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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덧칠로 완성한 비극의 프로타주, 연극 ‘벙커 트릴로지-맥베스’고전극 ‘맥베스’ 교묘히 삽입한 극중극 방식 택해

군번줄을 목에 걸고 음습한 통로를 꺾어 들어와 좁은 참호 속에 몸을 웅크린 관객들. 저 멀리 들려오는 포성에 서서히 정신이 아득해진다. 전쟁의 잔혹한 민낯을, 그리고 그 피비린내 나는 인간군상의 지옥도를 이 작품은 관객을 바짝 끌어들여 서서히 완성하려 한다. 전작 '카포네 트릴로지', '사이레니아'를 통해 알 수 있듯 이 작품 또한 관객을 끌어들여 놀라운 몰입감을 만들어내는 원작자 특유의 입김이 잘 살아 있다. 흥미로운 것은 부제인 고전극 ‘맥베스’를 교묘히 교차해 진행되는 극중극의 서사가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되어가는 과정이다. 이야기는 덧칠을 거듭한다. 70분의 그 생생한 교차는 현실과 환상, 고전과 현대를 오가며 교집합을 쌓아간다. 마치 덧칠을 거듭해서 종이 뒷면에 존재하는 것들을 서서히 드러나게 하는 프로타주 그림처럼 말이다.

끌려들어간 관객들, 비극의 동시적 체험
- “그저 우리 대신 그들이 죽었을 뿐”

무대는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쟁터 한복판의 참호 속이다. 객석도 그 좁은 참호에 갇혀 배우와 함께 참혹한 전쟁의 현상을 포성과 진동, 천장이 흘리는 모래가루를 통해 생생히 체험한다. 그 극한의 상황에서 군인들과 간호사는 아이러니하게도 비현실적인 가상 세계를 연기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시대를 한참 거슬러 올라가는 고전 ‘맥베스’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가 극중극으로 막이 오르면 현실과 환상, 연기와 실제, 생과 사, 진실과 거짓이 그 경계를 허물며 관객을 압도하는 하나의 이야기를 직조하기 시작한다. 관객들은 이 ‘맥베스’가 단순히 극중극이 아니라 전쟁터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환상임을 인식하면서도 그 교묘한 서사의 겹침이 가져오는 긴장감에 몰입을 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의 현장감과 고전 셰익스피어의 비극이 단절되고 다시 접붙여지고 긴장 속에서, 이미 잘 알려진 ‘맥베스’의 서사는 예측불가능한 현재의 서사에 상상의 동력을 더해준다. 이 때 빛나는 것은 연출이다. 촛불이 켜지고 꺼지면서 현실과 환상의 스위치 역할을 하고, 방독면을 쓰고 주문을 외는 등의 기이한 ‘맥베스’의 세계가 포성이 울리고 부상자가 속출하는 현실의 전쟁터와 교묘하게 접합되면서, 긴장과 이완이 반복된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이중적 모습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두 배역이 교차되는 지점은 치밀한 대본과 연출의 좋은 합일점을 보여준다.

고전 ‘맥베스’로 변주한 욕망과 죄의식
- 살인자와 군인은 어떻게 다른가?

전쟁터의 질서는 일개 생명의 가치보다 승리의 영광을 향해 모든 것이 귀결된다. 작품은 집요하게 질문을 던진다. 전쟁에서 적군을 죽이는 행위는 살인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승리의 업적을 쌓기 위해 수많은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장군은 살인자와 무엇이 다른가. 극 중 “저 위에 있는 사람들”로 묘사되는 장군들은 “여기(전쟁터)에 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병사들의) 희생을 줄이려면 작전이 필요”하지만, 죽을 걱정이 없는 장군은 “희생이 작전”이라고 말한다. 전쟁이 참혹한 것은 단순히 죽음이 도처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전쟁을 지휘하는 자들이 죽음으로부터 멀찍이 앉아서 ‘홍차나 마시’며, 죄 없는 군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부조리한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쟁을 이야기하기 위해 왜 하필 고전 ‘맥베스’를 택했을까. 벙커 트릴로지 시리즈 중 ‘맥베스’는 전쟁의 잔혹함과 더불어 인간의 욕망이 가지는 이중성과 추악함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정의롭고 동지애가 깊었던 마크 중위는 장군으로 진급하면서 타인을 지배하는 권력욕에 사로잡히게 된다. 덩컨 왕의 충신으로 반역을 진압했던 맥베스 역시 같은 손으로 왕을 죽이고 피의 권좌에 앉는 인물이다. 그들은 죄의식과 두려움으로 갈등하지만 끝내 욕망의 광기를 이기지 못하고 양심과 도덕, 대의와 명분마저 잃은 살인마로 전락한다. 마크 장군과 맥베스는 그 욕망이 폭발되는 지점에서 같은 얼굴을 가진 일체감을 보인다. 객석은 둘의 비극적인 말로를 지켜보면서 극한 상황에서 인간 욕망이 가지는 추악함을 돌아본다.

