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0년 일본. 두 남자가 책상을 사이에 두고 기 싸움을 벌인다. 그러나 칼자루는 권력의 끝자락에 선 이가 쥐고 있다. 극단 ‘웃음의 대학’ 소속 작가인 남자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한 희극을 어떻게든 무대에 올리려 하고, 전시인 비상시국에서 희극 따윈 불필요하다 생각하는 검열관은 공연을 막기 위해 작가에게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한다. 공연을 포기하거나 대본을 고치거나.

대본 수정을 선택하는 작가. 검열관은 남자 주인공을 로미오에서 햄릿으로 바꾸라, ‘천황 폐하 만세’라는 대사를 넣으라는 등 억지스런 요구를 해대며 번번이 대본을 퇴짜 놓고, 작가는 그 때마다 검열관의 지시대로 대본을 고쳐나간다. 공손한 자세로 타코야끼나 십자매를 사들고 검열관을 방문하는 작가를 보고 있자면 참 저 사람은 자존심도 없구나 싶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검열관의 의도와는 다르게 대본은 갈수록 재미있어지고, 본의 아니게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검열관은 점점 극에 애착을 갖게 된다. 급기야는 직접 시연까지 해가며 연극에 몰입하는 검열관. 7일 간의 수정 작업이 끝나고 검열관은 묻는다. 왜 말도 안 되는 나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였나?

작가는 답한다. 그것이 慕� 희극 작가인 자신이 싸우는 법이라고. 작가로서 소신이 없네, 권력에 아부하는 쓰레기네 하며 비아냥거려도 어떻게든 극을 무대에 올려 관객을 웃기는 것. 그것이 희극 작가인 남자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작가는 대본을 완성하지만 징집명령을 받아 전쟁터에 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연극 공연은 불가능한 꿈이 되어버린 것. 그러나 작가와 작업을 통해 웃음의 맛을 알아버린 검열관은 어떻게든 살아만 돌아오라며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대본을 간직하겠노라 다짐한다.

10월 2일 막이 오른 앙코르 ‘웃음의 대학’은 대학로 연극열전2의 일환으로 2008년 11월 초연되어 객석점유율 100%를 기록했던 흥행작이다. 우리에겐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널드’로 알려진 일본 극작가 미타니 코우키의 대표작으로 일본뿐 아니라 러시아, 캐나다, 영국에서도 번안돼 무대에 올려졌다. 2004년에는 영화화되기도 한 ‘웃음의 대학’은 예기치 못한 극 전개 속에 따듯한 유머와 인간애를 녹여내는 코우키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작품성과 흥행성은 이미 검증받았으니 관심의 초점은 새로운 캐스팅일 터.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안석환은 특유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숨은 끼를 발견하며 작가에게 동화되어가는 검열관을 설득력 있게 그렸다. 첫 연극 무대에 도전한 영화배우 봉태규는 아방해 보이지만 신념을 잃지 않는 작가 역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며 초연 때 같은 역을 연기했던 황정민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웃음의 대학’은 ‘웃음’이라는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희곡 작가의 투쟁기이다. 동시에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던 검열관이 웃음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대조적인 상황에 처한 두 남자가 우정을 쌓아가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어떤 시각에서 보든 그 중심에는 ‘웃음’이 있다. 쉴 새 없이 웃다보면 우리네 인생에서 웃음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웃음이 없는 삶이란 얼마나 팍팍할 것인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나라 안팎으로 웃을 일 없는 요즘, ‘웃음의 대학’에서 잠시나마 진정한 웃음을 배워보는 건 어떨까.
(10월2일부터 2010년1월31일까지.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1관. 송영창, 안석환, 조희봉, 봉태규 출연.)

조수현 lovestag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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