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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명성황후의 진짜 얼굴은 무엇인가,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서울예술단, 고유의 춤과 소리로 예술성 한층 높여

 

1895년,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의 눈으로 본다면 명성황후는 과연 어떤 사람으로 비칠까. 조선의 마지막 국모이자, 일본인 낭도들에게 처참히 시해당한 이 비운의 왕비를 우리는 때로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외척의 상징으로, 때로는 열강의 희생자로, 때로는 저항하는 여성 정치가로 해석해왔다. 격변의 조선 말기가 재조명되는 동안 그녀는 아픈 역사에서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으나 한 인간으로서의 그녀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시대의 프레임에 맞춰 수많은 가면으로 덧씌워졌을 뿐 그녀는 한 장의 사진조차 제대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는 한 개인으로서의 명성황후의 면모를 섬세하게 추적하며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작품이다. 명성황후의 일대기를 ‘개화’라는 큰 시대적 흐름에 매몰시키지 않고, 오로지 개인의 내밀한 정서 변화에 초점에 두고 접근했다. 그녀를 해하기 위해 진짜 얼굴을 알고자 하는 일본 세력과 시대적 격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투쟁하는 명성황후 사이에서 ‘사진’과 ‘얼굴’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이 추리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명성황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평범한 사진관 조수 ‘휘’의 서술자적 역할

작품은 명성황후의 일대기를 평범한 청년 ‘휘’라는 가공인물을 설정해 서술하게 한다. 그는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내화의 바깥에서 고증된 역사와 허구적인 사건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며 권력에 희생되고 묻힌 민중의 또 다른 이야기를 외화로 그려나간다. 관객은 ‘휘’를 통해 명성황후에 대해 가졌던 기존의 공식화된 틀에서 벗어나, 명성황후의 행적에 담긴 이면과 그 안에 감춰진 한 인간의 나약하고도 강인한, 냉정하고도 뜨거운 다층적인 내면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적 인물이 아닌 평범한 인물 ‘휘’를 서술자로 택함으로써 관객들은 명성황후를 보다 객관적이고 반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휘’가 개인적인 이유로 명성황후에게 품는 분노와 복수심, 연민과 슬픔을 차례로 함께 느끼면서 우리가 그동안 명성황후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이 그녀 개인의 본의와는 상관없이 바라보는 자가 씌운 해석이자 가면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무대 위의 명성황후는 어느 하나의 모습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가족과 가문을 생각하는 희생적 얼굴도, 자신의 정치적 뜻을 알아주지 않는 우매한 민중을 처벌하는 잔인한 얼굴도, 두려움과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점점 짙은 화장 뒤로 숨는 고독한 여인의 얼굴도 있다. 사진에 영혼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면서도, 조선이 조선으로 바로 서는 날 당당히 사진을 박겠다고 말하는 그녀. 굿을 하고 무속에 의지하면서도 동시에 자신만의 군대를 키워 조선을 지키고자 했던 그녀는 하나의 상징으로 박제할 수 없는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인물로 되살아난다.

한국적 정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무대미학

작품은 옛 조선 궁궐의 복식과 당시의 실제 사진들, 민요 ‘새야새야’와 굿, 전통 타악기 연주 등을 배합해 짙은 한국적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새야새야’는 민요적 선율이 가지는 특유의 울림으로 민중이 일으킨 임오군란의 역사적 상징성을 강렬하고 장중하게 표현한다. 명성황후와 함께 궁에 들어오게 된 무녀 진령군이 명성황후 사후에 위령굿을 펼치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다. 명성황후의 깊은 원한과 그녀를 달래려는 무녀의 신명이 함께 절정에 달하는 대목에서 관객은 한국적 소리가 가지는 독특한 ‘한’의 카타르시스를 체험한다.

한편, 현대적이고 미니멀하게 전통을 재해석한 무대 미술도 돋보인다. 역사극임에도 무대가 고루하거나 전형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파격적이면서도 절묘하게 활용된 영상의 힘이다. 꼬인 실타래처럼 역동적으로 얽힌 선의 형태가 어지러운 시대를 이미지화하거나, 국상 장면에서 앙상블의 흰 의상 위로 애책문(왕이나 왕비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글)의 실제 원본 영상을 투영하기도 한다. 무대의 3면에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궁궐을 재현하는 대신, 당시 궁중의 모습을 러프하게 스케치한 영상을 덧입혀 파격적이고 현대적인 무대미학을 선보인다.

그야말로 왕후다운 카리스마, 김선영 배우의 열연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는 이미 역사적 이미지를 확립한 명성황후를 다양하게 변주하는 명성황후의 역할이 매우 막중하다. 차지연 배우에 이어 2016년 새롭게 왕후를 맡은 김선영 배우는 그야말로 왕후다운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객석을 압도했다. 특히 깊은 한에서부터 나오는 슬픔과 고독을 절제된 목소리와 섬세한 표정 연기로 표현해 관객이 숨을 죽이며 왕후의 감정에 몰입하게 했다.

김선영 배우와 다른 배우들의 호흡도 돋보였다. 권력의 중심에서 호령하는 흥선대원군(금승훈 배우), 우유부단한 태도로 고뇌하는 고종(박영수 배우), 맑고 천진한 궁녀 선화(이혜수 배우) 등 다양한 배역과 함께 하며 명성황후 또한 다양한 감정과 태도로 모습을 바꾸었다. 대립과 투쟁, 고독과 냉정, 따뜻함과 배려 등 시시각각 감정의 온도를 바꾸는 김선영 배우의 연기는 명성황후의 숨겨진 진면모를 다층적으로 해석해 보여주었다.

자신이 소유한 것임에도 타인에 의해서만 그 본질이 파악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얼굴’이며 또한, ‘이름’이다.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민자영’이라는 이름의 평범한 여인이 궁에 들어가 ‘민비’가 되고, 다시 ‘명성황후’가 되기까지 한 개인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질곡과 고뇌에 초점을 둔다. 한 여인의 비극적 생애와 우리 전통의 한이 어울려 이뤄낸 작품의 예술성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서울예술단은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우리 고유의 ‘얼’을 춤과 소리라는 ‘꼴’로 효과적으로 살려내 뮤지컬이 이룰 수 있는 예술성의 경지를 한껏 끌어올렸다. 관객은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을 통해 진정한 ‘얼의 꼴’이 깃든 전통의 현대적 해석, 우리예술의 진짜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는 오는 10월 23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사진_박민희 기자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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