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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마틸다’, 그로테스크한 모험이 가득한 롤러코스터도알드 달 원작, 비영어권 최초의 ‘마틸다’ 국내 초연

할로윈에 아이들을 잔뜩 태우고 달리는 좌충우돌 롤러코스터 같다. 테마는 그로테스크한 모험이 가득한 ‘학교’라는 이름의 성이다. 성을 쌓고 담을 높인 것은 어른들일지 몰라도 성의 주인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이다. 뮤지컬 ‘마틸다’ 속 아이들은 군림하는 어른들 앞에 휘둘리고 복종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재치와 상상력, 위트와 용기로 상황을 늘 역전시킨다. 아역 배우를 전면에 내세우고 동화적인 연출력으로 상상을 현실로 뒤바꾸며 질주하는 이 쾌속 열차 같은 작품, ‘마틸다’가 한국에 상륙했다.

‘어른’의 눈에 비친 ‘아이다움’에 대한 신랄한 통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야”

이제 막 학교에 입학한 다섯 살 마틸다의 입버릇 같은 말은 “옳지 않아”다. 마틸다의 부모는 그녀에게 ‘아이답지 못 하’고, 말 안 듣고 골치 아픈 ‘독서충’에 ‘불량품’이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학교에서는 자신과 같은 아이들을 ‘버러지’라며 혐오하는 트런치불 교장에게 강압적인 명령을 받으며 부당한 대우를 참아내야 한다. 하지만 마틸다는 어느 순간에도 참지 않는다. 부모에게는 발모제와 염색약을 바꿔놓는 것 같은 귀여운 복수를 하고,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서 무서운 트런치불 교장 앞에서도 당당히 목소리를 높인다.

작품은 아이들을 무조건 왕자님 공주님처럼 보호하며 응석받이로 만드는 어른들도, 자신만의 질서로 억압하고 틀에 가두려는 어른들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작품에서 강조하는 것은 아이들의 자발적인 힘이자, 자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용기와 도전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뜻대로 움직이는 나약한 인형이 아이라는 것을 아주 작은 꼬마까지도 통통 튀는 움직임과 날카로운 노래가사로 선보여 객석의 어른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한다.

주인공 마틸다가 책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데 놀라운 재능이 있다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이야기는 또 다른 세계를 자유롭게 창조하고, 이야기를 쓰고 읽는 사람들을 모두 주인공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마틸다는 자신이 탈출하고 싶은 괴로운 현실과 맞서 싸우기 위해 가장 아이다운 무기로 ‘이야기’를 집어든 것이다. 마틸다는 이야기 속에서 공중곡예사와 탈출마법사의 안타까운 사랑을 그려내는 창조주가 되고, 괴로울 때마다 이야기를 지어내며 현실에서 굴복하지 않는 힘을 얻는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동안만큼은 부모나 선생님이 요구하는 자신이 아닌 진정한 자신을 느낄 수 있고, ‘내 삶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을 실감하는 것이다.

동화적 상상력을 현실화 한 독특한 무대와 안무 연출
-마틸다 외 아역 배우들, 그 빛나는 앙상블

 
알파벳과 책으로 꾸며진 무대는 동화적인 연출과 함께 객석을 무대로 한껏 끌어들인다. 알파벳을 A~Z까지 활용해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학교에서 겪는 아이들의 경험담을 유쾌발랄하게 노래한 ‘스쿨송’은 작품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대표 넘버다. 여기에 트런치불 교장의 호통과 함께 객석까지 가둬버리는 레이저 감옥 장면이나, 그네를 탄 아이들이 객석의 머리 위로 날아오르는 ‘When I Grow Up’은 객석을 극 속에 참여시키며 환호하게 만드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십분 드러낸다.

이번 공연은 비영어권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로 공연되는 ‘마틸다’라는 점에서 원작이 가지는 풍자적이고 위트 넘치는 대사와 노랫말들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가 중요한 지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한국 초연은 상당히 성공적이라 할 만하다. 거침없이 내뱉는 트런치불 교장의 독설이나,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를 표현하는 찰진 대사들이 객석에 적지 않는 웃음을 안겨줬다. 어린 배우들이 능청스럽게 내뱉는 대사나 성인 배우 못지않은 칼군무 또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특히, 마틸다 역의 설가은은 아이답지 않은 조숙함과 당돌함,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내면의 상처까지도 충분히 표현하는 기량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그 어떤 가족뮤지컬의 아역에서도 볼 수 없던 많은 대사량과 복잡한 동선을 깔끔하게 소화했고, 단독으로 부르는 넘버에서조차 실수 없이 객석을 몰입시키는 힘이 있었다. 여기에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많은 아역 배우들과 이를 든든하게 받치며 빈틈을 메꿔준 스윙 배우들(선배 역)의 조합이 더해져 작품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공연 도중 객석 옆자리에 앉았던 한 아이가 트런치불을 보고 몇 번이나 정말 남자냐고 엄마에게 묻는 것을 들었다. 남자 배우가 맞다는 엄마의 말에 아무래도 덩치가 큰 여자인 것 같다며 끝까지 반신반의하는 것에 내심 흐뭇한 기분이 되었다. 악역은 악역다울 때 박수를 받는 법. 아이들의 잔혹한 공공의 적, 트런치불 교장이야말로 이 작품에 긴장을 불어넣고 결말에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빛나는 존재라 할 만하다. 여타의 작품에서 보기 힘든 독보적인 캐릭터 트런치불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김우형 배우에게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진 출처_신시컴퍼니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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