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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탄광촌에서 기적을 꿈꾸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매혹적인 연출, 춤으로 빚어낸 명장면들

기적은 늘 가장 어두운 곳에서 싹 트는 법. 파업으로 매일같이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 않는 암울한 탄광촌에서 평범하게 복싱을 배우던 소년 빌리는 우연히 발레와 만나 발레리노의 꿈을 품게 된다. 튜튜를 입은 발레 소녀들 틈에서 미운오리새끼처럼 어색하던 빌리가 얼마 후 한 마리 백조가 되어 우아하게 날아오르는 순간, 객석에서는 탄성이 쏟아진다. 영국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이라 할 만한 폐쇄 직전의 탄광촌에서 가장 높은 곳을 향해 도약한 한 소년의 도전기. 그리고 이 소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랑과 희생을 아끼지 않은 어른들의 이야기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이 있다.

탄광촌 노동자들, 할머니, 성 소수자 소년까지
- 소외된 ‘우리’들의, 빛나는 ‘꿈’ 이야기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서사는 빌리의 성장 스토리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의 숨겨진 사연들이 함께 다채로운 서사를 빚어낸다. 빌리의 아버지와 형은 탄광촌에서 생업을 지키기 위해 파업 투쟁에 나서며 정부주도의 정책에서 소외되고 억압당했던 노동자 계급의 고뇌와 분노를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이 와중에는 욕설과 다툼, 배신과 갈등도 거칠게 연출된다. 중산층 계급인 윌킨슨 부인이 ‘시궁창’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탄광촌에서 그들은 여전히 다시 탄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탄광촌의 투쟁이 그 당시 영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그린다면, 빌리의 할머니의 ‘Grandma’s song’이나 빌리의 친구 마이클이 부르는 ‘Expressing yourself’는 결이 다른 또 다른 개인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빌리의 할머니는 “시간을 다시 돌린다면 그냥 혼자 살아 보고 싶어”라며 “그 누구의 여자가 아닌 인생, 나 혼자 남자 없이 사는 인생”이라는 못 다 이룬 꿈을 노래하며 춤춘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삶이지만 할머니의 소망은 엄마와 아내의 이름으로 자신을 희생하며 살았던 수많은 여성들의 꿈을 대변하는 것이기에 객석의 가슴을 울린다. 여장을 즐겨하는 유쾌한 소년 마이클은 ‘Expressing yourself’을 통해 “치마를 입으면 뭐가 큰일나나?”라고 묻고 “문제없어, 너를 표현해 봐”라고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가장 보수적이라 할 만한 시골 탄광촌에서 색색깔의 드레스와 함께 춤을 추는 소년들은 가장 순수한 형태로 사회적 편견에 저항의 몸짓을 선사한다.

‘빌리 엘리어트’의 특별함, 춤으로 빚어낸 명장면들
- 피터 달링의 안무 돋보인 ‘Solidarity’, 빌리의 ‘Angry dance’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춤이다. 발레, 아크로바틱, 탭댄스, 포크 댄싱 등 다양한 장르의 안무들이 각 장면의 서사와 어우러져 때로는 동화적이고 때로는 쇼뮤지컬적인 화려함을 뽐낸다. 토니 어워즈를 수상한 바 있는 피터 달링의 안무는 단순한 춤이 아닌 정교한 연출에 기반한 독특한 장면의 결합을 시도한다. 특히, 핵심 넘버 중 하나인 ‘Solidarity’는 파업 투쟁이라는 격렬하고 긴장의 수위가 높은 남성들의 군무에 교실에서 발레를 배우는 발레 소녀들의 안무를 교묘하게 결합해 눈길을 끈다. 이 날카롭고도 위트가 살아 있는 역동적인 안무를 통해 한 공간(탄광촌)에서 이뤄지고 있는 대조적인 두 현실(노동자 투쟁-아이들의 꿈)이 교묘히 섞여들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빌리 엘리어트’의 안무는 때로는 개성적인 연출로 눈길을 사로잡는가 하면, 때로는 분명한 메시지의 전달로 대사보다 탁월한 표현력을 보여준다. 주인공 빌리는 실제로 어린 배우가 연기하기 때문에 대사나 노래만으로는 내면을 전달하고 서사를 매끄럽게 이끌어가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작품은 이런 한계를 뚜렷한 몇 개의 넘버와 안무로 해결하는데 그 대표적인 넘버가 1막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Angry dance’와 2막에서 춤에 대한 열정을 표현한 ‘Electricity’라 할 수 있다.

이날 빌리를 맡은 김현준은 특히 ‘Angry dance’에서 강렬한 리듬에 몸을 싣고 다양한 동작을 화려하게 선보이며 객석을 사로잡았다.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꿈을 포기해야 하는 울분과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도 멈출 수 없는 춤에 대한 열정이 모조리 이 한곡으로 표현된다. 또한,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오디션 현장에서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냐는 물음에 대한 답을 ‘Electricity’라는 넘버로 표현한 대목도 인상적인 장면이다. 춤을 출 때 “불꽃 튀듯이 전기가 흐른다”는 소년은 평소의 무뚝뚝하고 평범했던 모습에서 갑자기 영혼이 사로잡힌 듯 자유롭게 춤으로 화답한다. 아역 배우로서 어쩔 수 없이 어색했던 일부 대사나 연기도 이런 빛나는 장면으로 기꺼이 용서될 만 했다.

전 연령 모든 가족이 함께 즐길 만한 공연이 몇이나 될까.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아역 배우를 주역으로 내세우지만 그 서사나 연출이 결코 가볍고 단순하지 않아 남녀노소 모두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아름답고도 역동적인 안무와 매혹적인 연출, 강렬한 캐릭터들의 위트 넘치는 대사까지 더해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무대는 하나의 축제라 할 만하다. 어두운 현실의 갈피마다 환상적인 동화적 세계를 끼워 넣어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서사를 다루면서 무수한 땀을 흘린 어린 배우들의 진정성으로 감동과 유쾌함을 더했다. 이 무대를 위해 무수히 하늘을 날았을 5명의 소년 빌리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사진출처_신시컴퍼니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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