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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인간군상이 빚어낸 애틋한 비극의 파도, 뮤지컬 ‘타이타닉’압도적인 오프닝, 주역 없는 멀티-롤들의 변신과 활약

대형 재난이 사람들의 가슴에 각인되는 순간은 ‘재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재난이 앗아간 사람들의 꿈과 미래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지켜보는 이들은 더 이상 사상자나 부상자의 수치로 슬픔을 환산될 수 없게 된다. 뮤지컬 ‘타이타닉’은 단순히 대형선박의 난파 사고라는 재난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에 귀 기울임으로써 비극적 결말보다 다양한 인간군상의 꿈과 희망에 공감하게 한다. 특별히 두드러지는 주역이 없이 배에 승선한 모든 이의 사연들로 완성시킨 뮤지컬 ‘타이타닉’은 한 방을 노린 해일이 아닌 수많은 결들의 애틋한 파도들로 감동의 격랑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압도적인 오프닝, 다양한 인간군상의 벅찬 꿈과 희망

뮤지컬 ‘타이타닉’의 백미는 수많은 인물들이 각자의 사연으로 배에 오르는 오프닝 장면의 ‘Godspeed Titanic’이다. 지구 위에서 움직이는 가장 거대한 배라는 자부심에 넘치는 설계자와 선주, 은퇴를 앞둔 선장과 전설의 배의 첫 출항을 함께 하게 된 선원들의 기쁨과 기대감은 무대를 한껏 고무시킨다. 여기에 역사적인 순간을 즐기려는 세계적인 부호들과 기회의 땅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자들이나 새로운 삶을 꿈꾸는 연인들까지 등장해 미래를 향한 축배를 든다. 그들이 자신의 사연을 소개하며 탑승을 마치고 전체 인원이 입을 모아 부르는 오프닝 넘버는 관객의 가슴까지 벅차게 할 만큼 압도적이다.

작품의 백미가 오프닝에서 등장한다는 것은 연출의 탁월한 노림수로 보인다. 타이타닉호의 비극적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은 희망의 제창이라는 벅찬 여운을 비극의 신호가 강해질수록 슬픔의 여운으로 치환하게 된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관객은 그들의 사랑과 꿈이 특별할 것 없는 것이어도 하나같이 애틋하고 안타깝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후반부 타이타닉 호가 빙산과 충돌하는 순간에 이르면, 관객은 이미 애정과 공감대가 형성된 인물들에게 밀려오는 거대한 비극에 속수무책으로 몸을 떨며 슬픔에 몰입하게 된다.

죽음의 목전에서 드러나는 계급질서의 폭력성

희망과 꿈의 이면에 있는 작품의 핵심 주제는 바로 1등석, 2등석, 3등석으로 구분되는 계급질서에 대한 문제 제기다. 흥미롭게도 배우들은 최대 5개까지의 역할을 모습을 바꿔가며 연기하는데, 이 때 계급이 달라질 때마다 전혀 다른 캐릭터로 분하는 배우들의 연기 변신을 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계급간의 갈등은 두드러지지 않지만 상류층의 삶을 동경하는 2등실 승객 ‘앨리스 빈’이나, 상류층 출신이었으나 평범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2등실 승객이 되어버린 ‘캐롤라인 네빌’을 통해 당시 견고했던 계급간의 장벽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결정적으로 계급질서가 그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은 타이타닉이 충돌사고를 겪고 나서부터다. 선장은 충분하지 않은 구명보트에 1등실 승객 위주로 선택적인 구조 활동을 하려고 시도하고, 급기야 3등실 승객은 다른 계층 승객과 분리되게끔 설계된 벽 때문에 탈출조차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마치 ‘배 바닥에 숨어든 쥐’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고 한탄하는 3등실 승객들. 결국 3등실 승객들은 죽음 앞에 동등하지 못했고, 살아남은 자들 또한 가라앉는 타이타닉에서 비명을 지르는 승객들을 지켜보며 침묵하는 것을 택했다. 이 때 인상적인 것은 침몰하는 배 속에서 둥둥 떠오르기 시작한 승객들의 차가운 주검의 연출과 살아남은 자들의 표정 연기다. 마치 푸른 바다 속에 잠겨 희미하게 허우적대는 듯한 승객들의 마지막 모습은 객석 또한 숨죽이게 하는 숙연한 슬픔을 안겨주었다.

죽음의 두려움에 의연히 맞서는 아름다움

비극적인 결말을 이미 알고 보는 관극이기에 더욱 빛나는 장면이 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제 할일을 끝까지 하는 지배인과 벨보이, 두려움에 지지 않고 함께 운명처럼 죽음을 맞이하는 노부부의 마지막 모습이 그것이다. 14살의 벨보이 에드워드는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는 물음에 스스로를 “두렵지만 할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답하고, 지배인은 노부부에게 값비싼 고급 와인을 따라 주며 끝까지 승객을 돌본다. 죽음 앞에 선 그들의 우아하고도 의연한 모습은 자신의 목숨을 위해 구조선에 허겁지겁 몸을 실은 1등실 승객들과 대조를 이루며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가치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특히, 노부부 이시도르 스트라우스와 아이다 스트라우스가 함께 부르는 넘버 ‘Still’은 비극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가슴을 울린다. 재난도 갈라놓지 못한 노부부의 사랑은 죽음조차 삶의 연장선이며, 함께하는 운명이라면 그조차도 아름다운 마지막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격랑의 파도 속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과 이기심, 침몰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분노와 원망의 감정들이 흩어지는 와중에서 그들의 아름다운 마지막은 잔잔하고 깊은 파문을 남기며 결말로 나아간다.

무대 전환 없이 몰입감 이끌어낸 섬세한 연출

뮤지컬 ‘타이타닉’의 연출은 화려한 무대 전환 한 번 없이 빠르게 항해하는 대형 여객선의 내부와 침몰해가는 재난 과정을 생생하고도 섬세하게, 때로는 장중하게 연출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무대는 높이와 경사를 달리하는 여러 개의 난간과 층계가 전부이고, 조명과 간단한 소품,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장면 전환을 효과적으로 연출했다. 배 안의 승객이나 항해사들은 출항을 시작하자 일제히 흔들리는 미세한 몸의 표현이 파도치는 바다 위에 있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게 했다. 배가 침몰한 후에는 허공에 매달린 승객들의 동작으로 침수된 배 안의 상황을 생생하게 연출했다.

무엇보다 객석의 양옆까지 입체적으로 배치된 난간 구조물은 오프닝 장면과 엔딩 장면을 압도적으로 연출하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객석을 에워싸며 배우 전원이 난간에 기립하여 부르는 넘버 ‘Godspeed Titanic’은 오프닝에서는 벅찬 희망으로, 엔딩에서는 생존하지 못한 또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변주되며 객석에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앞서 흥행의 돌풍을 일으켰던 동명의 영화가 장르적으로 로맨스라면, 뮤지컬 ‘타이타닉’은 옴니버스 휴먼다큐라 할 만하다. 어느 한 주인공의 특별한 사연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친근하고 공감 가는 캐릭터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관객은 커다란 한 번의 해일같은 감동이 아닌, 막이 내릴 때까지 파도처럼 몇 번이고 밀려오는 잔잔한 슬픔을 경험하게 된다. 멀티-롤의 부담 속에서도 놀라운 캐릭터 변신에 성공한 배우들의 숨은 노력과 함께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한 윤공주 배우, 묵직하고도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극의 중심을 잡아 준 문종원, 이희정 배우의 노련한 연기에 박수를 보낸다.

사진출처_오디뮤지컬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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