 앙상블의 역동적인 군무나 세 남녀의 섬세하고 애절한 연기를 바로 눈앞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작품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이라고 할 만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의 참혹함을 그 시대를 살아냈던 민중들의 안타까운 운명과 사랑으로 그려냈기에 더욱 공감을 얻는다. 윤여옥은 고작 열여섯에 춘향이가 살았던 평화로운 고향 남원에서 위안부로 끌려오게 된다. 윤여옥의 비극이 단지 개인의 비극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무수한 여성들의 고통이 앙상블의 역동적인 군무와 열연이 더해져 완성된 덕분이다. 나비석에서 관람하는 앙상블의 에너지는 대단하다. 거기에 어떻게든 살아남아 만나자는 최대치의 비장함과 여옥과 아기를 지켜내고자 결심하는 장하림의 결단이 더해져 세 남녀는 서로 다른 입장에도 관객이 충분히 공감하게 만든다. 이는 그들이 좇은 것이 결국 사상 따위가 아니라 오직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었음을 이해하게 만든 서사의 방향성 덕분이다.

깊은 메시지와 여운 남긴 주역들의 투혼
김지현-박민성-이경수 배우

올해는 3.1운동이 10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투자금 문제로 공연이 수정되고 지연되는 등 갖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제작진과 배우들의 의지로 3월 1일에 뜻 깊은 첫 공연을 성사해냈다. 그래서일까. 주역부터 앙상블까지 배우들의 연기에서 느껴지는 투혼이 바로 옆에 있는 나비석의 객석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특히, 공연을 앞두고 가장 큰 의지를 다졌을 세 명의 주연 배우들은 그야말로 무대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낸다. 윤여옥 역의 김지현 배우는 가혹한 위안부 생활 속에서도 사랑을 키우고 아기를 지키려는 강인한 여성의 모습을 절절하게 표현했다. 특히 군의관인 장하림이 중절 수술을 하려 하자 목숨을 걸고 맞서는 장면, 마지막 죽기 직전 최대치에게 그저 함께 있는 것이 참 어렵다고 읊조리는 장면은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박민성 배우는 이 작품을 통해 매우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줘 그를 몰랐던 관객에게도 존재감을 제대로 각인시켰다. 그는 최근 연극 ‘벙커 트릴로지’에서도 주역을 맡아 전쟁 상황에서의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바 있다. 그는 남성적이고 의지적인 동시에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면모를 모두 가진 캐릭터로 극의 후반부에서 특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장하림이 여옥의 기다림을 네가 아냐고 묻자, 그는 자신 역시 고통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임을 고백한다. 일본군에게서 탈출해 굶어 죽어갈 때 우연히 공산당이 자신을 도와줬을 뿐이라고. 박민성 배우는 2막 후반부에서 자신이 만든 많은 이별과 많은 죽음을 돌이키며 후회하는 연기를 통해 누구도 원치 않았던 동족상잔의 가슴 아픈 비극을 온몸으로 표현해냈다.

장하림 역의 이경수 배우는 윤여옥과 최대치의 재회를 가슴 아프게 지켜보는 장면에서 특히 인상 깊은 연기를 남겼다. 넘버 ‘행복하길’은 오직 최대치를 기다려온 윤여옥을 긴 세월 동안 지켜온 그의 마음과 함께 그녀가 자신을 떠나더라도 사랑하는 이의 곁에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잘 표현한 곡이다. 윤여옥과 최대치가 역사적 비극에 헤어짐을 강요당한 안타까운 연인들이라면 장하림은 헤어지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며 생의 의지를 회복시키는 수호자와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런 희생적인 사랑은 보상을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이기에 전쟁과도 같은 참혹한 상황에서도 희망과 인간다움을 잊지 않게 해 준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의 객석에는 젊은 층부터 노년층까지 연령대가 다양한 관객들이 섞여 있었다. 세대에서 세대로 역사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시각과 해석이 조금씩 달라지더라도 여전히 변하지 않아야 할 메시지는 존재할 것이다. 1막의 후반에서 작품은 인물의 입을 빌어 그 깊은 메시지를 이렇게 전한다. “난 좌도 우도 아니네. 조선 사람이네. 서로 다른 길을 바라봐도 우린 결국 같은 길을 가는 바다일 뿐. 결국 같은 바다일 뿐.”

사진 제공_쇼온컴퍼니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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