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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빛도 어둠도 인간의 선택, 뮤지컬 ‘더 데빌’관념캐릭터들의 크로스 연기와 혼성 캐스팅 눈길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자신이 괴물이 되고, 심연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본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한 말이다. 뮤지컬 ‘더 데빌’은 그 심연에서 괴물과 싸우는 인간의 내면을 무대 위로 형상화했다. 세기말적 분위기의 음향과 록사운드 사이로 라틴어 가사가 읊어지고, 세찬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조명들에 신과 악마의 목소리가 뒤섞인다. 현실 서사나 사건 설명은 생략되거나 사라진 채 무대 위에는 강렬한 이미지와 사운드만이 남아 그야말로 휘몰아친다. 어느새 서사 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될 만큼 몸을 내맡기게 되는 라이브밴드의 폭발적 사운드. 대사 속 “빛도 어둠도 인간의 선택”이듯이, 대중예술로 자리잡은 뮤지컬이 ‘정석’ 또는 ‘파격’을 어느 정도 조율할지 또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더 데빌’은 삼연을 무대에 올린 지금도 여전히 다채로운 변신을 시도하며 ‘파격’이라는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다.

추상적 존재들, 관념 캐릭터들의 비주얼화

‘더 데빌’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블랙 먼데이 사건으로 모든 걸 잃은 주식브로커 존 파우스트의 선택을 둘러싸고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한 파멸을 그린다. ‘더 데빌’의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선’과 ‘악’이라는 추상적 존재를 구체적인 캐릭터로 형상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엑스(X)’라는 미지의 존재를 분할해 엑스-화이트와 엑스-블랙의 캐릭터로 각각 캐릭터화했으며, 같은 배우가 엑스-화이트와 엑스-블랙을 모두 맡아 크로스 연기를 시도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번 삼연에서는 그간 남성 배우들이 맡아온 X캐릭터를 여성인 차지연 배우가 연기하는 혼성 캐스팅을 시도했다. 이렇게 캐릭터를 해체 분할하고 자유롭게 변신하게끔 한 시도는 관객에게 낯선 파격이지만, 그 만큼 상징은 더 명확하게 전달되고 캐릭터들의 매력은 다양해져 작품에 대한 호감을 높였다.

뮤지컬 작품에서 그간 관념캐릭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죽음’을 캐릭터화한 뮤지컬 ‘엘리자벳’이나 내면의 서로 다른 자아를 캐릭터로 만든 뮤지컬 ‘스모크’ 역시 실존하지 않는 존재들을 무대 위에 세운 관념캐릭터로 인상적인 무대를 남겼다. 뮤지컬 ‘더 데빌’도 그 궤를 같이 하지만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이 주인공의 구체적이고 특수한 서사 속에서 주인공의 생애를 전달하기 위해 관념캐릭터를 활용했다면, ‘더 데빌’은 주인공의 특수한 상황이나 생애를 전달하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상징 그 자체로 관념캐릭터를 활용하고, 관념캐릭터가 작품을 지배적으로 이끈다는 점이다. 덕분에 난해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더 데빌’의 관념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은 그 활용 면에서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더 데빌’의 중독적 넘버와 독특한 연출, 록스피릿으로 충만

‘더 데빌’을 두 단어로 설명하자면 ‘조명’과 ‘음악’이 아닐까. 무대 전환 없이 오로지 조명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는 화려한 무대연출과 라이브밴드를 무대 위로 올려 극장 안을 록스피릿으로 가득 채우는 사운드는 확실하게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폭발적인 록음악의 멜로디가 현재형으로 객석의 감성을 자극한다면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곡의 가사들은 배우들의 연기와 어우러져 막이 내린 후에도 인상적인 여운을 남긴다. 특히 인상적인 넘버로는 1막에서 극장을 록콘서트 현장으로 만들어버리는 ‘Guardian angel’과 ‘X’, 공연 전체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며 독특한 가사로 여운을 남기는 ‘너는 나의 신전 너는 나의 사과나무’, 그레첸의 극한 연기와 함께 2막 후반의 정점을 찍는 ‘Mad gretchen’ 등을 들 수 있다.

