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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건만큼 강한 캐릭터, 연극 ‘날 보러와요’ VS 영화 ‘살인의 추억’

 

추억되어서는 안 될 그때 그 ‘살인의 추억’을 지금 신촌에서 만날 수 있다. 연극 ‘날 보러와요’는 타율 높은 감독 봉준호가 선택한 만큼 치밀한 구성을 자랑한다. 그러나 구성만으로는 이 프로 부족한 법, 극을 풍성하게 만드는 캐릭터의 매력을 놓쳐서는 안 된다. 영화를 통해 익숙해진 주인공들이 연극에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모두가 기억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살인 용의자 박해일의 눈빛, 점퍼를 걸쳤음에도 양복보다 멋진 실루엣을 보여줬던 김상경의 자태, 그녀마저도 죽을까봐 떨게 했던 형사의 연인 전미선. 이들이 연극에서는 어떻게 그려지는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김형사(연극 ‘날 보러와요’) VS 서형사(영화 ‘살인의 추억’, 김상경)

[우리는 형사] 새로 부임한 두 형사는 삭막한 형사계 사무실의 다른 형사들과 분위기부터 다르다. 이들은 직감과 발로 뛰어 범인을 잡던 기존 수사방식에 회의적이다. 폭력으로 자백을 받아내려는 형사들에 비해 신사적이고 도시적 외모를 지녔다. 그러니까, 좀 잘생겼�. 사무실을 채우는 걸쭉한 욕설 사이에서도 말을 아낀다. 과묵하고 진지한 눈빛을 지녔다.
서형사는 ‘자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정의아래 과학수사를 주장한다. 김형사 역시 ‘FBI범인상’이라는 책을 바탕으로 용의자들을 분석한다. 증거라고는 자백뿐이던 수사에 정확한 자료를 요구한다.

[그래도 다르다] 이 둘은 기존 형사들의 무작위적 수사방법과 충돌하는 모범생형 형사다. 하지만 서로 눈에 띄게 구별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형사계 사무실과 어울리지 않는 김형사의 취미다. 그는 책을 읽는 고독한 남자다. 시집을 읽고 가을이라는 연재시를 쓰기도 한다. 그는 헤드폰을 끼고 라디오를 듣는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즐겨들어 안 그래도 어수선한 사무실의 형사들을 당황케 만든다. 그런 감성적 성격 때문일까, 영화에는 없는 다방 미스 김과의 로맨스를 만들기도 한다. 김형사가 듣는 모차르트 레퀴엠은 용의자를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용의자(연극 ‘날 보러와요’) VS 박현규(영화 ‘살인의 추억’, 박해일)

[우리는 용의자] 관객들은 기억한다. 취조실의 전구불빛을 조명으로 만들어버린 우수에 찬 박해일의 모습을. 도저히 범인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순수한 얼굴과 호소하는 하는 듯한 눈빛이 그를 잔인한 취조실에서 꺼내주고 싶게끔 만든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이나 수사과정으로 보아 믿고 싶지 않지만 그가 범인 같다. 의존했던 자료가 형사들을 철저하게 배신하는 순간, 이들은 범인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며 관객을 혼란시킨다.

[그래도 다르다] 연극 ‘날 보러와요’ 용의자역의 배우는 1인 3역을 소화해야한다. 극에 등장하는 모든 용의자를 연기하기에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의 박현규보다 비중이 적어지는 게 사실이다. 카메라의 클로즈업을 통해 감정의 미세한 변화까지 포착되는 박현규와 달리 연극 ‘날 보러와요’의 용의자는 심경변화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형사가 사건의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순간, 이 용의자는 눈물을 흘린다. 그렇기에 범인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을 때 눈물 위로 흘리는 미소가 더욱 섬뜩하다. 누가 더 예쁘게 생겼는지, 그러므로 누가 더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지는 직접 확인해봐야 안다.

박영옥(연극 ‘날 보러와요’) VS 곽설영(영화 ‘살인의 추억’, 전미선)

[우리는 여자] 영화 ‘살인의 추억’ 곽설영과 연극 ‘날 보러와요’의 박기자는 직업도 다르고 작품 속에서의 비중도 다르다. 하지만 피해자 외에 사건 혹은 작품 속 형사들과 가장 근접해있는 여성들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야매 주사’를 놓고 다니는 곽설영은 박두만(송강호)의 애인이다. 그녀는 동네에 떠도는 소문을 가지고 박두만에게 나름대로의 제보를 한다. 연극 ‘날 보러와요’의 박기자 역시 자신의 재량으로 알아낸 정보를 형사들에게 알려준다. 곽설영의 정보보다는 훨씬 정확하며 수사에 활용도가 높다. 박기자와 조남호 형사의 로맨스는 곽설영과 박두만을 생각나게 한다.

[그래도 다르다] 그녀들은 다른 역할이기에 성격이나 분위기가 확연하게 다르다. 특히 연극 ‘날 보러와요’의 박기자는 선머슴 같은 활달함에 배짱도 두둑하다. 투철한 기자정신을 발휘하여 매 순간 모든 것을 사진으로 남긴다. 형사들을 기사로 띄웠다가 기사로 물 먹이기도 한다. 형사 위에서 날아다니는 박기자도 연극의 흥미를 돕는 매력적인 캐릭터 중 하나다.

연극 ‘날 보러와요’는 아직도 수많은 여성들을 공포에 떨게끔 만든다. 한정된 공간으로 인해 영화의 공포가 반감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범인은 시종일관 형사들을 조롱한다. 더불어 눈앞에 앉아있는 관객들의 심리를 자유자재로 조종한다. 우리들을 비웃기 위해 범인은 오늘도 살인을 한다. 두려워하는 우리를 웃기기 위해 형사들은 오늘도 수사를 계속한다.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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