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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작가 나광호의 ‘시각 촉각 展’, 순수의 주제를 깊이 있는 생각으로 그려내다

 

갤러리를 한 바퀴 돌아본 뒤 작가 나광호를 바라보면 웃음이 난다. 캔버스 위에서 흘끔 눈을 흘기는 장난기 어린 얼굴이 실물이 되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의 주제는 시각, 촉각이에요. 시각적인 작업만 주로 해왔는데 멀리 떨어져있던 새로운 주제를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시각의 예술인 그림에 시각 외의 것을 더하려고 하는 발상이 독특하다. 어떻게 생각해낸 주제일까. “신사동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어요. 도저히 길을 못 찾겠는데 아까 걷다 들은 음악소리가 들려오더라고요. 그 소리를 따라서 오른쪽으로 돌았죠. 길 찾는 것도 시각적인 작업인데 청각을 통해 찾는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사실 오감이 상호적으로 작용하는 건 당연한 건데 그때서야 깨달은 거죠.” 이렇게 이 젊은 작가는 일상에서의 소소한 경험을 그대로 작품의 모티브로 승화시켰다.

미술에 다른 감각을 적용해보고 싶었던 그의 바람은 캔버스 위에 올려진 촉각으로 표현된다. 매끄럽고 거친 표면의 조화가 갤러리를 리듬감 있게 채우고 있다. “언젠가 에스컬레이터에 사람이 많아서 계단으로 휘적휘적 걸어갔어요. 고개를 들어보니까 그런 사람이 저랑 어떤 해병대 군인 단 둘이던데요. (웃음)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은 더 빠르게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의 말에서 새로운 도전에 대한 자신감과 즐거움이 가득 묻어난다.


그가 시각 외의 감각을 화폭에 그려 넣은 것은 새로운 시도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볼 수 있는 사람과 볼 수 없는 사람의 간격을 줄이는 것이다. 화가라는 직업으로 생각해내기 쉬운 것은 아니다. 분명 그는 남과는 다른 생각을 한다. “평소에도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만큼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도 그만한 노동을 해야 해요. 많이 고민하고 감상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거죠. 저는 생활에서 생각하고 체험한 것을 작업해서 작품과 제 삶을 일치시키고 싶어요.”

그는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활동 강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작품의 소재를 얻었다. 작가와 닮아서 눈길을 끌었던 작품을 가리키자 작업과정을 소개해준다. “몇 개의 낙서 같은 그림은 아이들이 방과 후 활동으로 그린 거에요. 참 창의적이죠. 이 날 수업 주제는 선생님 그리기였어요. 눈에 힘을 주고 앉아있었는데 이렇게 보였나 봐요. 드로잉 한 것을 편집하고 출력해서 먹지를 대고 따라 그렸어요.” 그의 실크스크린 작품에는 외국의 어린아이들을 참여시킨 것도 있다. 아이들이 그린 안경, 비행기, 나무, 해 등은 작가의 손에서 입체적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저기 숨어있는 낙서를 찾는 게 유쾌하다.

“가치 없는 것, 무의미한 것을 주제로 삼고 싶었어요. 그림은 아무래도 아이들보다 제가 더 잘 그리겠죠. (웃음) 그렇지만 학습되지 않은 순수한 시선, 어린 아이들의 눈에 비춰진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어른이 마냥 낫지만은 않잖아요. 어렸을 때는 이해 못하던 잘못을 지금은 인정하거나 묵인하는 것처럼 무뎌진 부분도 많고요. 아, 그리고 아이들의 그림으로 미술의 권위를 낮춰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어린 아이 그림이 이렇게 갤러리에 전시가 되잖아요.” 가치 없는 것을 끌어올리고 싶다는 그의 주제의식은 드로잉과 판화로 이루어진 그림의 형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판화는 여러 장을 찍기 때문에 가격이 분산된다. 게다가 그 작업은 소위 말하는 종이쪼가리 위에서 이루어진다. 낙서라는 것 역시 낮게 평가 받는 것이다. 그는 이런 하부적으로 취급되는 것들을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이런 그의 작업은 관객들과의 소통에도 한 몫을 한다. “미술의 3요소처럼 그림을 그릴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게 많지만 저는 거기에 관객을 포함시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가벼운 이야기들과 낮게 평가된 것들을 이용해서 진지한 성찰이 담긴 주제를 전달하고 싶어요. 단색조회화는 우리의 정서에는 맞지만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었죠. 그렇지만 이우환 선생님께서는 가벼움을 통해서 무거움을 전달하셨어요. 저도 그런 작업을 하고 싶어요. 제가 끌어온 낙서도 단색선으로 되어있죠.” 검은 줄이 표현하는 가벼운 이미지는 그림 앞에 쉽게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다.

실생활을 작업위로 올린다는 그의 정신은 작품에 진정성을 가져온다. 작품 중에는 캔버스 가득 손이 그려진 그림이 있다. 언뜻 보면 약속이라도 하자는 듯한 그 그림은 캔버스 위에 직접 아이들이 그렸다. “아버지께서 생산직을 하시다 손가락이 다치셨어요. 화가를 하려고 하시던 분인데 말이죠. 그 때 꿈을 갖게 됐어요. 아버지의 삽화를 보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제가 아버지의 손가락을 연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했죠.”

그는 다양한 시도를 하는 바쁜 작가이다. 그는 이번 전시 외에도 2009 인천국제공항 모빌아트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수상작품은 인천국제공항에 걸려있다. 해외로 출국하는 이들이 작품을 보며 미술의 시각 외 가능성을 느낄 수 있다. “제가 목표한 좌표가 잘못된 것인가 생각해보면 엉뚱하기도 하고 고집스러운 작업이긴 하지만 끊임없는 전시기회가 생기는 것을 보면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성큼성큼 걸어가는 보폭이 느껴진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냐는 물음에 그가 “미술사에서 기억에 남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며 웃는다. 그의 열정 넘치는 웃음은 이미 작품 위에 올라 갤러리를 찾는 관객들의 기억에 남고 있다. ‘시각 촉각 展’은 7월 1일부터 8월 7일까지 영등포구 갤러리 AG에서 열린다. (문의 이현주 큐레이터 02-3289-4234)


백수향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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