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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렇게 매력적인 악인이 또 있을까, 연극 ‘리차드3세’10년 만에 연극무대 선 황정민, 100분간의 뜨거운 질주

욕망을 향한 질주에 동정이나 연민은 장애일 뿐. 차라리 “악을 택하고 선을 그리워하는 것이 낫다”고 주저 없이 말하는 리차드의 매혹적인 손길. 이를 뿌리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살고자하는 이도, 황금이 탐나는 이도, 그리고 객석의 관객들조차도. 이 뻔뻔할 만치 대담하고 무자비한, 동시에 뒤틀린 신체 때문에 누구에게도 사랑받아 본 적 없는 고독한 악인의 질주에 객석은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어 휩쓸린다. 역사상 이렇게 매력적인 악인이 또 있을까. 10년 만에 연극무대에 복귀한 황정민은 무대의 구석구석을 뒤틀린 신체로 유유히 활보하며 관객을 쥐락펴락한다. 때로는 광대처럼, 때로는 독재자처럼 능청스럽고도 노련하게 100분을 빈틈없이 채우는 배우의 힘. 연극 ‘리차드3세’는 배우 황정민이 누구인가를 스스로 다시 한 번 입증하는 뜨거운 질주였다.

휘몰아치는 대사, 셰익스피어다운 ‘언어유희’의 향연

뮤지컬에 비해 화려한 무대전환이나 드라마틱한 음악에 기댈 수 없는 연극 무대에서 배우가 호흡과 발성, 강약의 완급으로 만들어내는 대사의 향연은 연극만의 커다란 묘미다. 게다가 셰익스피어의 고전과 같이 문어체의 시적인 대사라면 더더욱 배우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특히 ‘리차드3세’에서 극의 해설자이자 주인공인 리차드는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 거의 없는 만큼 막대한 대사량을 자랑한다. 황정민 배우는 시니컬한 풍자적 어조와 특유의 리듬감을 살려 악인의 음흉한 뉘앙스를 객석에 내리꽂듯이 전달했다. 빠른 속도는 물론이고 정확한 딕션과 자연스러운 제스쳐까지 완벽해서 동료들도 혀를 내둘렀다는 그간의 연습량을 짐작케 했다.

여러 번 반복 변주되며 관객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명대사도 눈에 띈다. 작품의 서두에서 “이제 불만의 겨울은 가고 태양으로 빛나는 여름이 왔구나”라는 대사는 결미에서 “잡히지 않는 무엇을 찾아 헤매었으나 축제는 사라지고 불만의 겨울은 다시 왔다”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비극적이나 순리대로 최후를 맞은 악인의 마지막에 어울리는 처음과 끝이다. “피로 얻은 것은 피로 잃을 것이다”라고 섬뜩한 목소리로 외치는 마가렛 왕비의 대사 또한 이 작품이 남기는 단순명징한 교훈이다. 반전은 없으나 철저하게 짜여진 각본대로 왕관을 머리에 쓴 악인이 내부인의 배신으로 순식간에 몰락하며 응징을 당하는 결말은 단순한 만큼 보는 이의 공감을 얻는다.

소외된 자의 울분, 누가 그를 악마로 만들었나

주인공 리차드가 신체적으로 완전하지 않은 뒤틀린 몸을 가졌다는 것은 악인의 탐욕에 충분히 수긍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리차드는 영국의 시민전쟁 후 왕위에 오른 자신의 형과 그에게 빌붙어 권력을 누리는 귀족들을 향해 나라와 가문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서 무수한 피를 흘린 것은 자신이라며 울분을 토한다. 에드워드4세가 병환으로 왕좌가 위협당하는 상황에서도 둘째인 조지는 왕위를 노리는 것으로 의심받지만 셋째이자 곱추인 리차드는 같은 왕권계승자의 한 명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또한 리차드의 동선이 늘 누군가의 배경에서 그림자처럼 등장했다가 그 누구도 그의 진심을 알지 못한 채 객석–유일하게 진심을 털어놓는-과의 방백으로 끝맺는다는 것도 관심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그의 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리차드의 울분은 객석과의 연대감과 함께 상승하다가 폭발한다. 관객은 차례로 죽임을 당하는 수많은 희생자의 얼굴을 정면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생생하게 목격하면서도 리차드를 진심으로 증오할 수 없다. 그리고 미워할 수 없는 악인의 독설이 선인이 하는 그럴듯한 설교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소외된 자의 울분에 진정성을 느끼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고전이 현대에 던지는 질문
- 현대사회 ‘소외’와 ‘차별’, 부정직한 승리자들

리차드는 자신의 비틀린 몸을 일부러 상대의 눈을 속이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왕관을 위해서, 자신이 빼앗긴 ‘욕망할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 그는 더욱더 잔혹해진다. 철저히 소외됐던 주인공이 사실은 모든 것을 치밀하게 계획한 배후이자, 자신의 계획을 하나하나 성공시켜 최종적으로 그토록 원했던 최고 권좌에 오른다는 결말은 보는 이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마저 안겨준다. 결국 악랄한 살육의 단죄를 치르게 되는 리차드. 악인의 최후답게 그는 뉘우치는 대신 “나의 죄를 묻는 그대들의 죄를 묻겠다”고 말한다. 그 말은 객석에도 의미 있는 물음으로 돌아온다. 무자비한 탐욕 자체를 탓하기 이전에 우리는, 인간 누구나에게 있어야 할 꿈꿀 권리를 누군가에게서 빼앗고  당연한 듯 멸시하며 대신 누려오지 않았는가 하고.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무대화한 ‘리차드3세’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황정민 배우는 연기 도중 객석을 향해 “날 그렇게 보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그 말에 객석은 웃으면서도 리차드를 비웃을 수 없는 스스로를 깨닫는다. 그 말은 마치 “날 그렇게 보는 너희들은 죄가 없느냐”고 묻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는 여전히 부정직한 승리자들이 넘쳐난다. 부정, 탈세, 비리 의혹들이 늘 권력자를 따라다닌다. 리차드는 자신을 강하게 거부하며 침을 뱉는 앤에게 이렇게 말한다. “선과 함께 해서 남은 것이 무엇이오?” 언뜻 뻔뻔해보이는 그의 질문에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돌려줄 답이 있을까. 많은 대사들 중에서도 그 대사가 마지막 가슴을 울린 것은 ‘선과 함께 해서 남는 것이 있는’ 사회이기를, 그래서 그의 죄를 ‘떳떳이 물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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