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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1945’역사극이 아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연극 ‘1945’를 두고 역사를 사실적으로 재현한, 혹은 재해석한 연극이라 표현하면 안 된다. ‘조선’이 ‘한국’이 될 때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태도 하였는지, 어떻게 했어야 바람직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래서 이 연극은 자꾸 질문을 던진다. ‘지금을 사는 나는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1945년 조선인들이 넘어야 했던 삶의 언덕
막이 오르고, 경사가 완만한 언덕에 푸른빛의 어스름 조명이 들어왔다. 어떤 상황인지 예측하기 힘든, 아무 기대도 할 수 없는 끝이 보이지 않는 굽은 길 위에 긴 여정을 거쳐 온 여인 둘이 있다. 이 장면은 일제 강점기 위안부로서 고초를 겪다 도망 나온 일본인 미쯔코가 해방 후 위안부 생활을 함께 한 조선인 명숙에게 조선으로의 동행을 부탁하는 장면이다. 한국적 정체성이 짙은 다수의 작품을 집필했던 극작가 배삼식의 신작 희곡을 무대에 올린 연극 ‘1945’의 첫 장면이다.

1945년은 ‘조선’이 ‘한국’으로 바뀌는 근현대사의 흐름 안에서 전환점으로 여겨지는 시기다. 그러므로 작품의 제목을 1945라고 붙인 것은 이 시기를 연극에서 그려냄으로써 시대가 말하려 했던 바를 기호로 직접 활용하겠다는 의도로 읽어도 무방할 듯하다. 이 작품에는 주인공이 따로 없다. 시대를 살았던 인물 각각의 고통과 질곡을 그려낼 뿐이다. 만주 피난소를 배경으로 귀향을 기다리는 상황을 인물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로 설정하여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 군상들을 연극을 통해 다양하게 등장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인물들은 각기 다른 질곡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자질구레한 대소도구는 등장하지 않은 것이다. 인물이 겪었을 각자의 인생의 언덕을 거대한 민둥 선으로 상징화하면서 인물 각각의 상황으로 질곡의 구체성을 채웠다. 이 작품의 주인공을 따로 부각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앙상블로는 매우 적절한 무대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떡이라는 기호로 응집되는 인간사
이 작품에서 피난소 사람들의 관계와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떡’이다. 떡은 연극 ‘1945’에서 허기를 채우는 음식으로서의 일면적 기능 이외에 다양하게 활용되는데 살고자 하는 욕망을 해소하는 플랫폼으로서의 떡은 중요한 기호가 된다. 떡은 사람과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매개체로, 영자 오빠가 명숙에게 품는 연정의 표현 도구로 떡이 등장한다. 또 삶의 재기 수단으로 기차역에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으로 역할 하기 때문이다. 떡이 가진 쫀득함과 유연한 모양으로 대변되는 상징성은 인간사와 비유된다. 식사 대용의 음식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친숙한 음식이라는 점에서 상징적 효과는 증폭되고 작품의 주제의식과 관련해서는 인간이 가진 욕망과 의지의 표상으로 기호화된다.

경계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인간애를 발휘해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
이 연극은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이야기를 한다는 홍보 문구로 마케팅되었다. 그러나 실제 작품을 보고 나면 이 홍보 문구와는 조금 다르게 ‘누구라도 타인을 규정하고 배척할 권리가 없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역사적 사실들을 밝히고 성찰하는데 초점이 있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작품에서는 위안부 출신 소녀가 등장하고, 위안부 알선 포주도 등장하며 당시 한국인들이 겪은 가난과 질병에 대해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그렇지만 과거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이 작품의 핵심 메시지라고 판단하면 그것은 정확한 평가가 아닐 것이다. 아픔과 다름, 추악하다고 규정지어진 것들과 실제로 마주했을 때 인간은 그것을 진실 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이 작품이 던지는 정확한 화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시대의 질곡 앞에서 모두가 희생양임을 분명히 인지하지만 현실에서 오명과 고통, 더럽다고 규정된 왜곡에 처한 이를 배척하고 도태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명숙과 미쯔코 같은 여인을 마주했을 때 더욱 그렇다. 머리로만 명확히 인지했던 시대의 고통 앞에서 인간은 경계를 만들고 이를 넘어서는 관계에 쉽사리 다가서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고통 앞에서 지옥을 함께한 명숙이 미쯔코가 동행하며 끝까지 배신하지 않는 모습, 위안부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녀들과 함께하겠노라 말하는 영호의 태도를 통해서 말이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사회와 시대가 처한 현실을 마주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기심에서 기인한 ‘구분’을 초월한 인간애를 표방해야 할 표본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좌절에 빠졌다고 구분된 이들이 보여주는 가장 능동적인 삶의 태도
긴 억압의 시간을 딛고 ‘귀향’이라는 어렵고 간절한 목적이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분명 서로가 비슷한 정도의 시련을 겪어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위안부 출신 명숙과 적국에서 온 미쯔코, 위안부 포주 출신 선녀를 도태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편견 속에 그녀들을 밀어냈던 사람들보다 적극적으로 삶에 대한 의지를 보인 것은 명숙과 미쯔코, 그리고 선녀이다. 피난소에서 생활비와 노자 돈을 벌기 위한 떡 장사 밑천을 마련할 때도 돈을 선뜻 낸 사람은 소위 배운 사람이라 존경받던 구 선생이나 어른으로 대우받던 김 노인이 아닌 명숙과 미쯔코였다. 북어를 사 피난소 사람들이 포식을 하게 되는 상황이 조성된 것도 아편 장수를 해서라도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선녀다.

그러므로 연극 ‘1945’는 가장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는 인물들이 실제 삶에서는 제일 커다란 용기를 발휘하며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내고 있는 아이러니 보여준다. 이것을 통해 누구도 ‘누가 어떻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으며 의미 없다는 것을 과거의 현실을 통해 언급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 작품을 놓고 장대한 역사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해석을 하기보다는 사회적 관계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를 화두로 삼고 작품을 만난다면 보다 큰 의미로 다가올 것이라고 본다.

 

사진제공_국립극단

나여랑 객원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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