작품의 부제와도 같은 대사 “전쟁에서는 진실이 첫 번째 제물이다”는 뼈아프게 와 닿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리가 정의와 불의, 합리와 부조리로 명확히 규정지었던 모든 것들이 ‘욕망’이라는 변수가 개입되는 순간 얼마나 간단히 왜곡될 수 있는가. 과연 우리는 무엇을 최우선으로 지켜야할까. 극의 마지막, 불의를 처단하기 위한 대안마저 결국은 살인이기에, 질문은 허망하게 되돌아온다. 죽음을 막기 위한 또 다른 죽음은 온당한가. 결국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하는 것에 우리는 합의할 수밖에 없는가. 정의와 진실은 결국 합의에 불과한가. 무대가 끝난 후에도 여운은 깊고, 질문의 꼬리는 길게 이어진다.

치열한 연기 경합의 장, 시적인 대사의 촌철살인
- “지옥은 너무 어두워요”

소극장 연극인데다가 객석을 좁은 참호 안으로 끌어들였기에 배우들은 가깝고, 연기는 그만큼 생생하다. 명배우들의 치열한 연기 경합이 숨결이 닿을 듯한 가까운 곳에서 벌어진다. 마크와 맥베스를 연기한 오종혁은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인물에서 욕망에 사로잡혀 냉혈한 살인마가 되어가는 입체적인 연기를 무리없이 소화해냈다. 후반의 반전을 위해 전반부에 쌓아올린 다른 인물들과의 호흡이나, 투혼을 발휘한 후반부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유일한 여성 캐릭터를 맡은 이진희의 연기도 객석을 사로잡았다. 그녀가 죽어가는 부상병들을 열악한 상황에서 피를 묻혀가며 치료하다가 절망을 느끼는 연기들은 몰입감이 컸다. 특히 그녀의 대사들은 촌철살인의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 많다. “여기 필요한 건 목사나 신부가 아니라 의사예요. 의사를 보내줬어야죠!” 같은 현실 비판이나, “손에서 피 비린내가 나요. 이제 어떤 향수를 써도 이 작은 손 하나 향기롭게 만들 수 없을 거예요”, “지옥은 너무 어두워요”와 같은 전쟁의 참혹함을 읊는 대사들은 관객의 가슴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극의 마지막, 종전을 앞두고 살아남은 병사들은 전혀 기뻐 보이지 않는다. 살아남으면 영웅이 되는 것이라는 장군의 호언장담은 마지막 병사들의 입을 통해 생존에 대한 허망한 진술로 탈바꿈한다. “여러분, 우리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살아있고 싶지 않습니다. 죽은 자들의 희생만큼 우리가 그렇게 가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영웅이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 그저 나대신 그들이 죽었을 뿐.” 죽은 자나 살아남은 자나 모두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없기에 전쟁은 허망하다는 씁쓸한 진실. 이것이 극이기에 얼마나 다행인가. 전쟁이란 그 어떤 명분 앞에서도 그저 비극일 뿐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대개 긴 희생을 지켜본 후에야 깨닫기 때문이다.

현재 연극 ‘벙커 트릴로지’ 시리즈는 공연일 전체가 전석매진 상태다. 이러한 열광적인 관객의 호응에는 이 작품이 전하려는 메시지의 시의성과 그 독특한 전달방식, 연기자들의 투혼에 비결이 있을 것이다. 관객은 기꺼이 군번줄을 목에 걸고 전쟁터의 참호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평화를 가장한 우리의 일상에 늘 숨어 있는 폭력과 전쟁, 그리고 그것을 움직이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잊지 않고 마주하기 위해서다.

사진_뉴스테이지DB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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