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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단편소설집’ 누구나 한번쯤은 반짝이는 순간이 있다

학창시절, 우상이었던 스승의 집무실은 공기조차 신성하게 느껴졌었더랬다. 처음 교수님의 집무실에 갔었던 때의 기억, 그 설렘과 어색함, 그리고 안절부절못한 감정은 아마도 배움에 대한 열정의 싹을 틔우는 생명수였는지 모르겠다.

여자배우가 없다? 여성 캐릭터가 없다



얼마 전 케이블 방송에서 ‘여배우들의 작품 고르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여배우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작품 시장의 현황에 대해 다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이름만 대면 금방 알 만한 유명 여배우들의 입에서는 자신만의 작품 고르는 기준에 대해 나오기 이전에 같은 이야기가 쏟아져나왔는데, 그 이야기는 ‘작품이 없다’는 말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여배우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진지하게 임할만한, 매력적인 작품이 없다는 의미이다. 작품의 수적 고갈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남자 인물 위주로 쓰인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작품에서는 여성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아이가 있는 여성의 경우 육아 때문에 자아실현이 뒷전이 되어 사회의 경제구성원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비일비재하므로 여성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회자하지 않는 것이 어찌 보면 굉장한 리얼리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사회에 진출하여 육아와 사회적 역할을 동시에 끌고 가거나, 출산 후에도 사회적 역할을 이어가는 ‘일하는 여성’의 단면도 현대 사회에서는 흔한 광경이 되어가고 있다. 2016년 막이 오른 연극 ‘단편소설집’에서도 여배우 두 명을 통해 일하는 여성의 모습과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물과 인물의 관계에 집중, 그 힘은 바로 배우들 간의 호흡

작품에서 ‘리사’와 ‘교수’의 관계는 힘의 논리에 의해 변화한다. 초반에는 교수의 눈조차 쳐다보지 못하는 관계였다가 ‘리사’가 조교가 되고 등단을 하게 되면서 둘의 관계는 상당히 동등해진다. 이후 ‘리사’가 유명 작가가 됨과 동시에 ‘교수’가 병환이 들고 일선에서 물러나는 시기가 되자 ‘리사’는 ‘교수’보다 우위적 위치를 선점하게 된다. 이런 인물 관계의 흐름 변화는 배우들 간의 호흡을 통해 두드러질 수 있다.

어색함이라는 정서를 격양된 어조로 일관되게 표현한 도입부에 대한 아쉬움

그런데 이 연극의 도입 부분인 ‘리사’가 처음 ‘교수’의 집무실에 들어왔던 장면은 ‘리사’의 대사 처리방식이 일관되게 격양되어 있다. 이 부분에서 전달되어야 했던 정서인 ‘교수’의 권위적이고도 시니컬한 말투가 ‘리사’의 기에 눌려 빛을 발하지 못한다. ‘리사’가 ‘교수’의 눈치를 보는 장면인데도 마치 ‘교수’가 ‘리사’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뉘앙스를 주었기 때문이다.  

베테랑과 신예가 친구가 되는 순간, 설전이 시작된 순간이다


그러나 ‘우디앨런’이 전 여자친구의 입양 딸 ‘순이’와 불륜을 저지른 사건에 대해 설전을 벌이는 장면은 ‘리사’와 ‘교수’가 동료로서 동등해졌음을 드러내는 대표적 장면이다. 작품은 이 장면에서 거추장스러운 제스쳐들을 차치하고 말의 주고받음만을 통해 둘의 관계를 드러낸다. 이 방법은 두 배우의 관계 변화를 명확하게 읽어내릴 수 있으면서도 대사의 흐름에 적절한 ‘사이’를 부여한다. 이런 과정에서 생기는 리듬감은 단어에 탄력이 붙어 핑퐁게임을 하는 형국을 연상시킨다. ‘리사’와 ‘교수’가 각각 자신의 숨겨온 이야기를 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교수’는 ‘리사’에게 가족사에 관해 묻고 ‘리사’는 ‘교수’에게 연애사에 대해 서슴없이 묻는다. 호칭도 ‘교수님’에서 ‘선생님’으로 바뀌는 것을 통해 이 둘의 관계 현황을 잘 알 수 있다.

가르치고 쓰는 일을 하는 예술가들의 정신에 대한 기록 

이 장면은 두 인물의 관계 위치변화를 정확히 도출해주는 기능 외에도 다른 의미로 인상적이다. “스타들은 우리 대신 막살잖아”라는 교수의 대사가 이를 대변해준다. 이 부분에서 예술가는 대중을 대신하여 극적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는 말을 은연중에 함으로써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르치고 쓰는 예술가들의 정신을 단면적으로 드러낸다.   