각 캐릭터를 특색 있게 소화한 배우들의 열연도 눈에 띈다. 임병근의 엑스-블랙과 김다현의 엑스-화이트가 가진 서로 다른 음색과 분위기는 좋은 대비를 이루며 주제의 상징적 의미를 잘 전달했다. 록음악에 최적화된 것처럼 강렬한 넘버들을 소화해내는 임병근은 풍부하고 깊은 음색으로 어두운 분위기로 무대를 지배하는가하면, 김다현은 저음과 고음을 오가는 강하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선한 신적 존재의 신성한 분위기로 무대를 바꾸어놓았다. 여기에 두 엑스와 그레첸, 앙상블의 안무와 올블랙과 올화이트의 의상이 어우러져 시각적으로도 알기 쉬운 대립구도와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중간에 등장하는 사과나 악마의 가면과 같은 오브제들도 눈에 띈다.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을 기독교적인 상징과 은유로 시각화해 객석에게 다양하게 해석될 질문을 던진다.

선과 악, 정석과 파격의 타협점 어디일까

주인공 존 파우스트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성공가도를 달리지만 정신적으로 타락하며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향해간다. 그는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였던 그레첸을 잃게 되면서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기게 되지만 결국 성스러운 신의 가호는 그를 버리지 않는다. 선과 악은 결국 하나이기에 절망 속에서도 구원의 희망은 존재한다. 작품은 선과 악이 합일하는 보편적인 결말로 나아간다. 하지만 서사가 선악의 타협점을 찾은 것과 달리 삼연을 맞은 ‘더 데빌’은 정석과 파격 사이의 적절한 타협점을 아직 찾으며 헤매는 중인 듯하다. 처음부터 차라리 주식브로커나 블랙먼데이와 같은 현실적인 설정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중간 중간 뉴스보도로 곁들여진 해설이 관념캐릭터와 상징적인 주제에의 몰입을 도리어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존 파우스트는 성공이라는 욕망과 악의 유혹 속에 흔들리는 보편적인 인간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존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그레첸 역시 존이 타락할수록 고통에 몸부림친다는 점에서 존의 내면의 양심이나 영혼을 상징하는 관념캐릭터로 볼 수 있다. X자의 계단과 천정과 뒷배경의 거울장치 또한 현실적인 세계가 아닌 인간의 심연을 형상화한 상징적 세계로 보인다. 그렇다면 주식브로커나 블랙먼데이 같은 설정마저 지우고 서사와 설명이 전무한 상징적 작품으로 완성하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애초에 ‘정석’을 택하지 않았다면 타협이 아닌 ‘파격’ 일변도가 오히려 작품이 결국 관객을 설득시키는 결말을 가능하게 할  지도 모른다. 그간 ‘더 데빌’만의 매력을 충분히 객석에게 알린 만큼 이제는 그 개성과 정체성을 더 확고히 할 때가 되었다.

‘더 데빌’은 서사의 감동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괴작’일 수 있으나, 독특한 분위기 연출과 사운드로 록콘서트를 방불케하는 쇼뮤지컬의 만족감을 충분히 충족한다. 6명의 앙상블과 4인의 캐릭터가 무대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화려한 조명과 어우러져 충분한 볼거리를 안겨주고,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배우들의 섬세한 내면 연기는 특별한 사건 없이도 몰입을 이끌어낸다. 선과 악, 악마의 유혹와 신의 구원은 영원히 변주될 인간에게 가장 익숙하고도 보편적인 주제다. 빛과 어둠이 결국 인간의 선택이듯이, 이 보편적인 서사를 독특하게 형상화해낸 이 작품을 ‘괴작’과 ‘명작’ 사이에서 평가하는 것도 결국 관객의 몫일 것이다.  

사진제공_페이지1_알앤디웍스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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