은유적 대사를 통한 예술적 삶 조명 

이 작품에는 은유적 대사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작품은 창작을 하는 사람들의 삶의 단면에 대해 많이 표현한다. “시라는 이름으로 그가 뱉어내는 쓰레기를 받아냈어”라는 이 대사는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상처와 고통을 시, 다시 말해 글을 쓰는 예술 행위로써 승화했다는 ‘교수’의 말이다. 이는 예술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랑에 대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신구의 갈등과 교체 

‘교수’가 자신의 새로운 단편을 ‘리사’에게 보여준 뒤 ‘리사’의 피드백을 기다린다. 얼른 듣고 싶다며 아이처럼 조르기도 한다. 더는 새로울 것이 없는 퇴역과 새로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는 신진의 세대교체는 당연한 순서다. 게다가 단 한 번도 자신의 이야기에 관해서는 쓰지 않은 ‘교수’가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작품에 써서 성공한 ‘리사’를 질투하는 것으로 이 둘 간의 관계는 또 한 번 변화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리사’와 ‘교수’는 작품 초반에 수직적 관계로서 등장하지만 점차 동등해졌고, 시간이 흘러 이 수직구조는 역전이 되는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주로 조명되는 인물은 ‘교수’다. 현실 앞에서 무너지는 ‘교수’의 모습에 초점을 맞춰 신구의 전환과 세력 교체를 두고 비단 벌어지는 갈등에 대해 다루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작품 속 작품들

이 작품에서 두 인물의 갈등을 일으키는 매체는 당연하게도 ‘소설’이다. ‘리사’가 처음으로 집필한 소설 ‘끼니사이 먹기’는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된다. ‘교수’의 과거 이야기를 담은 새 소설은 두 인물이 충돌하는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만큼 이 작품에서는 작품 내부에 등장하는 ‘소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리사’의 신작은 일부러 낭독회 장면을 만들 정도로 비중이 크다. 그렇다면 질문을 던지고 싶다. 두 배우는 이 연극 안에서 등장하는 작품에 집중하고 있었는가. 아마 배우가 집중할수록 관객 역시 이 연극에 몰입할 것이다. 몰입한다는 것은 관객도 ‘리사’와 ‘교수’의 관계, 이 둘의 갈등에 감정 이입하게 됨을 의미한다. 관객이 완전한 몰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관객이 작품 속 상황에 대해 완전히 수긍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했는가 질문하고 싶은 것이다. 분명한 것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 한 ‘리사’

부산스러운 성향의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과장된 감탄사와 발을 구르는 행동, 말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손 제스처를 빈번하게 쓰는 모습은 ‘리사’가 연극에서 가장 많이 보여준 행동이다. 동선 역시 스피드가 너무 빨랐다. 이런점은 관객이 ‘리사’와 ‘교수’의 감정 교류를 관찰할 시간을 부족하게 했다. 자칫 잘못하면 ‘리사’ 역할 배우가 많은 양의 대사를 이행하기에 급급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들이었다. 또한 ‘리사’는 자음을 정확히 발음하는 일명 ‘말을 씹어 발음’하는 화술을 구사했는데, 이 방법은 중요한 내용을 강조하여 전달할 때나 큰 규모의 극장에서 연기할 때 쓰는 화술로써 이번 작품에서는 그다지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화술은 연극에서 ‘리사’가 ‘교수’의 집무실에 처음 온 장면을 중심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랬기 때문에 대사의 리듬감이 없어졌다. 모든 음에 악센트를 주어서 연주하는 곡에서는 선율을 제대로 느끼기 힘든 것처럼 ‘리사’가 구사하는 모든 대사는 발음이 지나치게 정확해서 오히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내용을 귀담아들을 수가 없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일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연극에서는 이미 명성을 드높인 위치에 선 중년여성 작가와 신진 여성 작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종의 관계를 그린다. 실제 대학교수의 집무실을 옮겨놓은 듯한 사실적인 무대에서 둘의 관계는 두 인물의 말에 의지하여 집중된다. 말에 집중된 작품이니만큼 두 배우가 원활히 블로킹하는 모습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여성 예술가의 인생에 대해 조명한 흔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사진출처_K아트플래닛


*위 기사는 객원기자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뉴스테이지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나여랑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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